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책과 그림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지음, 김지선 옮김 / 씨앗을뿌리는사람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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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은 씨앗을 뿌리는 사람에서 <책마을 헤이온와이>를 시작으로 내고 있는 '책'에 대한 재미있는 책 시리즈의 두 번째 책이다. 라니츠키는 독일에서 방영했던(지금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4중주>라는 서평 프로그램의 명해설자이다. '4중주'라는 이름처럼 4명의 패널들이 나와서 진행하는 심야 독서프로그램이고 제법 영향력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독일에서 갓 들어온 한 분의 얘기를 듣자하니 그런 프로가 있다는 건 알지만 그 프로그램 말고도 서평 프로그램이 무척 많고 <4중주>라는 프로그램은 그다지 유명하지 않다고 한다. 독일의 독서 풍경이 부럽기만 하다.

여하간에 이 책은 주로 독일 작가들에 대부분의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셰익스피어나 예외적으로는 바그너 같은 음악가도 있긴 하지만. 대다수 작가들의 이름은 처음 들어보는 이름들이라서 그 사람들의 작품을 얘기할 때도 솔직히 동감하거나 반대할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 책으로 독일문학에 대한 관심을 환기할 수 있었고 앞으론 좀더 관심을 가지고 독일 문학을 보게 될 거라는 것은 자명하다.

읽고 나서 기억나는 것은 작가들 대부분이 유태인이라는 것. 저자도 유태인이라는 것. 그것이 그 이유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리고 문학에 대한 저자의 간략하고도 명쾌한 사유.

"문학은 재미있어야 하고 비평은 명료해야만 한다."

라는 언급은 인상적이다. 비평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지만 뭐니뭐니 해도 비평의 역할이라면 옥석을 추려내고 사람들에게 책을 읽고 싶도록 권하는 일이 중심이 되어야 할 것이다. 비평을 위한 비평은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다. 이 라니츠키는 독설로 유명하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는 그런 비평가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봤다.

이름 있는 서평가들이 제법 있지만 그들이 온전하게 자신의 생각을 드러낼 공간이나 그를 받아들일 만한 환경이 조성되어 있는가 하면 또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한국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나고 풍토가 조성되면(과연 그럴 날이 올 것인가) 이런저런 문제를 일으키는 비평가가 나오는 것도 재미있는 일일 것 같다. 싸움이란 건 하는 당사자들은 성가실지 모르나 그 구경꾼들에게는 얼마나 재미나는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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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인 3색 중국기
정길화.조창완.박현숙 지음 / 아이필드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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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색
정길화 피디
방송국 피디에 대해선 나도 조금 안다. 나도 방송일을 해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어영부영 한 2년을 했는데 짧지만 내가 느낀 것은 방송은 넓고 다채로워 보이지만 깊이가 얕고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방송의 경우에 적당한 표현은 아니다. 제대로 된 시스템에서 합리적인 투자와 시간과 공을 들인 방송물과 그 방송물을 제작한 사람들은 논외로 하겠다. 그러나 우리나라 방송환경에서 제대로 된 방송물(방송물하니까 전체를 다 싸잡아서 말하는 것 같아서 정정을 해야겠다. 다큐프로로)은 없다고 본다. 짧은 제작기간, 부족한 돈, 부재한 시스템 등등 때문에 우리나라의 간판급 다큐프로라 할 KBS일요스페셜을 보면 능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공중파 방송이 그럴진대 외주제작 프로덕션은 말할 나위도 없다. 방송의 미래는 절망적이다. 방송이라는 찬란한 외피에 홀린 수많은 젊은이들이 달겨들었다가 거품이 가라앉은 현실을 바라보면 좌절하지 않을 수 없다. 뭐 반드시 같지는 않지만 나도 그 중의 하나였다.
그래도 KBS, MBC, SBS같은 방송국은 상황이 나은 편이다.

잡설이 길었다. 방송국 피디가 중국에 관심을 갖고 이것저것 방송인의 관점에서 써놓은 글치고는 여러 가지 참고할 내용들이 있다. 그래도 역시 얇기는 하다. 나이에서 느껴지는 문장도 다소 고루한 느낌을 주었다. 중국에 처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는 이들에게는 권할 만하지만 조금 깊이 알고 싶은 이에겐 그다지 추천하고 싶지 않다. 한국 티브이 다큐에서 볼 수 있는 딱 그 정도의 수준이다.

