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마더스
도리스 레싱 지음, 강수정 옮김 / 예담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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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4세로 돌아가신 도리스 레싱의 마지막 소설집 <그랜드마더스>는 네 편의 단편이 들어있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그랜드마더스'는 나오미 왓츠가 주연한 영화 <투 마더스>의 원작이다. 나는 이 영화를 보았다. 영화를 보면서 도리스 레싱의 원작이 있음을 몰랐기에 그저 나오미 왓츠와 앤 폰테인 감독의 영화라고만 생각했다. 영화를 보면서 꽤 충격적이었다. 그 영화의 스토리를 그대로 한국에서 드라마로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고민했다. 아마도 아침드라마, 혹은 주말 막장드라마를 벗어나지 못 했을 것이고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가지고 왔을 것이다. 이 이해하기 힘든 스토리를 적어도 영화가 상영되는 두 시간 동안만큼은 공감도 하고 이해도 하면서 볼 수 있었던 것을 나는 감독과 배우의 힘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랜드마더스>를 읽고 난 뒤 감독이 이 원작의 힘을 믿고 영화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파라다이스 같은 해변을 배경으로 두 절친, 로즈와 릴(주위에서 레즈비언으로 오해할 정도의)은 가까이에서 아들을 키우며 살고 있다. 엄마도 친구, 두 아들도 친한 친구 사이다. 

이 두 아들은 그리스의 조각상 같은 몸매(그래서 신과 같은 아우라를 지녔다고 )를 지닌 멋진 남자로 자라 두 엄마의 흐뭇한 눈길을 받는다. 로즈의 아들 톰은 릴에게, 릴의 아들 이안은 로즈에게 끌리고 그들은 서로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는다. 이들의 10년 동안의 금기의 사랑을 레싱은 특유의 문체로 그려낸다. 때로는 아름답기도 하고 때로는 뜯어말리고 싶게도 되는 그 사랑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과연 이 이해하지 못할 일들이 가능이나 한 것일까? 


 


그리고 주목하고 싶은 작품 '러브 차일드'. 제2차 세계대전 중 징집된 영국의 군인 제임스가 커다란 배를 타고 이동하던 중 아프리카의 케이프타운에 나흘간 머물면서 만난 대프니라는 유부녀와의 짧고 강렬한 사랑, 그리고 영원한 사랑이 바로 '러브 차일드'다. 긴 이동 끝에 인도에서 군 생활을 하는 제임스는 그 나흘간의 사랑을 곱씹으며 살아간다. 그 사랑의 기억만으로 모든 다른 것을 견딜 수 있었던 제임스는 다시 그녀를 만나길 기대한다. 제임스는 전쟁이 끝나고 영국으로 돌아가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지만 그가 케이프타운에서 만났던 그녀가 유일한 그의 사랑이며 그녀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그의 그리움의 전부다. 나흘간의 화염 같은 사랑을 안고 사는 제임스, 그의 연락을 받은 것처럼 보이지만 남편 조와 살면서 또 두 명의 아이를 낳은 대프니, 그리고 그들의 관계를 아는 베티, 제임스의 부인 이들의 시선은 서로 다른 곳을 향한다. 제임스의 사랑은 환상일까? 집착일까? 진실일까?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이렇게 서로 이해할 수 없는 경계를 갖기도 한다. 우리는 그것을 도덕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관습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리고 심지어 인간이기에 그렇다고도 한다. 도리스 레싱은 여러 가지 질문을 독자에게 던지고 있다. 특유의 세련된 문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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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수록 정치적인 음식들 - 음식으로 들여다본 글로벌 정치경제
킴벌리 A. 위어 지음, 문직섭 옮김 / 레디셋고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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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음식으로 뭘 하는가를 가르쳐 주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나는 말해 줄 수 있어요. 혹자는 먹은 음식으로 비계와 똥을 만들고, 혹자는 일과 좋은 유머에 쓰고, 내가 듣기로는 혹자는 하느님께 돌린다고 합디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조르바는 이렇게 말한다.

이번에 읽은 <알수록 정치적인 음식들>에 따르면 우리가 먹는 음식으로 우리는 어떤 일을 할까를 생각하기 전에 우리가 먹는 음식이 어디서 오는지, 어떤 정치, 경제적 이유를 갖고 있는지 안다면 우리는 먹는 음식으로 조금 더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토마토는 과일일까? 채소일까?

