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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의 문화사 ㅣ 살림지식총서 259
고형욱 지음 / 살림 / 2006년 10월
평점 :
"우리 앞에 놓인 와인들은 저마다의 풍경을 가지고 있다."
요즘 와인을 가끔 한 잔씩 한다. 와인을 마시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와인에 대한 지식이 바닥이다. 그래도 가끔 마시다보니 포도품종이 무엇인지, 어느 지역에서 만들었는지 정도는 물어보고 구입을 한다. 살림지식총서의 <와인의 문화사>를 읽다 보니 와인은 그저 단지 포도주가 아니라 저마다의 이름을 가진 각각의 것들임을 알 수 있다. 부르고뉴 최고의 화이트 와인 중 하나인 '코르통 샤를마뉴', 유명한 샴페인 '동 페리뇽', 가장 비싼 와인이라는 '로마네 콩티'는 마치 한 인물의 역사를 읽는 것처럼 흥미롭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책에서 재미있는 부분은 와인이 누구에 의해서 어떻게 마시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널리 퍼지게 된 배경에는 무엇이 있으며 어떤 인물과 역사가 함께 했는지, 그리스도교에서 와인은 어떤 의미인지에 있다.
영화나 책에서 보면 고대 로마의 귀족들은 와인에 물을 타서 마신다. 나는 지금의 와인을 생각하고 '아니 그렇게 마시면 무슨 맛이 있을까' 했다. 하지만 그 당시 와인을 만드는 방법은 지금과 달랐다. 그 당시에는 포도송이를 말렸다가 와인을 만들어 수분이 증발하기 때문에 당도가 높고 알코올 성분이 강했다. 그러니 지금의 와인보다 도수가 더 높았을 것이고, 물을 타서 마셨을 것이다. 와인 원액을 그대로 마시는 것은 야만적이라고 생각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귀족들은 와인을 즐겼고, 와인에 대한 부정적인 모습 또한 나타났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연이은 폭음에 33세로 요절했다. 그러니 초기 로마에서는 30세 미만의 청년이 와인을 마시는 것을 금지시켰고, 특히 여성이 와인을 마시는 것은 금기시되었다. 에게나투스 메세니우스라는 사람은 자기 부인이 와인을 마셨다고 해서 때려서 죽였다고 한다. 정치가 카토조차도 자신은 노예들과 함께 와인을 마시면서도 (상당히 진보적인) 여자가 포도주를 마시면 그녀를 죽이라고 말했다. 왜 그랬을까? 와인은 피를 상징했고, 여자가 다른 피를 마시는 것은 다른 남자와 간통을 저지르는 것을 상징했다. 그래서 여자가 밖에서 돌아오면 와인을 마셨는지 확인하던 풍습이 키스가 되었다는 아이러니한 사연도 있다.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은 와인을 대하는 올바른 태도에 대한 지침을 남겼다. 18세 이하는 와인을 마시면 안 되고, 20대는 취하지 않을 정도로 절제해야 하며, 40대는 노화현상에 따르는 건조함을 덜기 위해 마음껏 마셔도 괜찮다고 했다. 나는 이런 플라톤의 말보다 비극 시인이었던 아이스킬로스의 말이 더 멋지다.
'청동이 겉모습을 비추는 거울이라면, 와인은 영혼을 비추는 거울이다.'
이 책의 통해 얻은 와인에 대한 지식은 와인이 품고 있는 대지와 햇살의 이야기와 함께 와인의 풍미를 더 풍부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