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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맨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평점 :
필립 로스는 조금 징그러울 정도로 늙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크지도 않은 분량으로 잘 다루고 있습니다. - 김영하의 지식인의 서재에서
오랜 전에 읽은 책을 다시 읽었다. 읽기 전에 이 책의 내용을 기억해내려고 애썼지만, 기껏해야 기억나는 것은 장례식 장면과 주인공이 외롭게 죽었다는 그 어떤 막연한 감상(?) 뿐이었다. 그리고 다시 읽고 난 지금,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부분과 아니 우리가 기억하고 살아야 할 어떤 것과 내가 조금 더 가까워진 느낌이다. 전에는 별 감동이 없이 읽었던 부분이 찡한 울림으로 다가왔고, 많은 문장이 가슴 아프게 느껴졌다.
'에브리맨'은 주인공의 아버지가 운영하던 보석점의 이름이다. '평범한 사람'을 뜻하는.
이야기는 장례식 장면을 주인공인 '그'가 내려다보는 것처럼 그려지는 것으로 시작한다. 단 한 명의 자발적인 참여자인 딸 낸시와 그녀의 초대로 오게 된 몇 명의 사람들. 그는 왜 이렇게 쓸쓸한 장례식을 갖게 된 걸까? 절대 나는 그렇지 않을 거니까 공감하지 않으며, 주인공이 어떻게 살았나 궁금해하는 것에 그치고 말지만, 책의 중간 부분부터는 격하게 책에 빠져들며 모든 문장이 마치 북을 두드리는 것처럼 머릿속을 치고 들어온다.
그는 세 번 결혼을 했고, 애인들과 자식들과 성공을 안겨준 흥미로운 일자리를 가졌지만, 이제 죽음을 피하는 것이 그의 삶에서 중심적인 일이 되었고, 육체의 쇠퇴가 그의 이야기의 전부가 되었다. p.76
요즘의 관점에서 본다면 잘 나가던 한 남자는, 비록 세 번의 결혼이 모두 성공적이지는 않지만, 심장동맥 성형수술을 한 후 점차 늙음과 죽음에 매달려 살게 된다. 자신 있었던 그동안의 삶에서 멀리 치워두었던 사람들이 소중함을 느끼고, 자신이 그동안 관심 갖지 않았던 것들이 무섭게 다가오는 경험을 한다. 가장 필요하고 소중한 것들이 사라지고 멀어짐, 이제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그 멀어짐, 그것이 주는 공허와 외로움이 그를 가슴을 치며 울게 한다.
이번에 읽을 때는 특히 두 부분이 나를 붙들었다. 한 곳은 동료들과의 세 통의 전화, 그리고 나머지 한 부분은 공동묘지에서 일하는 인부와의 대화. 함께 일하던 동료의 부고란을 접한 뒤(이 세 동료는 한 명은 우울증, 또 한 명은 말기 암, 또 다른 한 명은 심장과 뇌졸중을 앓았다) 그는 이 세 명에게 전화를 한다. (물론 이미 죽은 한 동료의 경우는 그의 부인과)
연속된 전화 세 통 뒤에-그리고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일이 진부하기만 하고 쓸모는 없는 격려 발언을 늘어놓은 뒤에, 옛날의 에스프리를 소생시켜보려고 동료들의 삶의 기억들을 되살리고, 절망에 빠진 사람들이 힘을 얻어 삶의 마지막 가장자리에서 돌아오게 할 만한 것들을 찾아내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한 뒤에- 몇 시간 동안 그는 딸과 통화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딸은 피비와 함께 병원에 있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모자랐다. 그는 어머니와 아버지와 전화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어 자신의 에스프리를 소생시키고 싶었다. 그러나 그가 알게 된 것은 삶의 종말이라는 피할 수 없는 맹공격이 가져온 결과 전체와 비교하자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가 긴 직장생활 동안 사귄 모든 사람의 괴로운 사투를 알았다면, 각각의 사람들의 후회와 상실과 인내가 담긴, 공포와 공황과 고립과 두려움이 담긴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알았다면, 이제 그들이 떠나야 할 것, 한때 그들에게 생명과도 같았던 그 모든 것을 알았다면, 그들이 체계적으로 파괴되어가는 과정을 알았다면, 그는 하루 종일, 또 밤늦도록 계속 전화기를 붙들고, 전화를 적어도 수백 통은 해야 했을 것이다. 노년은 전투가 아니다. 노년은 대학살이다.