우리는 당연하게도(사실 고개를 갸우뚱하기는 하지만) 채소라고 답한다. 이유는 그렇게 배웠기 때문이다. 세계 음식 공급 시스템에 의해 공급되는 음식이 늘어나면서 생긴 결과와 이러한 현상이 세계경제와 어떤 밀접한 관계가 있는지 알려주는 킴벌리 A. 위어의 <알수록 정치적인 음식들>에 따르면 토마토가 채소가 된 데에는 정치적인 이유가 있다.


비록 토마토가 법적으로는 채소로 분류된다고 하더라도, 토마토는 꽃의 씨방이 익어 열매를 맺는 것이므로 식물학적으로는 과일이다. 하지만 1893년 닉스 대 헤든의 소송사건을 맡은 법원이 관세 규정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려고' 토마토를 채소로 분류한 판결로 인해 이런 혼동이 생겼다. 당시 과일에는 관세가 부과되지 않았다. 토마토가 인기를 끌면서 토마토 거래에 세금을 부과해 이익을 얻으려는 움직임이 생겨났고 이에 따라 토마토는 법적인 이유로 채소가 됐다.


그 이유 또한 재미있다. 토마토가 식물학적으로 과일이기는 하지만 사람들이 과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채소로 분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람들이 토마토를 저녁식사에 먹기는 하지만, 후식으로는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먹는 음식 재료 하나하나에는 이렇게 정치적인 이유, 경제적인 이유가 들어있다. 우리가 어떤 음식을 주로 먹느냐에 따라(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새로운 정책이 나오고 세계 경제에 영향을 미친다. 이 책에서는 향신료, 카카오, 콩, 토마토와 참치 등 우리가 먹는 음식 재료를 중심으로 그 음식의 역사와 정치 경제학적인 요소를 분석하고 있다. 다국적 기업과 개발도상국에 대한 착취에 대한 검토뿐만 아니라 로커보어 운동 (자신이 사는 주변 지역에서 난 먹을거리를 섭취하고자 애쓰는 사람들이 펼치는 운동)과 유기농 식품을 둘러싼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문제까지 짚어주고 있다.

지구를 생각해서 로컬 푸드와 유기농 식품을 먹자는 운동은 실제로는 이런 음식이 더 비싸기 때문에 지역적으로나 세계적으로 공급하는 음식량이 줄어들어, 오히려 부유한 사람들에게 특혜를 주게 된다는 것이다. 불행한 현실이지만, 유기농 재배방식만으로는 세계 인구, 특히 미래의 인구를 모두 먹여 살릴 수 없다.


킴벌리 A. 위어는 대중의 압박과 의정서를 통한 협력, 그리고 공정무역으로 인해 높아진 가격을 기꺼이 지불하는 소비자의 의지, 이 모두가 인간과 환경의 안전을 위해 필요하며 우리가 식단에서 동물성 단백질 섭취량을 줄이고 채소 위주의 식단으로 나아간다면 환경비용도 줄어들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는 "먹는다는 것은 숭고한 의식이며, 고기, 빵, 포도주는 정신을 만드는 원료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우리에게 먹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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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필 증언록 1~2 세트 - 전2권 - JP가 말하는 대한민국 현대사
김종필 지음, 중앙일보 김종필증언록팀 엮음 / 와이즈베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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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무력으로 정권을 빼앗는 일, 재배 계급 내부의 단순한 권력이동으로 이루어지며, 체제 변혁을 목적으로 하는 혁명과는 구별된다. 대부분 군대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이후에는 언론을 통제한다거나 반대파를 숙청하고 계엄령을 선포하기도 한다. 이것은 은밀하게 계획되며 기습적으로 감행된다.

답>

쿠데타

그런데 김종필은 이 질문에 대해서 "혁명"이라고 답했다.

명확한 오답이다.

