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신 치바 이사카 코타로 사신 시리즈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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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노트>를 연상하게 하는 이 소설은 주요 캐릭터에 명확한 몇 가지 특성과 활동의 제한을 부여한다.
활동기한이 일주일이라거나 맨손으로 사람과 접촉하면 그 사람의 수명이 1년 단축되고 바로 기절해버린다던가 일할 때마다 비가 내린다거난 또는 음악만 나오면 어찌할 줄을 모른다던가 하는 정해진 규격 속에서 이야기를 진행하여간다.

간단하게 말하면 이 책은 딱 바캉스용이다. 눈부신 해변가의 비치숄 그늘 아래서 읽으면 좋을 책이다.
이야기 전개에 무리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여유랄까 쉼이라는 단어를 자꾸 떠올리게 한다.
이런 구절이 나온다.

얼마간은 조용한 시간이 흘렀다. 비는 연신 창을 두들기고, 가위가 머리카락을 자르는 소리가 울리고, 그 리듬에 맞추듯 기둥에 걸린 시계의 초침이 움직인다. 내 옆에서는 잡종견의 호흡이 조용히 반복되고 있다. 가위, 시계, 개의 숨소리 그리고 가게 안에서 부는 난방기의 바람이 한데 섞여 내 주위를 떠다닌다.

전망 좋은 바닷가의 한 미용실을 떠올리며 이런 구절을 접하면 쉰다는 느낌이 안 들 수 없다. 사신의 무심하지만 의도되지 않은 성격도 전체 글에- 어떤 끈적하지 않은 그렇다고 차가워서 기분 나쁠 정도는 아닌-건조함을 준다.

내가 제일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연애 상담사'였다가 마지막 '치바 vs. 노파'로 바뀌었다.
읽으면 진짜 '하트워밍'이 된다.

대개 가벼운 느낌이면서 중간중간 집어넣은 무거운 주제에 대한 작가의 의견을 교묘하게 비추어지는데 그게 천박하지 않아서 좋았다. 사서 읽어도 돈이 아깝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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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 - 정호승 산문집
정호승 지음 / 비채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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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은 상처와 고통을 말하는 시인이다.
상처와 고통을 말할 때 나는 나쁜 것, 받아서는 안 될 것, 되도록이면 겪고 싶지 않은 것을 떠올리는데 이 시인에게는 그것이 아닌 모양이다. 시인은 상처 없이는 고통 없이는 온전한 인생을 살 수 없으니 상처를 보듬고 고통을 감싸안고 살라고 충고해준다. 담백한 자기 고백. 시인에게는 솔직한 자기 토로가 나에게는 충고가 된다. 이것은 사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는데 그의 인생 자체가 망가지면 망가지는 대로 훌륭하면 훌륭한 대로 그것이 나에게는 어떤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이 험악하고 고통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시인은 상처와 고통을 밥 삼아 잘 살아가고 있고 독자에게도 이렇게 생각하는 편이 더 좋지 않겠느냐고 권하는 것이다. 이 지구 이 한국에서 살아가는 사람 가운데 그 누가 유쾌하게 즐겁게만 살아갈 수 있겠는가. 대개는 상처와 고통 속에서 그것들을 견디며 살아간다. 대개는 슬프게 아프게 받아들이면서 산다. 그 사람들에게 상처나 고통이 결국은 당신 인생에 도움이 될 것이며 당신의 인생은 그로 인해 훌륭해질 것이라고 말한다면? 고생하면서 세상 사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이런 말들이 큰 위로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사회에서 시인의 용처란 아마 위로일지도 모른다. 각박한 세상살이에 던져주는 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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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어느 초원에서 잘까 - 아르항가이 초원의 어느 여름 이야기
비얌바수렌 다바.리자 라이쉬 지음, 김라합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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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중국의 소수민족 자치구인 내몽고가 아니고 독립공화국 몽골이다.
그중에서도 주인공은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아닌 게르를 짓고 때를 맞추어 옮겨 다니는 전형적인 유목민 가족이다.
초원은 푸르고 하늘은 높으며 밤에는 별도 쏟아질 듯 많다. 아이들은 바람에 맞아 볼이 빨갛다.
내가 보기에 그들의 생활은 너무도 단순하고 간단해서 전혀 재미가 없을 것 같은데 그들은 그래도 큰 문제 없이 잘 살고 있다.
이를테면 그들이 아이에게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음을 깨우치는 방법은 이렇다. 손을 쫙 펴고 손바닥을 이로 깨물라고 시킨다. 아이는 여러 번 시도하지만 번번히 실패한다. "거봐, 모든 걸 다 가질 순 없어."

