밀크맨
애나 번스 지음, 홍한별 옮김 / 창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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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조용한 순간에도 머리 속에 끊임없이 들끓는 생각을 글로 옮긴다면 이렇게 줄줄이 이어져 쌓여질 것이다. 그 끊임없이 복박치는 생각을 글로 하나하나 옮길 생각을 하다니 대단하다. 그냥 들여다만 봐도 속이 시끄럽고 번잡스러운 것을.

오래 전에 본 ˝아버지의 이름으로‘라는 영화와 같은 배경과 분위기를 가진 모양이다. 그 장면들이 배경으로 떠오르는 것을 보면.
처음엔 북아일랜드만의 특이한 사항이려니, 같은 나라 다른 민족으로 대립하여 살아가는 척박함과 긴장감이려니 했다. 서로를 믿지 못 하고, 서로를 감시하는 세계가 생각의 범위마저 좁혀서 공동체와 다른 생각과 행동을 받아들일 수 없어 하는 갇힌 모습이 극에 달하고 있었다.

아무개 아들 아무개, 어쩌면-남자 친구, 알약소녀 등 이름이 부재한 이들이 등장하는 것은 이 상황에 누구가 되었든 같은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전제일 것이다. 주인공이 소문만으로 불륜관계를 맺고 있는 이가 되어버리는 과정은 악성루머에 휘둘린 누구여도 같았을 것이다. 기어이 그 루머에 잠식되어 버리는 순간은 그들이 가졌을 무기력함에 뻐근했다. 그 상황을 고쳐 나아가는 지나한 길들을 우리가 여전히 걷고 있음은 그릇된 것을 깨쳐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보여준다.

‘그게 실수였다. 욱한 것, 욱한 모습을 보인 것, 창밖으로 길거리에다가 소리를 질러서 나 스스로 헛소문에 발을 담근 것이 실수였다. 보통은 잘 자제한다. 그런데 화가 났다. 너무 화가 났다. 언니에게, 언니가 어리고 약한 아내가 되어 남편이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따르는 것에, 형부가 나를 자기와 똑같은 사람 취급하는 것에 화가 났다. 속에서 고집이 솓았고 ‘내일에 신경 꺼.‘
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여기에서는 놀이에 빠지거나 틈을 보였다가 망신을 당하는 일이 엄청 많다. 그래서 사람들은 누구나 생각을 읽으려 했다. 그러지 않으면 일이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여기 사람들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진심을 말하지 않는 한편 누가 자기 생각을 읽으려 하면 그 사람에게 가장 위쪽 마음 상태만 드러내고 진짜 생각이 무엇인지는 의식의 수풀 안에 감춘다.‘

‘처음에는 이런 반응으로 내가 살아 있고 여기 내 몸 안에 있으며 내면의 격랑을 경험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그런데 문제는, 시간이 흐르면서 내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삶에 대한 나의 무감한 접근이 겉으로만 그렇게 꾸민 가면이 아니라 점점 실제가 되어갔다는 것이다. 먼저 감정이 무뎌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머리가, 처음에는 ˝좋아. 잘했어.사람들을 잘 속여서 내가 누군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슨 감정인지 모르게 만들었어.˝ 라고 칭찬을 해주던 머리가 이제는 내가 거기에 있기는 한지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 ˝잠깐만, 우리 반응은 어떻게 된 거야? 속으로 표현하던 감정이 있었는데 이제는 없어졌어. 어디 갔지?˝ 감정이 표출되기를 멈춘 것이다. 그러더니 아예 사라져버렸다. 무감함이 어찌나 발달했는지 지역 사람들만 내 속을 알수 없는 게 아니라 이제는 나도 내 속을 알 수가 없었다. 내면세계가 통째로 사라져버린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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