이것은 혁명이 아니다. 피지배계급이 주체로 체제 변혁을 꾀하는 것, 즉 민중의 동의와 지지와 참여가 있어야 혁명이다. 그러므로 대한민국에서 1961년 5월 16일에 발생한 사건은 군사쿠데타가 답이다. 김종필이 계획하고(김종필 증언록에 따르면 5.16 군사쿠데타는 자신이 계획하고 박정희와 군사세력이 동조했다) 성사시킨 5.16에 대해 시종일관 '혁명'이라고 칭하는 <김종필 증언록>은 사실에서 많이 벗어난다. 즉, 이것은 김종필의 '증언'일 뿐이다.

1961년 5월 16일에 대한민국의 정치사에 등장해서 2004년 정계를 은퇴하기까지 43년 동안 자신이 겪은 대한민국 정치를 다룬 <김종필 증언록>은 일단 재미있게 읽힌다. 삼국지처럼, 혹은 정치 드라마처럼 흥미롭다. 그가 사생의 결단을 했다는 그 절박함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바는 없지만 6.25 전쟁을 치른지 10년도 안되는 상황, 어지럽던 나라에서 혼란스러운 풍조에 종지부를 찍었다고 하는 5.16 군사쿠데타를 일으키는 그 몇 달을 마치 영화처럼 그렸다. 하지만 곳곳에서 김종필이 역사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드러난다. 절박했다고 하지만 이유가 부족하고 4.19는 벌어진 일이 되어버린다.


1961년 5.14일 일요일. 나는 아내에게 군복을 준비해 달라고 했다. ...... 나는 그해 그 봄, 그렇듯 결연했다. 사생의 각오로 덤비지 않으면 안 될 절박함이 내 마음속 깊숙이 자리 잡았던 것이다. 중략 1960년 4.19가 벌어졌다.

당시 소장이던 박정희는 김종필의 증언에서 박 장군이 되기도 하고, 혁명공약 제1조의 '​반공을 국시의 제1의로 삼고'라는 문장은 박정희의 빨갱이 혐의를 불식시키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은 아주 사소할 수도 있는 것이 시대의 흐름을 업고 더욱 커져서 온 국민을 옥죄는 사상이 되기도 함을 엿볼 수 있다. 비례대표를 만들었던 이유가 당시 쿠데타의 주요 세력이었던 이북 출신의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는 증언은 솔직하고 재미있는 부분이었다.

한국 근현대사의 주요 현안에 김종필이 관여하지 않은 부분이 없어 보일 정도로 그는 현대 정치사의 곳곳에 등장해 흐름을 바꿔놓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가진 책임이 더욱 크다는 생각이 든다. 자화자찬과 5.16의 미화로 증언록의 대부분을 채우기는 했지만, 거꾸로 우리의 의식이 이런 정치가와 정부를 용인했다는 반성도 하게 된다.

모든 국민은 자기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

프랑스의 정치가 토크빌(Alexis de Toqueville:1805~1859)의 말이 딱 맞는 말이다 싶다. 랑케가 말한 '원래 그러했던 그대로'라는 실증주의 역사철학의 진술에 매여 역사적 서술은 모두 사실에 근거한 것처럼 잘못 알고 있는데, 여러 사실들 중에서 선택하는 것도 그 사실을 해석하는 것도 모두 주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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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전 - 법정이 묻고 성철이 답하다
성철.법정 지음 / 책읽는섬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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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심정적 불교신자'다. 이런 단어가 성립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렸을 적 할머니를 따라 절에 간 기억만 가지고 있을 뿐 성인이 되기까지 종교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결혼을 하고 난 뒤 불교학생회 활동을 했다는 남편을 따라 절에 몇 번 따라가 잠도 자고 밥도 먹고(마치 잘 아는 친척 집에 놀러 간 것 마냥) 먹을 것도 잔뜩 챙겨서 온 적이 있다. 남편을 따라가서 만난 비구니 스님은 마치 친정 엄마처럼 따스하신 분이셨다. 스님과의 이야기도 그저 사는 이야기여서 불교의 교리를 딱히 배워 본 적도 없다. 하지만 이리저리 책을 읽다가 우연히 만난 종교 서적 중에서 법정 스님이 쓰신 글이 가장 마음에 남았고, 그래서 쉽게 쓴 <법구경, 십이지장경>을 읽어 본 적이 있다.  성철 스님의 경우 딱히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그저 이름이나 겨우 알고 있는 정도다. 이번에 읽은 <설전>이 성철 스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


법정이 묻고 성철이 답하다는 부제를 단 <설전>은 성철 스님을 가장 가까이 모셨다는 원철 스님의 증언을 토대로 두 사람 사이의 일화와 대화를 기록한 것이다.

