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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의 힘 - 믿는 대로 된다
조엘 오스틴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05년 5월
평점 :
우연히 신문을 보다가 이 책을 선전한 광고를 접하게 되었다. '긍정의 힘'이라는 제목이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띄고 있었을 뿐더러, 이 책의 출판사가 두란노라는 것에서 기독교서적이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음, 긍정의 힘이라니...저 목사님은 우리에게 어떤 긍정의 힘을 줄 수 있을까."
광고를 본 후, 서점에 가서 책날개를 열어보니, '사회의 잘못된 점을 비판하기보다는 말씀, 성경중심의 설교...' 라는 코멘트와 함께, 조엘 오스틴 목사는 아버지의 뒤를 이은 2대 목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충 낌새를 알아챈 나는, 책의 안으로 들어가서 각종 화려한 수식어로 가득차 있는 유명인, 유명목사들의 추천사를 보게 되었다. 백지연부터 시작해서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대형교회의 담임목사들의 추천사가 끝을 모르고 이어져 있었던 것이다.
이쯤 되면 하고싶은 말은 거의 다 한 셈인데, 이 책을 읽고 나서 몇 가지 감정을 느꼈다.
첫째, 150~200페이지 정도를 읽고 있던 중, 이 책을 쓴 조엘 오스틴 목사가 '세습목사'였다는 점을 깨닫고 난 후, 이 책을 덮어버리고 싶었다. 듣고 싶은 말, 달콤한 말들에 취해있는 사이에 이 말을 하고 있는 주체가 누구인지도 망각했던 것이다. 물론 아버지의 목회나 사업을 물려받아서 더욱 번창하게 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번창'이라는 것의 기준은 무엇인가? 이 책에서는 아버지 목사가 담임했을 때 6000명에 '불과'했던 교회를 30000명으로 확장시켜 놓은 것을 목회의 성공의 근거로 삼았지만, 이러한 물량적 근거는 진정한 교회의 모습을 나타내기에는 부족하다.
둘째, 조엘 오스틴 목사가 제시하고 있는 '긍정' 이라는 것 역시 '세속적 성공' 을 부르짖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자가 든 예 중에 내가 가장 충격을 받은 예화가 있다. 한 골프선수가 있는데, 그가 중동의 어느 나라에 가서 그 나라의 왕자와 라운딩을 하였다. 라운딩을 마치고 왕자가 골프선수에게 선물을 하려고 하자, 골프선수는 몇 번을 사양한 후, 골프채 하나를 선물해 달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왕자는 알았다고 하면서 나중에 우편으로 부치겠다고 하였다. 2주 후, 그 골프선수는 왕자가 보낸 선물을 보고 기겁을 하는데, 그 선물은 골프채가 아닌 '골프장'이었던 것이다. 이 예화를 든 목사의 목적: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더 좋은 것을 예비하고 계신다."
이 예화는 이 책에서 본 최고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미국에서는 골프가 대중스포츠의 하나로 자리잡고 있는지 어쩐지는 몰라도, 한국이나 미국이나 골프는 여전히 상류층의 운동이다. 저자가 담임하고 있는 교회에 상류층이 많이 다녀서 이런 예화를 들었는지는 몰라도, 이는 골프를 즐길 수 없는 대다수의 현실에는 전혀 적용될 수 없는 꿈같은 이야기이다.
물론 하나님은 없는 자들뿐만 아니라 있는 자들에게도 동일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있는 자들을 위한 설교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 있는 자들도 복음을 듣고 구원을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조엘 오스틴 목사의 설교는 매우 일관성 있고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설교임에 분명하다. 밝고 희망에 찬 메시지만 선포하니 어지 나쁠 수가 있겠는가.
하지만 복음의 폭을 가진 자들로 제한한 것은 아쉽다. 흔히 기독교의 신앙을 '십자가의 신앙' 과 '부활의 신앙' 으로 구분하는데, 조엘 오스틴 목사의 글에는 예수님의 부활의 영광만을 만끽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설교를 하고 있을 뿐, 그 누구에게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고통으로 인하여 나의 편안하고 안락한 생활이 있으며, 음지, 더러운 곳 등에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에 대한 배려심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빌립보서 4장 13절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다. 기독교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말씀이다. 그러나 이 구절 앞에는 바울의 고백적 표현, 즉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라는 4장 12절의 말씀을 상기해야 한다. 주어진 상황에 대한 자족과 만족을 사도바울은 외쳤던 것이다. 무조건 '긍정' 한다고 해서 일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무조건 긍정의 신화에서 벗어나는 용기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