2색
조창완 중국 전문 프리랜서
단연코 이 장에서 가장 재미있는 꼭지를 고르라면 처음 나온 조창완의 인생 역정이야기를 꼽겠다. 어떻게 중국 전문 프리랜서로 동분서주 활약하게 되었는지가 잘 나와 있다. 기자 출신이라서인지 다분히 취재적 욕구 같은 것이 눈에 뜨인다.
창장 강이나 임시정부를 역사를 따라간 것이나 고구려 관련글이나 중국의 미래 같은 꼭지들은 글은 다 개별적으로 쓴 것이겠지만 모을 때 나름대로 선후 구성을 맞추고 시의성을 따져서 편집한 것 같다. 중국 관련 콘텐츠에 대한 조창완의 욕심이나 사업 구상 같은 것은 의미심장하고 주목할 만한 가치가 분명히 있다. 그가 이제껏 취재하면서 수집하고 모은 자료들은 분명 엄청난 자료가 될 것이다. 나는 아직까지 중국과 관련한 자료를 제대로 수집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나의 시야가 좁았거나 그 사람이 노출되지 않았거나 둘 중의 하나이더라도 조창완이 가진 이력이나 시장성은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3색
박현숙
중국사회과학원 박사과정 겸 기자
3색 중에서 제일 내 취향에 맞았다. 사람 얘기를 담뿍 담고 있으니까. 아마도 세 사람 중에서 가장 중국어를 잘하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사람 얘기를 들으려면 그 사람하고 깊이 얘기할 수 있는 정도의 어휘구사력을 갖추지 않고서는 힘드니까 말이다.
박이 쓰는 모든 글은 그 자신이 만난 사람을 통해 이뤄진다. 그러니까 중국의 신세대는 자신이 잘 아는 한 친구를 통해서 보는 셈이고, 중국 경극배우도 마찬가지 자신의 한 친구를 통해서 이뤄진다. 야오제 얘기도 마찬가지. 그러니 접근하기 쉽고 술술 넘어간다. 재미가 있으면서도 감정을 담기도 좋다. 아는 사람의 이야기니까.

3인 토론기가 뒤에 붙어 나오긴 하지만 앞에서 얘기했던 내용과 크게 벗어나지 않으므로 생략한다.
이 책은 우선 중국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읽어두면 반드시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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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원 미상 여자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조용희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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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릭 모디아노란 이름이 왜 익숙한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소설은 3인의 소녀에 관한 것이다. 장르로 구분하자면 간단하게 통과의례 소설이라고 간단하게 정의할 수도 있다.

모디아노는 프랑스 작가고 그는 2차 대전 당시 유년시절을 겪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나이가 지금은 할아버지쯤 되겠다. 할아버지가 쓴 글치고는 무척이나 감상적이고 여리다.

이런 비유라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난 신경숙을 떠올렸다. 애매하고 몽롱하고 나약한데다가 한없이 깊은나락으로 빠져드는 느낌이 났던 것이다. 뒤에 옮긴이의 말을 읽어 보면 그의 소설은 그다지 철학적이지 않단다. 그냥 감정을 느낀 대로 솔직하게 적어내려갔단다.

상복도 열나 많아서 남들은 평생 하나도 받기 힘든 상을 여럿 받았다. 등장하는 소녀들은 죄다 가난하고 결손 가정 출신인데다가 출신이 그럴 듯한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도 가난하다거나 부족하다거나 결핍된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그냥 사실은 엄청난 배경을 가지고 있는 여자들인데 그 사실을 숨기고 잠시 '노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냥 그랬다. 내가 꼬여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번역은 훌륭하고 편집도 훌륭해서 술술 잘 읽히고 눈에 거슬리지 않는다. 표지 디자인이 볼 만하다. 양장인 것은 별로 맘에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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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가 사라진다면 - 2023년, 영어 식민지 대한민국을 가다
시정곤·정주리·장영준·박영준·최경봉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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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수수께끼>란 책이 있다. 그 책은 일반 대중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풀어낸 일종의 한글의 역사서이자 이론 입문서 정도라고 평가할 수 있을 텐데 그 책을 읽고 나서 이런 책도 상품이 될 수 있고 사람들에게 읽히는구나 하고 감탄하고 그 저자들의 면모에 대해 궁금해 한 적이 있다.

이 책 <한국어가 사라진다면>은 그 2탄쯤 된다고 할 수 있다. 저자들이 무슨 스터디 모임 같은 것을 만들고 같이 프로젝트 작업을 한다고 했다. 한글을 가지고 이런 대중적인 글쓰기 작업을 진행할 수 있다는 것. 무척 고무적이고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생산은 아마도 최근 대중적으로 쉽게 풀어읽는 인문서의 바람에 기인한 것이라고 하겠지만 소재를 선택하고 그 소재를 풀어내는 것은 적당한 필자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인 바. 저자들의 노고와 발랄한 아이디어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은 글쓰기 형식에서도 색다른 형식을 취한다. 말하자면 SF적 글쓰기인데 현실에 얻을 수 있는 자료를 근거로 해서 미래를 예측하고 경종을 울리는 방식이다.