이 책 <설전>에도 나오지만 법정 스님은 성철 스님에게 쉽게 수긍하지 않고 꼬치꼬치 캐묻는다. 위대한 스승 앞에 무턱대고 고개를 끄덕이지 않는 날카로운 질문과 그런 질문에도 계속 답해가는 성철 스님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법정 스님의 질문은 나와 같이 불교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물어보았음직한 질문부터 공부를 많이 한 이들이 다가갈 수 있는 고차원적인 질문까지 이어진다.


'왜 하필이면 불교를 택하셨느냐'라는 질문에 성철 스님은 답한다. "진리를 위해서"

성철 스님의 답을 구체적으로 들어보자.


나는 진리를 위해서 불교를 택한 것이지, 불교를 위해서 진리를 택한 것이 아닙니다. 내 생각이 모자란 건지 알 순 없지만 내가 아무리 생각하고 연구를 해 봐도 그 어느 진리보다 불교가 가장 뛰어난 것 같아요. 그래서 불교를 하고 있지요. 하지만 불교보다 더 나은 것이 있다 하면 그때는 미련이 없습니다. 인정사정없이 싹 벗어 버리지요. 그러니 언제든 진리를 위해서 산다는 이 근본 자세는 조금도 변동이 안 될 일입니다. 참으로 진리를 위해 살려면 세속적인 일체 명리는 다 버려야 합니다. 만약 그것이 앞서면 진리는 세속적인 영리를 추구하는 일종의 도구가 되어 버리니까요. p.51

​또 다른 질문 한 가지, "유교와 기독교와 불교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은 명쾌하다. 역시 성철 스님의 답을 들어보면,

유교와 기독교와 불교의 차이점 유교는 문자에 의지해서 세운 것이고 기독교는 하느님의 계시에 의해서 성경에 의지해서 세웠고 불교는 깨달음, 스스로의 힘으로 자성하는데서 세워졌다. .......부처님께서 직접 법문을 하시고도 그 언어문자는 달 가리키는 손가락이다 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수행하는 스님들에 대한 내 생각이 조금은 달라졌다. 나는 솔직히 스님들이 세상을 버리고, 속세를 버리고 산에 들어갔다고 생각했다. 힘들고 어지러운 세상을 버린 '참 맘 편한 사람들'이란 생각이 항상 있었다. 그래서 심지어 스님에게 '스님도 속세에 한 번 살아보세요. 얼마나 힘든지."라고 말한 적도 있다. 성철 스님은 수행의 목적이 자신을 위하는 데 있지 않다고 말한다. 남을 위해서 수행을 하고 만나는 모든 중생이 본래 부처임을 깨닫고 우리가 사는 세상이 원래 극락세계임을 깨닫는 것이 바로 불교라고 말한다. 현실 세계에서 행복을 찾는 것을 포기하고 다른 세계에서 절대 행복을 찾는 것이 부조리함을 말하며, 스스로가 절대적인 존재이며, 자기뿐만 아니라 남도 그렇다는 것을 알고 서로를 이롭게 하는 것이 불교의 근본이라는 것이다. 다른 무엇보다 가슴에 남는 말은 밥을 '먹는' 사람이 되어야지 밥에 '먹히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말이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이 스스로를 죽이는 일, 자살이 되는 길이다.

우선 밥부터 먹고 봐야 하지요. 그러나 밥을 '먹는' 사람이 되어야지 밥에 '먹히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인간이 기술의 신봉자가 되고 물질의 노예가 되어 버리면 자살이 되어 버립니다.


