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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가르면 피가 나올 뿐이야
스미노 요루 지음, 이소담 옮김 / ㈜소미미디어 / 2023년 7월
평점 :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에서 그로테스크한 제목과 달리 담담하면서 깔끔한 문체와 감정의 절제를 통해 예상치 못한 감동을 선사했던 스미노 요루의 신간이다.
작가의 제목 작명 갬성은 어디 안가는지 왜 또 이런 괴상한 제목을 들고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속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이번엔 속았다고 할까.. 저번엔 그래도 췌장 관련이었지만 이번엔 수술, 죽음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내면의 본질에 관한 고찰이다.
글 초반에는 사랑받고 싶어하면서도 그런 자신의 모습이 경멸스러워 자꾸 죽고싶어하는 여고생 아카네와 소설속의 인물과 똑같이 생긴 여장남자 '아이'의 노선이 살짝 살짝 다른듯하여 느껴지는 불협화음과 일본의 언더그라운드 아이돌 문화 등에 적응이 안되 살짝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이야기의 장인 스미노 요루 답게 어딘지 부조화스러운 듯한 이야기들이 얽히고 설켜 결국 결말부에서 기가막힌 화음을 만들어 내는 마법을 보여준다.
SNS에 휘둘리지 말고 스스로의 행복을 찾으라와 같은 현대적 가르침들은 많은 기사, 책, 강연 등에서 다뤄진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메세지들이 과도하기에 피로감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좋은이야기도 계속 들으면 지치듯이 어느 순간부터 '진정한 자아를 찾아라'는 말은 클리셰 내지 교조주의로 흘러가버린듯 하다.
하지만 젊은 세대에서 가장 많이 읽힌다는 소설가 답가 작가는 이러한 구태의연한 메세지를 너무도 청신하게 전달한다. 주인공들이 자신의 본모습을 숨기고 다른사람에게 사랑받기 위해 애쓰는 아카네와, 팬에게 보여주기 위한 스토리를 계속 만들어 내기위해 고군분투하는 주리아, 반대로 언제나 자신의 진심을 드러내기에 오히려 진심인지 의심되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독자는 진정한 자신과 마주할 용기가 없는 스스로의 모습을 투영시켜 공감과 위로를 받게 된다.
'너의 췌장을 먹고싶어'가 일직선의 플롯에서 속도조절의 미학을 통해 감정선을 극한으로 자극했다면, 이 책은 멀티버스급의 다차원적 플롯을 하나로 수렴시키는 마법을 통해 생각지도 못한 울림을 준다. 추리소설적 의미의 반전은 없지만 반전 미학의 장인이라고 불려도 좋겠다 싶은 세련된 글쓰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