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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드러난 하나님 나라
톰 라이트 지음, 양혜원 옮김 / IVP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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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바라본 하나님 나라- 세상 속으로 뚫고 들어오는 하나님 나라의 전복적 삶
도널드 크레이빌 지음, 김기철 옮김 / 복있는사람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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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과 천국- 세상을 뒤집은 골로새서 다시 읽기
브라이언 왈쉬 & 실비아 키이즈마트 지음, 홍병룡 옮김 / IVP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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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양용의 지음 / 성서유니온선교회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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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리 하우어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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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사의 나라 예수의 나라- 제국의 시각으로 뒤집어 읽는 신약성서
스캇 맥나이트 & 조지프 모디카 지음, 홍성수 옮김 / IVP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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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제국과 천국
IVP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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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하나님의 뜻- 오늘 여기서 그 분을 위해
제럴드 L. 싯처 지음, 윤종석 옮김 / 성서유니온선교회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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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도전
배덕만 지음 / 대장간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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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빈 설교 꽉찬 설교 정용섭의 설교비평 1
정용섭 지음 / 대한기독교서회 / 2006년 12월
평점 :
품절


정목사의 설교 비평 기준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설교가 성서에 근간하고 있는가.
둘째, 설교에 기복신앙적 요소가 얼마나 들어가 있는가.

정목사는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설교시간에 성서를 강론하지 않고 성서에 관하여 강론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성서 기자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가 무궁무진하였을텐데도 그렇게 함축적으로 표현하였다는 것은 성서 안에 아직도 캐야 할 진주들이 많이 산재해 있다는 뜻인데, 기존의 목회자들이 새로운 보물을 발견하려고 하지는 않고 그동안의 신앙경험을 통하여-성서의 도구화를 통하여-목사들이 자기의 하고싶은 말을 하는 행위가 정목사가 보기에는 바람직해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높은 수준의 인문학적 지식과 역사비평적 관점을 통한 성서 이해를 하고 있는 정목사는 대형 교회의 목회자들이 자신과 같은 이성적 방법으로 성경을 읽어내지 않는 것에 대한 답답함을 표출하고 있습니다.

그런 후 정목사는 목사들이 성경 이야기를 할 지식과 능력이 없기 때문에 설교가 자연스럽게 기복신앙적 요소와 연결된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면, 요셉이 십수년 간의 인내를 통해 성공했듯이, 오늘날의 성도들도 믿음을 가지고 인내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식의 설교가 한국 교회의 교단에 만연해 있다고 정목사는 진단하고 있습니다.

정목사의 책 상, 하권을 읽으면서 좋았던 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성경을 이성적, 합리적으로 접근하려고 했다는 점.
둘째, 기존의 대형교회의 말하기 어려웠던 비판점들을 정확하게 짚어냈다는 것.

앞서도 말했듯이, 성서는 매우 함축적인 언어이기 때문에 한 절 한 절의 무게가 매우 무겁습니다. 바로 그 이유로 인하여 어느 한 구절도 가볍게 해석할 수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한국의 목회자들이 설교를 너무 쉽게 여기고 말씀 그 자체를 위한 설교를 하기보다는 목회를 위한 설교를 하였던 것이 사실입니다. 성서에 쓰여진 시대의 상황과 오늘날의 시대의 다름을 인정하고 새로운 각도로 성서를 해석하기를 촉구한다는 점에서 정목사의 비평은 가치가 있습니다.

또한 성서의 권위를 빌어서 본인의 권력을 확장하고 세를 키우는 일부 대형교회 목사들의 행위를 꼬집고 성서로 돌아올 것을 촉구하는 것을 보면 정목사 마음 안에 한국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하다는 것을 드러내 줍니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었습니다.
첫째, 비평의 기준이 지극히 개인적이었다는 것.
둘째, 사상적으로 편향된 시각.