참 이상한 일이다. 이런 책을 읽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책을 읽는 것만으로 욕심이 약해지고 눈이 맑아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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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도 가까운 - 읽기, 쓰기, 고독, 연대에 관하여
리베카 솔닛 지음, 김현우 옮김 / 반비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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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꼭 씹어가면서 읽고 싶은 책을 만났다. 평소에 먹을 수 없는 과자라서 나만 아는 곳에 숨겨두고 몰래 먹고 싶고, 조금씩 아껴가며 야금야금 먹고 싶은 과자처럼 그런 책이다. <멀고도 가까운>을 쓴 리베카 솔닛을 나는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라는 책의 서평을 통해서 알았다. 그 책을 읽은 것은 아니지만, 서평만으로도 무릎을 치며 좋아했다. 어쩌면 내 생각을 이렇게 시원하게 짚어주고 있는지 하며.
안타깝게도 그 책은 읽지 못했지만, 전미비평가 협회 상 최종 후보로 올랐다는 그녀의 최신작 <멀고도 가까운>이 그 아쉬움을 달래주었다.
이 책은 그녀가 알츠하이머에 걸린 어머니를 돌보는 때부터 시작해서 쓰게 된 '회고록'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단지 회고록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다양한 이야기를 품고 있어서 그저 '어떤 이야기'라고 말하고 싶다. 이 책의 시작은 알츠하이머에 걸린 어머니의 집 마당에 있는 살구나무에서 따 온 산더미 같은 살구에서부터 시작한다. 서로 간에 이해가 부족한 두 모녀의 이야기는 <프랑켄슈타인>, <나니아 연대기>, <눈의 여왕> 등의 책 이야기에서부터 가까이 지내던 사람들의 이야기, 쓰기에 대한 이야기, 저 멀리 아이슬란드에서 있었던 이야기 등 경계 없이 뻗어나간다.
마치 <천일야화>에서 셰에라자드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실타래처럼 줄줄 풀어져 나오는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이야기를 밤이 새도록 또 다른 밤이 이어지도록 듣고 싶었다. 작가인 리베카 솔닛은 부제인 '읽기, 쓰기, 고독, 연대에 대하여'처럼 읽기에서 쓰기까지, 고독에서 연대까지를 이야기한다. 그녀가 말하는 문장 하나하나가 마음을 울리지만 나는 '나병 이야기'에서 뻗어 나온 '연대'의 이야기가 가장 좋았다. 나병은 특정 박테리아 감염에서 생기는 병이다. 실제로 생각만큼 위험하지도 않고 치료도 되지만 치료가 끝난 후에도 환자들은 손가락과 발가락을 잃는다. 브랜드라는 학자는 그 이유가 '무감각'때문임을 밝혔다. 나병이 신경을 짓눌러 아무런 감각을 느낄 수 없게 만들어 고통 또한 느낄 수 없는 환자는 그 부위를 돌보지 않게 된다고 한다. 스스로가 손, 발을 베이고도, 화상을 입고도 고통을 느낄 수 없으니 결국에는 그 부위를 잃게 되는 것이다.
'느낄 수도 없는 것에 대해서는 돌보지도 않는다.'
작가는 이 이야기에서 사회적 연대까지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제목 '멀고도 가까운'이라는 말처럼 물리적인 거리는 멀리 있지만, 감정이입을 통한 정신적인 거리를 좁히는 것이 연대다. 내전으로, 혹은 전쟁으로 고통받는 나라의 국민들, 식량과 물 부족으로 죽어가는 어린이들, 고국을 떠나 떠도는 난민들, 가난에 허덕이는 이웃들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이 이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하게, 그리고 살 만하게 만들 것이다.

고통이 몸의 경계를 정하는 것이라면 당신은 감정을 이입함으로써, 그들의 고통에 함께 아파함으로써, 어떤 사회 구성체의 일부가 되는 셈이다.
당신이 누구와 혹은 무엇과 스스로를 동일시하느냐에 따라 당신의 정체성이 구축된다.
정신적 자아의 한계는 더도 덜도 말고, 딱 사랑의 한계다. 그러니까 사랑은 확장된다는 이야기다. 사랑은 끊임없이 뭔가를 덧붙여 가고, 가장 궁극적인 사랑은 모든 경계를 지워버린다. p.157~158

"멀고도 가까운 곳에서"  그건 물리적인 거리와 정신적인 거리를 함께 가늠하는 방법이었다. p.160

감정이입을 한다는 것은 감각의 미로를 통해 들어온 정보를 맞아 주기 위해 손을 뻗는 것, 그것을 껴안고 그것과 섞이는 일이다. 즉 타인의 삶이 여행지라도 된다는 듯 그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p.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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