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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 you speak English? Yes, I Can! - 그 놈이 했으면 나도 잉글리시 한다
양희욱 지음 / 사회평론 / 2004년 2월
평점 :
절판
미국인 Mike는 기초적인 한국어만을 배워서 약간의 읽기만 가능했을 뿐 말하기 듣기는 전혀 되지 않는 상태였다. 그러던 중 TV 방송교재에 실려있는 한국어 문장을 하루에 4개씩 외우기로 하고 그것을 실행해 나갔다. 처음 3개월 동안은 기초적인 의사소통을, 다음 3개월은 중급의 표현들을, 마지막 3개월은 '야심만만' 이라는 토크쇼를 공부했다. 이렇게 공부한 결과 9개월만에 한국인 어린이들에게 영어로 설교할 수 있게 되었고, 대학교 국문과 교수로부터 "원어민 수준의 회화를 한다." 는 극찬을 받게 되었다.
저자의 책 "Yes, I can" 에서 저자 이름을 Mike로만 바꿔서 패러디해 보았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Mike의 한국어 실력의 급속한 발전에 대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가? 혹자는 한국어를 배우려는 외국인의 노력을 가상히 여겨 그의 실력에 대해 호의적으로 대답해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외국인과 대화할 때 한 수 접어주고 대화하지 않는가. 되도록이면 쉬운 말로...그러나 그들은 우리의 '회화상대' 는 될지언정(아마 우리가 그들의 회화상대가 되어주는 것이겠지만) 우리의 진정한 '대화상대' 는 될 수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까닭은 분명하다. 우리는 수십년동안 한국어를 배워오면서 언어만 배운것이 아니라 문화까지도 통째로 흡수한 반면, Mike는 한국어만을 위주로 배운 나머지 문화에 대해서는 그만큼 신경을 쓰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저자가 영어를 전혀 하지 못했던 상황에서 9개월만에 원어민과 같은 유창성을 가졌다고 하는데, 솔직히 말하면 말도 안되는 소리이다. 그리고 본인의 책을 믿고 하루에 한시간씩만 따라하면 된다고 하는데, 이것은 그동안 영어에 속았던 사람들을 또 속이는 행위이다. 이 책에서 느낀 문제점을 세 가지 정도로 나타내자면,
첫째, 이 책은 정말 이치에 닿지 않는 책이다. 저자는 초, 중, 고급을 각각 3개월만 하면 회화가 끝이라고 하였는데, 과연 초, 중, 고급의 회화란 무엇인가. 그리고 4문장을 외우라는 말은 또 무엇인가. 회화에 급수가 어디 있으며 문장을 외워서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특히 문장을 외우라는 공부방법에 아주 반감이 든다. 아마 저자의 의도는 문장을 외워서 단어를 부속품처럼 바꿔끼는 형태의 응용을 말하려고 했겠지만, 영어문장에서는 단어 하나 바꿔낌으로 인해 의미가 완전히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문장 외워서 단어 갈아끼기를 하다가는 잘못된 문장을 익히게 될 가능성이 있다.
240문장으로 각 단계의 회화를 끝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발상이다(이 240문장이라는 것은 하루에 4문장을 1주일동안 5일 외운다면 20문장이 되고, 1주일에 20문장을 12주(3달)동안 외운다면240문장이 된다는 것에서 나온 수치이다). 그 문장들을 선정한 것은 무슨 기준이며 241번째의 문장이 나타나면 그 문장에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만약 외국인이 "한국어 초급회화 240선" 이라는 책을 보고 "아, 이 책만 보면 초급회화는 문제없어" 라고 생각한다면, 원어민인 우리 입장에서 얼마나 우습겠는가. 그리고 외운 문장을 영어카페 모임에 나가서 한번 사용한다고 해서 응용이 쉽게 되는것도 아니다.
둘째, 저자는 말하는 것을 가장 강조했는데, 말하는 것보다 듣기가 중요하다. 저자의 목적은 영어를 잘 말하는 것이었고 그 때문에 말하는 능력을 집중적으로 길렀다고 책에서 말하였는데, 다른 사람의 말은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 할 말만 한다면 동문서답 형식의 대화가 될 것이다. 물론 저자는 말하는 연습을 하다보면 듣기 능력도 향상된다고 하였지만, 이건 정말 아니다. input과 output 사이는 4대1 정도로 input이 우세하다. 즉 보통 4마디를 들으면 1마디를 말로 옮길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저자의 주장은 들어오는 양과 나가는 양이 똑같을 수 있다고 주장하니, 이것은 아직 이론적 근거가 없는 외마디 외침에 불과하다.
셋째, 외국인에게 영어를 '적선' 받고 영어만을 위해 영어 '친구' 를 사귀는 것에 대해서는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다. 저자는 영어로 이메일을 주고받는 친구를 정해서 실력이 올라가는 것에 따라 친구들도 교체하면서 실력을 쌓아야 한다고 책에서 말하였다. 이렇게 이메일을 주고받는 사람과 저자가 진짜 친구인가? 영어실력 향상이라는 목표를 성취하기 위하여 사람들을 수단으로 삼아서 필요에 따라 갈아치우는 관계가 친구관계라고?(우리나라의 친구 개념이 이정도로 이기적인 것인줄은 몰랐다)
박노자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이라는 책에 보면, 자신을 미국인으로 오해한 한국 학생이 "우리 친구가 되자. 당신이 나에게 영어를 가르쳐주고, 나는 당신에게 한국어를 가르쳐 주겠다." 는 말을 자신에게 하였다고 한다. 이 말을 이해한(박노자는 한국어를 매우 잘한다) 박노자는 한국말로 "나는 미국인이 아니라서 당신에게 도움을 줄 수 없으니 다른 사람을 알아보라." 고 한국어로(?) 말하였다. 이 말을 들은 학생은 당황하여 멀리 달아났다고 한다. 이 한국 학생의 얼굴에 저자가 오버랩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또한 영어 하나만을 위하여 외국인에게 일부러 말을 거는 것에 대해서 내 평가는 좋지 않다. 물론 실력을 늘리기 위한 저자의 용기에 찬사를 보내야 함은 당연하다. 그러나 단순히 언어를 배우기 위해 지나가는 사람, 즉 강남역 벤치에 앉은 사람이나 지하철 옆자리에 앉은 서울대 영문과 교수(이 사람이 이 책의 추천사를 쓴 사람이다)에게 말을 거는 것이 올바른 행동인가.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우리가 영어 하나 못한다고 이렇게까지 구걸해야 하나?' 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한국에서 영어를 잘했던 사람들의 경우에 대다수가 한국의 외국인들을 활용해 왔지만, 이제 이건 아닌것 같다. 물론 그 방법이 영어를 잘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겠지만, 책에까지 이런 내용을 써서 '너희도 이런식으로 해봐' 라는 식의 권고를 하는 것은 좋지 않다. 왜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영어구걸을 강요하는가?
개인적인 체험을 낸 책에서 많은 것을 기대하지는 않지만, 이 책에서는 내용적인 어설픔 뿐만 아니라 영어에 모든 것을 팔아넘기라고 강요하는 듯한 저자의 태도까지 느껴져서 매우 아쉬웠다. 영어구걸을 하지 않을 날은 언제쯤 올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