정목사의 설교비평 패턴을 보면 "의례적인 칭찬-정목사 본인에게 은혜가 되지 않음-칭찬보다 몇 배는 긴 분량의 비판" 으로 도식화할 수 있습니다. 대형교회 목회자들이 목회를 잘하였다는 것을 인정하긴 하지만 그들이 설교하는 것을 들어보면 자신은 설교에서 전혀 은혜를 받을 수 없었다고 말합니다. 그런 후 본인의 기준에서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점들을 하나하나씩 짚어나가기 시작합니다. 은혜가 되지 않았다는 말이 본격적인 설교비평을 들어가기 위한 추임새인지 아니면 정말로 은혜가 되지 않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설교비평의 이유로는 궁색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대형교회 목회자들의 보수적인 색채를 경고한 나머지 북한에 대한 상당한 옹호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북한 사람들을 한 형제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은 매우 좋은 현상이며,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통일을 염두에 두었을 때 반드시 필요한 시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목사는 옹호를 뛰어넘어 지나치게 북한 편을 드는 것이 아닌가 하고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북한의 주민들을 불쌍하다고 말한 설교에 대한 반론으로 "북한 주민들은 생각보다 불쌍하지 않으며, 나름대로 잘 살고 있다."는 말을 했는데, 누가 봐도 기아와 자연재해로 인하여 힘들게 살고 있는 북한사람들을 멀쩡하다고 한 것은 대형교회 목사들이 북한 주민들의 약함을 근거로 북한의 정권을 비판하는 것에 대한 반감으로 인한 반작용으로 해석됩니다. 즉, 북한 주민들이 살만 하다고 함으로써 김정일 정권이 그럭저럭 정치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나타내기 위함일 것입니다. 한국의 교계가 우편향되어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성서 본문의 왜곡된 해석에 대한 비평 이상으로 대형교회 목사들의 생각까지도 비판을 하는 것은 정목사의 영역을 벗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서해석의 잘못된 점만을 비판의 대상으로 삼았으면 좋았을 것을 범위를 너무 크게 가져간 나머지 본인의 사상적 편향성을 드러내고 만 것입니다.

정목사의 설교비평을 인터넷으로 매우 탐독하여왔습니다. 처음에는 장문의 글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신선하게 여겨져 긴 글임을 전혀 느끼지 못한 채 글을 읽는데 바빴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필터로 거를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점잖은 말로 비평을 하지만 속뜻을 알고 보면 설교자에 대한 인신공격조로 들어가는 구절도 있었고, 비평할 것 이상으로 비평한 흔적도 많이 보입니다. 비평 초창기에 쓴 글들은 무명의 시기였기 때문에 펜대를 움직이는 자유의 정도가 많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설교비평 하나로 어느 정도의 위치를 점한 입장에서, 보는 눈이 늘어났고 그의 글 한줄에 의한 영향이 이전보다 훨씬 커졌다는 것을 정목사가 자각한다면, 인신공격조의 비평, 혹은 과도한 비평을 자제하고, 정목사의 주 관심사인 인문학적 성서 해석에 바탕을 둔 건전한 설교 비평에 매진하였으면 하는 것이 그의 글을 즐겨 읽는 독자로서의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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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경씨 2007-11-28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긍정의 힘 - 믿는 대로 된다
조엘 오스틴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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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신문을 보다가 이 책을 선전한 광고를 접하게 되었다. '긍정의 힘'이라는 제목이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띄고 있었을 뿐더러, 이 책의 출판사가 두란노라는 것에서 기독교서적이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음, 긍정의 힘이라니...저 목사님은 우리에게 어떤 긍정의 힘을 줄 수 있을까."

광고를 본 후, 서점에 가서 책날개를 열어보니, '사회의 잘못된 점을 비판하기보다는 말씀, 성경중심의 설교...' 라는 코멘트와 함께, 조엘 오스틴 목사는 아버지의 뒤를 이은 2대 목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충 낌새를 알아챈 나는, 책의 안으로 들어가서 각종 화려한 수식어로 가득차 있는 유명인, 유명목사들의 추천사를 보게 되었다. 백지연부터 시작해서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대형교회의 담임목사들의 추천사가 끝을 모르고 이어져 있었던 것이다. 

이쯤 되면 하고싶은 말은 거의 다 한 셈인데, 이 책을 읽고 나서 몇 가지 감정을 느꼈다.

첫째, 150~200페이지 정도를 읽고 있던 중, 이 책을 쓴 조엘 오스틴 목사가 '세습목사'였다는 점을 깨닫고 난 후,  이 책을 덮어버리고 싶었다. 듣고 싶은 말, 달콤한 말들에 취해있는 사이에 이 말을 하고 있는 주체가 누구인지도 망각했던 것이다. 물론 아버지의 목회나 사업을 물려받아서 더욱 번창하게 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번창'이라는 것의 기준은 무엇인가? 이 책에서는 아버지 목사가 담임했을 때 6000명에 '불과'했던 교회를 30000명으로 확장시켜 놓은 것을 목회의 성공의 근거로 삼았지만, 이러한 물량적 근거는 진정한 교회의 모습을 나타내기에는 부족하다.