이 이야기는 한 편의 동화이다.
나와는 너무나도 다르게 살고 있는 이들을 보면서 나는 참으로 욕심이 많구나, 편하게 살고 있구나 그렇게 복에 겨운데도 또 바라는구나... 그랬다. 내가 생각하던 것과는 다르게 몽골에는 유목민만 사는 것도 아니고 도시사람이 더 많고 그들도 선거도 치르고 학교도 다니면서 현대생활을 즐기고 있다는 게 어이없게도 신선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고정관념이라니! 거기도 21세기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는 세상 한복판이 아닌가.

도시에서 찌든 마음이 이 책을 읽고 나니 조금은 가시는 것 같다. 안 그래도 내내 도시를 떠나 시골에 가서 살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었는데 이 책을 보니까 그 결심이 더욱 굳어진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 이런 책을 보는 이유는 뻔하다. 위로받기 위한 것이다. 상채기가 가득한 마음을 치료하기 위한 것이다.

책은 너무나 정성스럽게 잘 만들었다. 교정도 흠 잡을 데가 없다. 사진도 귀엽고. 남은 건 사람들이 책을 보는 잠깐 동안이라도 여유를 가지는 것이겠다. 몽골의 초원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맡겨보는 것이겠다. 그러다 보면 누가 알겠나. 조호르가 옆에 와서 손바닥을 핥아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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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빔보가 내친구 작은거인 8
마르틴 아우어 지음, 이유림 옮김 / 국민서관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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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표지가 심상치 않은 책이었습니다.

아이와 새를 꿀꺽 삼키는 거인(자세히 보면 거인 입 속으로 아이와 새가 다이빙하는 것 같기도 하네요)과

그 위에 커다란 글씨로 쓰인 제목 '어느 날 빔보가'를 보니 내용이 무척 궁금해지더군요.

어느 날, 엄마 아빠에게 새를 사 달라고 조르는 빔보와

"절대 안된다!"고 딱 잘라 말하는 엄마 아빠.

아이와 부모 사이는 늘 그렇듯, 이 책에서도 빔보와 엄마 아빠는 서로 팽팽한데요.

집에서는 새를 키울 수 없다는 부모님 곁을 떠나,

새와 함께 거인까지 물리치고 돌아오는 빔보를 보니,

괜히 제 마음까지 통쾌해지더군요.

"엄마 아빠, 나 새 한 마리 사 주세요. 안그러면 당장 쓰러져 죽을 거예요!"

라고 말하는 당돌한 빔보를 보면서,

아이들은 마치 자기가 빔보가 된 듯 책 속에 푹 빠져들지 않을까 싶네요.

 

짤막하고 입에 잘 붙는 글이 눈에 띈다 싶었더니,

원래 이 이야기가 연극으로 만든 것이었다고 하네요.

그래서 그런지, 혼자 눈으로 책을 읽는 것보다는

아이들끼리, 아이와 어른이, 함께 연극을 해 보면 훨씬 재밌을 것 같아요.

귀여운 그림과 함께, 이 책을 연극으로 해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도 재미나게 소개되어 있구요.

교실에서 아이들이 한데 어울려 짧게 연극 한 편 꾸며 보는 데 정말 좋을 것 같아요.

초등학교 선생님들에게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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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조범환.문왕 지음 / 푸른역사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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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를 읽는다는 건 무엇일까?
아주 흔하게 얘기되어지는 것은 사람의 삶이란 건 돌고 또 도는 거라서
다 그것을 좀더 낫게 살아가기 위한 방편으로 기록으로 남기고 그것을
읽는다, 라고들 이야기하기도 한다.

일리 있는 이야기다. 그럴듯하다. 그와는 좀더 다른 쪽으로 어떤 이야기의
원형을 확인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 세상에는 인간이 이야기를 지어내기
시작하면서 셀 수 없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생겨나고 사라졌고 사람들은
본질적으로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경향이 없지 않은데 그 이야기를 잊지
않고 대대로 물리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고 가공해서 이야기를 풍부하게
하기 위해서, 라고 볼 수도 있다.

푸른역사에서 내는 최근의 역사책은 몇 줄의 기록으로 남은 사료들 이용해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최소한의 자료만을 가지고 최대한의
상상력을 발휘하는 셈이다.

이 책은 역사에는 결코 있을 수 없다고 하는 가정으로 시작한다. 만약 그랬다면?
가능성은 무궁하다. 그 수많은 가능성 가운데 그럴 듯한 합리적이고 타당해 보이는
가정들을 묶어서 이 책은 씌어졌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라는 제목은 그래서
나온 것이다. 이 책은 질문이기 때문에.

다른 시리즈는 읽어보지 못해서 알 수 없으나 이 책은 신라 마지막 개혁군주라는
경문왕의 이야기를 이야기를 통해서 생생하게 접근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책이
많이 팔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신라 말기라는 대중들의 관심을 별로 끌지 못하는
시대 탓일 것이다. 읽어보면 알겠지만 책은 속도감 있게 읽히고 이끌어가는 논리도
납득할 만해서 읽는 내내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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