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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위한 정치 ㅣ 김민웅의 인문정신 2
김민웅 지음 / 한길사 / 2016년 5월
평점 :
과거를 호출하는 것은 현재를 바로 세우는 일이자, 새로운 미래를 창출하는 기본 동력과 내용물 자체이다.
지난 일을 쉽게 망각하는
공동체는 현재에 대해서도,
앞으로 가는 길에 대해서도 무지해진다.
'사회적 망각과의 투쟁'은
정치의 격을 무너뜨리는
독선적인 권력에 대한 가장 중요한
철학적 사유의 출발점이다
김민웅 교수의 <인간을 위한 정치>는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다. 잊으라고 그만 잊으라고 하는 세월호 참사, 2012년 대선 때의 일들, 곽노현, 김대중, 노무현 등을 자꾸 호출한다. 그는 말한다. 망각과 싸워야 한다고. 진상을 은폐하고 진실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죄악이라고 우리는 그러한 '망각의 유포'에 저항해야 한다고 소리친다. 그만 잊자고 하는 것은 범죄현장에서 도주하거나 증거를 인멸하려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지금 우리는 우리나라의 정치권력에 의해 뇌 수술을 당할 지경이다. 그러지 않으려면 사회적 망각을 확대재생산하는 세력과 구조와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고 그는 강하게 여러 번 강조한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정치'는 무엇일까?
그는 정치의 근본은 '인간이 서로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에 있다고 말한다. '인간이 서로를'? 정치를 공학이라고 하는 이야기는 들어봤지만 인간을 중심에 두고 하는 이야기는 낯설었다. 선거철만 되면 '정치인'들은 정치공학적으로 어쩌고, 권력의지가 어쩌고 하면서 정치는 우리와는 무관한 그들만의 어떤 무기 인양 말했었다. 그런데 '인간'이 정치의 중심에 서 있다.
그렇다면 어떤 인간이 정치의 주역이 되어야 하는가? 저자는 우리가 이 책을 통해서 이런 문제를 짚어봐야 한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우리나라 국민들이 동의하다시피 요즘의 정치는 혐오스럽다. 정치가 없었으면 더욱 좋지 않을까 하는 사람도 있다. 아예 정치인을 없애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들린다. 저자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들어 어떤 사람이 정치의 주역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풀어놓는다.
플라톤은 훈련된 걸출한 개인에게 정치의 자격을 부여했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보통의 시민들이 가진 정치의식과 태도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저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에 뿌리를 두고 있다.
저자는 인문 정치를 요구한다. 인문 정치란? 인간의 고통에 민감하고, 생명이 갈망하는 바에 최우선의 관심을 기울이는 정치다. 사람다운 삶을 함께 사는 것이 정치의 본질이다.
품격 있는 정치, 혹은 품격 있는 정치가는 어떤 것인가? 묻는다. 노무현 대통령이 떠올랐다. 대통령이 격이 떨어지는 언사를 한다고 숱한 비난을 받았었다. 저자는 품격 있는 정치는 격조 있는 언어와 우아한 자세를 구사하는 정치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격조 있는 정치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 ' 사회적 망각과의 투쟁'이 가장 절실하다고 저자는 또 강조한다.
파시즘은 어느 날 갑자기 오지 않는다. 그것은 알게 모르게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면서, 의식을 혼미하게 하고 의지를 차츰차츰 꺾어 놓으면서 영향력을 굳혀가고 정체를 드러낸다. 민주주의는 보이지 않는 악령과의 싸움이며 여기서 이기려면 이 악령의 정체를 끊임없이 폭로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민주주의는 어렵고 힘들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처럼, 눈에는 그 성과가 보이지 않는 그런 일이다. 보이지 않는 것과의 싸움이기에 더욱 힘들다.
그가 인용한 체코의 대통령인 하벨의 이야기는 신선했다. 그리고 신랄했다.
체코의 대통령을 지낸 바츨라프 하벨은 1990년 신년사에서 "체코인들은 전체주의 독재의 희생자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유지해온 공범이기도 하다."는 신랄한 자기비판을 토해냈다.
"정치란 권력투쟁을 우한 게임이 아니라,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이자 바로 이 삶을 지켜내고 이에 기여하는 실천적 윤리다. 이로써 우리는 우리 이웃의 인간을 인간적으로 돌보는 세상을 만들 수 있으며, 이것이 바로 진실에 복종하는 정치다."하고 갈파했다.
다시 한 번 세월호 참사를 떠올린다. 우리는 함께 살아간다. 같은 배를 타고 있다. 우리의 목숨은 남의 손에 달려 있다. 다른 이의 목숨도 나의 손에 달려 있다. 그래서 인간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