둘째, 조엘 오스틴 목사가 제시하고 있는 '긍정' 이라는 것 역시 '세속적 성공' 을 부르짖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자가 든 예 중에 내가 가장 충격을 받은 예화가 있다. 한 골프선수가 있는데, 그가 중동의 어느 나라에 가서 그 나라의 왕자와 라운딩을 하였다. 라운딩을 마치고 왕자가 골프선수에게 선물을 하려고 하자, 골프선수는 몇 번을 사양한 후, 골프채 하나를 선물해 달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왕자는 알았다고 하면서 나중에 우편으로 부치겠다고 하였다. 2주 후, 그 골프선수는 왕자가 보낸 선물을 보고 기겁을 하는데, 그 선물은 골프채가 아닌 '골프장'이었던 것이다. 이 예화를 든 목사의 목적: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더 좋은 것을 예비하고 계신다."

이 예화는 이 책에서 본 최고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미국에서는 골프가 대중스포츠의 하나로 자리잡고 있는지 어쩐지는 몰라도, 한국이나 미국이나 골프는 여전히 상류층의 운동이다. 저자가 담임하고 있는 교회에 상류층이 많이 다녀서 이런 예화를 들었는지는 몰라도, 이는 골프를 즐길 수 없는 대다수의 현실에는 전혀 적용될 수 없는 꿈같은 이야기이다.

물론 하나님은 없는 자들뿐만 아니라 있는 자들에게도 동일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있는 자들을 위한 설교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 있는 자들도 복음을 듣고 구원을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조엘 오스틴 목사의 설교는 매우 일관성 있고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설교임에 분명하다. 밝고 희망에 찬 메시지만 선포하니 어지 나쁠 수가 있겠는가.

하지만 복음의 폭을 가진 자들로 제한한 것은 아쉽다. 흔히 기독교의 신앙을 '십자가의 신앙' 과 '부활의 신앙' 으로 구분하는데, 조엘 오스틴 목사의 글에는 예수님의 부활의 영광만을 만끽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설교를 하고 있을 뿐, 그 누구에게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고통으로 인하여 나의 편안하고 안락한 생활이 있으며, 음지, 더러운 곳 등에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에 대한 배려심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빌립보서 4장 13절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다. 기독교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말씀이다. 그러나 이 구절 앞에는 바울의 고백적 표현, 즉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라는 4장 12절의 말씀을 상기해야 한다. 주어진 상황에 대한 자족과 만족을 사도바울은 외쳤던 것이다. 무조건 '긍정' 한다고 해서 일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무조건 긍정의 신화에서 벗어나는 용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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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yonara 2005-06-27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들만의 환희와 막무가내의 낙관주의... 확실히 사고로 팔이 떨어지고, 다리가 잘리는 상황인데도 낙관과 긍적의 힘을 '강요'하는 책들이 많더라구요.
늘 이런 생각이 든답니다. '말은 쉽지...' ㅋㅋㅋ

hj0405 2005-07-05 0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거름님 좋은 평 감사합니다. 많은 참고 되었습니다.

pp918 2005-07-07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목 조목 번호까지 붙여서 올려주신 리뷰 잘 읽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본 읽은느낌은 님이 지적하신 부분이 부적절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세습목사 부분이나 골프예화는 내용의 요지를 벗어난 비판이란 생각이 듭니다. 한마디로 미국문화를 우리나라식편견으로 좁게 본다고 해야 할까요? 그리고 이책은 제목 그대로 긍정의 힘..긍정적인 사고를 위한 책내용일뿐 그것이 다라고 주장하는 책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윗분말대로 말은 쉽고 사람의 힘으로 긍정적 습관을 만드는 것은 정말 힘듭니다. 사람을 바꾸는 것은 결국 지식이 아닌 마음이기 때문에 이부분에 대해서는 신앙적 측면에서의 접근만이 그 가능성을 줄수 있다는 것을 저자는 설명하려 했다고 읽었습니다. 긍정의 진정한 힘은 타인을 받아들이고 자신을 용납하는 용기라고 생각합니다.

