뫼르소, 살인 사건 - 카뮈의 <이방인>, 살아남은 자의 이야기
카멜 다우드 지음, 조현실 옮김 / 문예출판사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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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재주가 있는 한 남자가, 그날 하루 이름조차 갖고 있지 않던-마치 무대로 들어오면서 못에다가 이름을 걸어두고 온 것처럼-아랍인 한 명을 죽이고 나서는 그걸 있지도 않은 신의 탓으로 둘러대는 거야. 또 태양 아래에서 자기가 뭔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바다의 소금기 때문에 눈을 감지 않을 수 없었다,라는 식으로 변명을 하지. 그 바람에 살인은 전혀 벌받을 필요도 없는 행위가 되어버린다네. 어느새 죄도 아니게 된 거야.

한 남자가 이런 말을 한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카뮈의 <이방인>의 줄거리다. 단지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뫼르소의 이야기가 아니라, 뫼르소가 총으로 쏘아 죽인 아랍인의 동생의 말이라는 것이다.

'오늘, 엄마는 아직 살아있네.'로 시작되는 이 소설에서 화자는 '이 살인의 이야기는 그 유명한 문장, "오늘, 엄마는 죽었다."로 시작할 게 아니라, 아무도 들어본 적 없는 문장, 형이 그날 집을 나서기 전에 엄마한테 했던 말인 '오늘은 좀 일찍 돌아올게.'로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간혹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쉽게 흥미를 끄는 주제 중 하나가 이미 유명한 책에 대한 다시 쓰기다. 아멜리 노통브의 샤를 페로의 <푸른 수염>을 다시 쓴 <푸른 수염> 그리고 앤절라 카터의 동화의 잔혹한 변주곡인 <피로 물든 방> 등이 그것이다. 일단 독자는 익히 익숙한 이야기에 대해 다시 듣는 것을 좋아한다. 전혀 새로운 이야기에 대한 피곤함이 적은 탓일 게다. 게다가 새롭게 변주되는 음악에 대한 관심처럼 새롭게 쓰인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은 쉽게 책으로 독자를 끌어들일 수 있다.

이번에 읽은 <뫼르소, 살인사건>은 그래서 여러모로 흥미롭게 읽은 책이며, <이방인>의 변주곡이 아닌 전혀 다른 의미를 발견하게 된 책이었다. 처음에는 우리의 관심에서 벗어난 익명의 존재에 대한 넋두리 정도라고 생각하게 하다가, 점차 그 이야기의 배경에 우리가 알지 못한 거대한 의미가 존재함을 깨닫게 된다.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알제의 한 바닷가에서 벌어진 살인사건, 그것은 단순한 살인사건 그 이상이었던 것이다.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바로 살인자의 단어로 이 이야기를 다시 쓴다는 것이다. 비록 우리는 번역본이라 그 느낌을 알 수 없어 아쉬웠다. 프랑스인이 남긴 것들이 단어와 빈 집뿐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야기가 흘러가면서 프랑스인이 떠나고 알제가 독립운동을 하면서 겪게 되는 혼란과 그것에 따른 부조리는 카뮈가 <이방인>에서 다루었던 부조리 그 이상이었다.

'이제 나도, 이 나라가 독립한 이후로 흔히 볼 수 있었던 짓을 한번 저질러 볼까 하네. 내 동포들이 프랑스인이 살던 옛집의 돌들을 하나하나 가져다 자기만의 집을 새로 지었듯이, 나도 살인자가 썼던 단어들과 표현들을 가져다 내 언어를 만들어보려는 거지. 그의 언어는 내게는 주인 없는 재산인 셈이거든. 안 그래도 이 나라는 누구에게도 속해 있지 않은 단어들로 뒤덮여 있다네.

이 얘기는 시체가 쓴 것이지 작가가 쓴 게 아니야. 햇빛과 눈부신 색채를 못 견뎌하는 데서, 또 오래전부터 있어온 태양과 바다와 돌들 외에는 그 어떤 것에 관해서도 아무런 견해를 갖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는 일이지.

살인은 일사병 때문에 혹은 권태와 일사병 때문에 벌어진 일일까?라고 화자는 묻는다.  그렇지 않기에 이 이야기는 다시 쓰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같은 언어로 쓰되,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살아있는 몸에서 시작해서 그를 죽음으로 몬 골목길을 거쳐 아랍인의 이름도 거명하면서 총알과 만나는 순간까지 이르러야 제대로 사건을 다루는 일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특히 이름도 없이 언급된 형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려주고 싶은 것이다.
오랑의 한 카페에서 아마도 <이방인>을 연구하고 있는 한 젊은 학생에게 매일 이야기를 하는 70대의 노인은 형이 태양의 친구이며 이름은 무싸이고  동생인 자신은 하룬이라고 고백한다. 책에서 언급된 행실 나쁜 누이는 없었으며 형제는 단둘 뿐이라는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바로 '호명'이었다.
우리는 소설에서 이름이 있는 주인공들을 주로 만난다. 하지만, 그저 '아랍인'이라고만 호명된 인물을 <이방인>에서 뫼르소는 총으로 쏘았다. 왜 이름이 없었을까? 화자는 그 이유를 양심의 가책을 불러일으키기 싫어서였다고 말한다.

아랍인이라. 나는 내가 아랍인이라고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었어. 흑인이라는 속성이 백인의 시각에 의해서만 존재하는 것과 같은 이치지. 동네에서, 우리 세계에서, 우리는 무슬림이었고 저마다 이름과 얼굴과 습관을 갖고 있었어. 그게 다였어. 그리고 그자들은 '이방인들', 즉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느라 신이 보낸 루미들이었지. 
......내 형이 아랍인이 되고 그런 이유로 죽게 된 데에는 뫼르소의 시선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거라네.

이 소설의 작가인 카멜 다우드는 1970년 알제리에서 태어난 저널리스트다. 이슬람 문화권에 대한 직설적인 비판으로 큰 반향과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고 하는데, 역시 이 책의 마지막에서 뫼르소가 재판에 대해, 신에 대해 하는 절절한 외침처럼 신에 대해 울부짖는다.

나는 기도하지 않는다, 목욕하지 않는다, 굶지 않는다, 순례를 가지 않는다. 나는 술을 마실 것이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술을 더 맛있게 만들어주는 공기까지도. 또 나는 자유롭고, 신은 대답이 아니라 질문이며, 태어날 때나 죽을 때처럼 혼자서 신을 만나고 싶다고.

단지 다른 점이 있다면 뫼르소와 반대로 해방된 자의 열정으로 재판을 견딜 것이라고 말한다.
해방된 알제리의 한 작가가 알제리를 배경으로 한 너무나도 유명한 소설에 대해 그만큼이나 유명해질 소설 한 편을 쓴 듯하다. 아마 카뮈의 <이방인>과 더불어 함께 이야기될 것이다.

뫼르소, 살인사건

저자 카멜 다우드

출판 문예출판사

발매 2017.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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