글은 무척 쉽고 잘 읽힌다. 결국 현실에서 도출할 수 있는 최대한의 자료를
뽑아서 분석하고 그 분석의 토대 위에서 한글이 소중하다고 주장하고 한글은 우수하기 때문에 결국은 살아남을 것이라는 식의 낙관적인 해석을 하고 있다. 결국 결론은 한글을 소중히 가꾸고 다듬어야 한다는 것이겠지만 중간중간에 내비치는 여러 가지 한글에 대한 새로운 정보들 이를테면 컴퓨터 인지언어학적 측면에서 한글이 세계적으로 크게 어필할 수 있다는 것과 같은 정보는 무척 유용하고도 자극적인 것이었다.

세계 유수의 언어학자들이 공히 한글이 과학성과 창조성을 인정하고 있다고 한다. 보통 언어의 창조과정이나 기원이 알려져 있지 않은 데 비해 한글은 '세종'이라는 분명한 창제자도 있고 여러 가지 과학적이고 인문적인 연구 과정을 통해서 창제되었다는 점 등을 우리는 알고 있다.

한글을 소재로 한 대중적인 글쓰기 작업, 그리고 분명히 그 소구 독자층이 있다는 것. 매력적인 사실이 아닐 수 없다. 한글을 다룬 책답게 오타나 비문은 발견하지 못했다. 다만 결론까지 읽고 나서는 좀 허무했다. 뭔가 땅 하고 때리는 결론을 내려줄 줄 알았는데 그런 게 없어서 좀 섭섭했다.  뒤의 부록에 나오는 복거일과 관련한 영어 공용화 논쟁을 좀 핵심적으로 다루고 다른 기사들은 좀 따로따로 묶었으면 더 집중적으로 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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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아 연인아
다이허우잉 외 지음, 김택규 옮김 / 휴머니스트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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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다이허우잉.
그 이름을 맨 처음 보고 남자인 줄 알았다. 알고 보니 여자였다. 다이허우잉과의 첫만남은 <인간아 아 인간아>신영복 선생의 번역으로 나왔던 책으로 당시 같이 교회에 다니던 한 친구가 선물해 주었다. 지금은 교회도 안 다니고 그 친구와도 연락이 끊어져 버렸다. 아, 그 친구가 주기 전에 어디선가 읽어서 정작 선물 받은 그 책은 읽지 않고 그냥 서가에 꽂아 두었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는 무척 재미나게 읽었다는 기억만 난다. 하여 지금 이 책. 내가 말하려는 이 책은 아는 선배가 번역한 책이다. 학교에 다닐 때 교양과목으로 정치학 수업을 듣곤 했는데 그때 그 수업이 아니었으면 만날 일이 없었던 선배였다.

희한하게도 그 선배는 대학원에서 중국문학을 전공했고 그것도 중국시를 전공했다. 당시 선배의 면모로 보아서는 잘 상상이 되지 않지만.

그리고 시간이 흘러흘러 묘한 인연으로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 선배.
사람의 인연이란 건 정말 알 수 없는 일인가 보다.

잡설이 길었다.

이 책은 참 무섭고 징그러운 책이다. 다이허우잉의 편지 그러니까 가오윈에게 보낸 편지글인데 가오윈과 그녀의 남편인 우중제가 당시의 다이허우잉과 얽힌 사연을 보충했다. 이 글은 제3자에게 말하는 절절한 연애편지라고 할 법하다.

이 짧은 글은 굴곡 심한 중국현대사가 감수성 예민한 한 개인에게 어떻게 투영되었는가를 보여 준다. 크게 문화대혁명, 대약진, 반우파 운동, 하방 운동 등등 지금의 한국을 살고 있는 나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다양한 사회주의 관제 운동들을 이 사람은 한 몸으로 돌파하고 있다. 일반 민중의 입장은 아니고 지식인의 입장이다. 그리고 사랑 이야기다.

이 책은 사실 너무나 빨리 읽혀서 그런 참혹한 내용을 이렇게 쉽사리 읽어버린다는 게 사실 무척 미안스울 정도다. 그 사람이 겪은 그 시대 그 상황을 내가 어떻게 제대로 느낄 수 있겠는가. 문학적인 글로 느낌을 가져 보려고 노력하는 건데 잘 안 된다.

내 감수성이 이렇게 말라버렸나 싶어서 슬프다. 근데 이상한 건 티브이나 영화를 볼 때는 감정 몰입이 엄청 잘 된다는 거다. 이상하다. 내 정서체계에 뭔가 문제가 있는 걸까.

짧지만 당시 중국 상황을 감잡는데 도움이 되는 책이다. 다만 주는 후주가 아니라 각주를 달았으면 훨씬 읽는 데 도움이 될 뻔했다. 그리고 부분부분 편집상의 오류가 눈에 띈다. 책을 급하게 만들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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