황금률 2005-07-09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걸순이님께...긍정적 사고가 부정적 사고보다 좋은 것은 당연한 거겠죠. 하지만 시험공부를 하지 않았는데 시험을 잘 볼 수 없듯이, 실생활에서 말씀에 근거한 노력을 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막연히 긍정적인 사고만 가지면 잘될 거라는 점이 저는 안타까웠던 것입니다.

aser1122 2005-08-11 0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국이라는 곳과 한국이라는 곳의 장소적인 차이도 있겠고.. 생각의 차이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선 교회에서 목사님께 아버지 이후에 목사님을 맡게 만든 상황을 알고도 세습 목사라는 단어 하나로 이분을 단정지어버릴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양적인 성장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전에.. 이분의 설교말씀을 한 번 들어보시라고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차를 타고 5시간 거리에 있어서 방송으로 밖에는 말씀을 듣지 못하지만.. 들을 때마다 직접 가고 싶은 충동이 든다면.. 그리고 실제적으로 그 방송설교 때문에 한 번도 믿지 않고 오히려 불신하던 사람들이 믿게 되어 교회를 나가게 되어 양적인 성장까지 이루어 진 것이라면.. 설교를 듣기 이 전에 양적인 성장이 무조건 눈에 보여지는 것이고.. 목회 성공의 기준을 그것으로 밖에 보지 않았다는 말씀을 하실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실생활에서 말씀에 근거한 노력을 하지 않는데도 막연히 긍정적인 사고만 가지면 잘될 거라는 점이 안타까우셨다고 하셨는데요..
하나님을 제대로 는 사람이라면.. 기도도 하지 않고 노력도 하지 않는데 좋은 것을 바라고 잘되기를 바라는.. 그런 요행수는 바라지 않는답니다..
목사님께서 말씀하시는 긍정의 힘이라는게 어떠한 것인지에 대해 비판의 눈을 가지고만 보지 마시고 좀 더 다른 시각으로도 한 번 읽으셨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꿈꾸는 자 2005-08-25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삐둘어진 마음으로 책을 읽으면 그 책의 내용이 전달하려는 내용보다는 자신이 이해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이해하게 되죠. 중요한 것은 진정으로 작가가 무엇을 전달하려고 하는지에 대해 이해하는 태도를 가지고 책을 읽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단편적인 예화 하나를 문맥에 흐름에도 없이 따로 떼어 놓는다면 그 내용에 주요 핵심보다는 예화에 몰입되겠죠.

중요한 것은 문맥이 없는 단편적 예화로 책의 내용을 알 수 없다는 것이 아닐까요

baristamj 2005-11-08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평도 일리가 있습니다. 다만 제 생각에는 제목이 '긍정의 힘' 이다보니 결과중심적인 예화를 든 것 같네요. 님 말씀대로 '말씀에 근거한 노력'을 기본으로 하고 쓰신 게 아닐까 하는데요. 단순히 '긍정'마인드만을 이야기한 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세습목사라는 것에 대한 평은.. 그것만으로 판단하는 것이 더 편협한 시각이라고 봅니다. 모든 것은 뚜껑을 열어봐야 알 수 있죠. 흑백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인 것 같네요~^^

DJ뽀스 2006-01-31 0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 페이지 읽다 말았지만 님께서 지적했듯이 너무 "세속적인 성공"만 강조하는 글에 놀랐습니다. 같은 종교인으로서..거부감이 많이 들었달까요? 긍정의 힘이 가진 마인드컨트롤적인 측면을 강조한 걸로 결론 내리고 책을 덮었습니다. 뭐..밝고 긍정적으로 앞으로 나가다 보면 더욱 노력할 것이고 성취해 내겠죠. ^^:
 
Can you speak English? Yes, I Can! - 그 놈이 했으면 나도 잉글리시 한다
양희욱 지음 / 사회평론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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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 Mike는 기초적인 한국어만을 배워서 약간의 읽기만 가능했을 뿐 말하기 듣기는 전혀 되지 않는 상태였다. 그러던 중 TV 방송교재에 실려있는 한국어 문장을 하루에 4개씩 외우기로 하고 그것을 실행해 나갔다. 처음 3개월 동안은 기초적인 의사소통을, 다음 3개월은 중급의 표현들을, 마지막 3개월은 '야심만만' 이라는 토크쇼를 공부했다. 이렇게 공부한 결과 9개월만에 한국인 어린이들에게 영어로 설교할 수 있게 되었고, 대학교 국문과 교수로부터 "원어민 수준의 회화를 한다." 는 극찬을 받게 되었다.