아직 노년의 전투, 노년의 대학살을 몸으로 느낄 나이는 아니지만, 친구의 죽음을 겪은 뒤 갑자기 느껴진 두려움으로 여러 친구들에게 전화를 한 적이 있다. 마치 다시 보기 힘들 것처럼.
자신이 없애버린 모든 것. 이렇다 할 이유도 없는 것 같은데 스스로 없애버린 모든 것. 더 심각한 일이지만, 자신의 모든 의도와는 반대로, 자신의 의지와는 반대로 없애버린 모든 것을 깨닫자, 자신에게 한 번도 가혹하지 않았던, 늘 그를 위로해주고 도와주었던 형에게 가혹했던 것을 깨닫자, 자신이 가족을 버린 것이 자식들에게 주었을 영향을 깨닫자, 자신이 이제 단지 신체적으로만 전에 원치 않았던 모습으로 쪼그라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수치스럽게 깨닫자, 그는 주먹으로 가슴을 치기 시작했다. 그의 자책에 박자를 맞추어 쳤다. 심장제세동기를 불과 몇 센티미터 차이로 빗나갔다. 그 순간 자신이 어디가 부족한지 랜디나 로니보다 훨씬 잘 알 수 있었다. 보통 냉정하던 이 사람은 마치 기도하는 광신자처럼 사납게 자기 가슴을 쳤다. 이 실수만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실수, 모든 뿌리 깊고, 멍청하고, 피할 수 없는 실수들로 인한 가책에 시달리다-자신의 비참한 한계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면서도, 마치 삶의 모든 파악할 수 없는 우연을 스스로 만들기라도 한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그는 큰 소리로 말했다. "심지어 하위도 없어! 이렇게, 심지어 하위도 없이 끝이 나다니!" p.164-165
'심지어 하위도 없어!' 자신의 형인 하위. 언제나 자신의 편이며 자신의 위로였던 형도 자신보다 건강하기에 질투했다. 그래서 자신이 지금 가장 가까이 있었으면 하는 사람도 곁에 없다. 그는 이렇게 후회와 외로움에 울부짖는다.
"엄마, 아빠, 하위, 피비, 낸시, 랜디, 로니......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만 알았다면 좋았을 것을! 내 말 안 들려? 나 떠나고 있다고! 다 끝났고, 나는 이제 당신들을 모두 다 떠나고 있어!" 그가 그들에게서 사라지는 것과 똑같은 바른 속도로 자신에게서 사라지고 있는 그 사람들이 고개만 돌려, 너무나 의미심장하게 소리쳤다. "너무 늦었어!"
너무 늦었다. 우리도 그럴 것이다. 이렇게 알게 된 때는 너무 늦은 그때일 것이다. 특히 예고된 죽음(이를테면 암이나 그런 것으로 인한 )이 아닌 이상 우리는 영원히 살 것처럼 이런 것들을 염두에 두고 살지 않는다. 그러다 갑자기 아무것도 모른 채 떠날 수도 있다. 두려워진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책을 통해 기억하고 있어야 할 것을 알게 된다. 죽음, 그리고 늙음.
심장마비. 그는 이제 없었다. 있음에서 풀려나, 스스로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어디에도 없는 곳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처음부터 두려워하던 바로 그대로. p.188
갑자기 힘이 확 풀렸다. 죽음은 여전히 두려운 그 어떤 것이다. 우리가 절대로 알 수 없는 그 어떤 것. 하지만 유한한 존재이기에 피할 수 없는 당연히 맞이해야 할 그것. 있음에서 풀려나(사실 간혹 이렇게 풀려나고 싶은 때가 있긴 하다) 어디에도 없는 곳으로 가는 것.
필립 로스는 188페이지의 짧은 이야기 속에 죽음을 담아 놓았다.
조금 더 내가 늙음과 죽음에 가까워질 때, 이 책의 어떤 문장이 나를 사로잡을지 궁금해진다. 간혹 때때로 이 책을 꺼내 다시 읽어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