저자의 책 "Yes, I can" 에서 저자 이름을 Mike로만 바꿔서 패러디해 보았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Mike의 한국어 실력의 급속한 발전에 대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가? 혹자는 한국어를 배우려는 외국인의 노력을 가상히 여겨 그의 실력에 대해 호의적으로 대답해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외국인과 대화할 때 한 수 접어주고 대화하지 않는가. 되도록이면 쉬운 말로...그러나 그들은 우리의 '회화상대' 는 될지언정(아마 우리가 그들의 회화상대가 되어주는 것이겠지만) 우리의 진정한 '대화상대' 는 될 수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까닭은 분명하다. 우리는 수십년동안 한국어를 배워오면서 언어만 배운것이 아니라 문화까지도 통째로 흡수한 반면, Mike는 한국어만을 위주로 배운 나머지 문화에 대해서는 그만큼 신경을 쓰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저자가 영어를 전혀 하지 못했던 상황에서 9개월만에 원어민과 같은 유창성을 가졌다고 하는데, 솔직히 말하면 말도 안되는 소리이다. 그리고 본인의 책을 믿고 하루에 한시간씩만 따라하면 된다고 하는데, 이것은 그동안 영어에 속았던 사람들을 또 속이는 행위이다. 이 책에서 느낀 문제점을 세 가지 정도로 나타내자면,

첫째, 이 책은 정말 이치에 닿지 않는 책이다. 저자는 초, 중, 고급을 각각 3개월만 하면 회화가 끝이라고 하였는데, 과연 초, 중, 고급의 회화란 무엇인가. 그리고 4문장을 외우라는 말은 또 무엇인가. 회화에 급수가 어디 있으며 문장을 외워서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특히 문장을 외우라는 공부방법에 아주 반감이 든다. 아마 저자의 의도는 문장을 외워서 단어를 부속품처럼 바꿔끼는 형태의 응용을 말하려고 했겠지만, 영어문장에서는 단어 하나 바꿔낌으로 인해 의미가 완전히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문장 외워서 단어 갈아끼기를 하다가는 잘못된 문장을 익히게 될 가능성이 있다.

240문장으로 각 단계의 회화를 끝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발상이다(이 240문장이라는 것은 하루에 4문장을 1주일동안 5일 외운다면 20문장이 되고, 1주일에 20문장을 12주(3달)동안 외운다면240문장이 된다는 것에서 나온 수치이다). 그 문장들을 선정한 것은 무슨 기준이며 241번째의 문장이 나타나면 그 문장에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만약 외국인이 "한국어 초급회화 240선" 이라는 책을 보고 "아, 이 책만 보면 초급회화는 문제없어" 라고 생각한다면, 원어민인 우리 입장에서 얼마나 우습겠는가. 그리고 외운 문장을 영어카페 모임에 나가서 한번 사용한다고 해서 응용이 쉽게 되는것도 아니다.

둘째, 저자는 말하는 것을 가장 강조했는데, 말하는 것보다 듣기가 중요하다. 저자의 목적은 영어를 잘 말하는 것이었고 그 때문에 말하는 능력을 집중적으로 길렀다고 책에서 말하였는데, 다른 사람의 말은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 할 말만 한다면 동문서답 형식의 대화가 될 것이다. 물론 저자는 말하는 연습을 하다보면 듣기 능력도 향상된다고 하였지만, 이건 정말 아니다. input과 output 사이는 4대1 정도로 input이 우세하다. 즉 보통 4마디를 들으면 1마디를 말로 옮길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저자의 주장은 들어오는 양과 나가는 양이 똑같을 수 있다고 주장하니, 이것은 아직 이론적 근거가 없는 외마디 외침에 불과하다.

셋째, 외국인에게 영어를 '적선' 받고 영어만을 위해 영어 '친구' 를 사귀는 것에 대해서는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다. 저자는 영어로 이메일을 주고받는 친구를 정해서 실력이 올라가는 것에 따라 친구들도 교체하면서 실력을 쌓아야 한다고 책에서 말하였다. 이렇게 이메일을 주고받는 사람과 저자가 진짜 친구인가? 영어실력 향상이라는 목표를 성취하기 위하여 사람들을 수단으로 삼아서 필요에 따라 갈아치우는 관계가 친구관계라고?(우리나라의 친구 개념이 이정도로 이기적인 것인줄은 몰랐다)

박노자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이라는 책에 보면, 자신을 미국인으로 오해한 한국 학생이 "우리 친구가 되자. 당신이 나에게 영어를 가르쳐주고, 나는 당신에게 한국어를 가르쳐 주겠다." 는 말을 자신에게 하였다고 한다. 이 말을 이해한(박노자는 한국어를 매우 잘한다) 박노자는 한국말로 "나는 미국인이 아니라서 당신에게 도움을 줄 수 없으니 다른 사람을 알아보라." 고 한국어로(?) 말하였다. 이 말을 들은 학생은 당황하여 멀리 달아났다고 한다. 이 한국 학생의 얼굴에 저자가 오버랩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또한 영어 하나만을 위하여 외국인에게 일부러 말을 거는 것에 대해서 내 평가는 좋지 않다. 물론 실력을 늘리기 위한 저자의 용기에 찬사를 보내야 함은 당연하다. 그러나 단순히 언어를 배우기 위해 지나가는 사람, 즉 강남역 벤치에 앉은 사람이나 지하철 옆자리에 앉은 서울대 영문과 교수(이 사람이 이 책의 추천사를 쓴 사람이다)에게 말을 거는 것이 올바른 행동인가.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우리가 영어 하나 못한다고 이렇게까지 구걸해야 하나?' 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한국에서 영어를 잘했던 사람들의 경우에 대다수가 한국의 외국인들을 활용해 왔지만, 이제 이건 아닌것 같다. 물론 그 방법이 영어를 잘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겠지만, 책에까지 이런 내용을 써서 '너희도 이런식으로 해봐' 라는 식의 권고를 하는 것은 좋지 않다. 왜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영어구걸을 강요하는가?

개인적인 체험을 낸 책에서 많은 것을 기대하지는 않지만, 이 책에서는 내용적인 어설픔 뿐만 아니라 영어에 모든 것을 팔아넘기라고 강요하는 듯한 저자의 태도까지 느껴져서 매우 아쉬웠다. 영어구걸을 하지 않을 날은 언제쯤 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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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inmaker 2005-03-28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정도의 내용도 책으로 내주다니 참 재밌다는 생각입니다.

황금률 2005-03-29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 말입니다. 이러한 사술에 휘둘리지 않고 영어를 하게 될 날은 언제 올까요?

양우 2005-11-04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그래요. 요즘 정말 영어책 난잡한것들 많이 나오죠.

쨔미 2006-06-16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글에서 듣기를 쫌 소홀히 한다는 말에는 동의합니다.
그러나 반문이 드는 내용도 있네요.
일단 문화를 잘 알지도 못하는데 저자가 원어민과 같은 유창성이라고 보기에는 확실히 과장된 면이 있다고 저도 생각은 합니다.
저도 참으로 초급영어회화 중급영어회화... 이 기준이 무엇인지 참으로 궁금하더군요. 그래서 간혹 학원이나 대학교에 있는 초급영어회화나 고급영어회화반의 기준이
궁금하더군요... 단 초급에서 배우는 분들과 고급에서 배우는 분들의 표현 능력차가 차이가 많이 드러난다는건 사실이지요.
그리고 같은 토크쇼이지만 래리킹의 토크쇼와 야심만만같은 내용이 동급의 토크쇼라고 생각하시고 비교를 하십니까?
그리고 240문장으로 가능하다는 내용은 어쩌면 너무 극단적인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한번 생각해보시지요. 평소에 얼마나 많은 어휘를 구사하면서 얼마나 많은 문장을 구사하시는지...아니 얼마나 많은 형식으로 말씀하시는지 생각해 보라고 하는게 맞겠군요.
님의 말씀대로 240문장으로 되어 있다면 꼭 수록된 240문장만 사용할까요? 거기에서 응용한다는 생각은 안해보십니까? 양희욱씨가 설교하는 내용은 240문장이 한계겠군요. 그럼...
그리고 영어만을 위해 외국인에게 일부러 말을 건다는게 뭐가 잘못된지 이해가 되지를 않는 군요. 꼭 돈을 투자해서 외국인과 대화를 해야 한다는 건가요? 아니면 외국에 나가야 하던지? 단지 장소만 다를 뿐입니다.
그리고 자기가 이렇게 해서 하니까 되더라 해서 남에게 추천해 주는게 왜 잘못된거지요?
저도 이책을 읽어보면서 약간 부족한 감이 있기도 했습니다만은 자기가 영어로 뭔가를 말하고 싶다는 그 의지를 영어구걸이라는 따위의 말이나 영어에 모든 것을 팔아넘기라고 강요하는 듯한 저자의 태도까지 느껴져서 따위의 말로 표현하기에는 님이 말을 막하는 경향이 있는 듯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