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1
윌리엄 포크너 지음, 김명주 옮김 / 민음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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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 I Lay Dying>,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는 <성역>,<8월의 빛>,<압살롬, 압살롬>으로 유명한 윌리엄 포크너의 작품이다. 1949년에 노벨문학상을 탄 그의 작품은 실험적 문체로 읽기에 다소 까다롭다. 의식의 흐름 기법을 사용하여 내면 심리 묘사에 주력하고 있으며 독자가 받아들이기 편한 연대기적 서술 기법이 아닌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길고 복잡한 문장을 쓰고 있다. 그래서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를 처음 접할 때는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았다. 반 정도 읽었을 때에야 비로소 이야기에 속도가 붙는 것 같았다. 다 읽고 나서 묘한 매력에 이 작품을 다시 읽어야지 하면서도 항상 그렇듯이 다시 읽을 수 있는 계기가 필요했다. 그러던 중 독서모임에서 함께 읽기로 해 다시 읽다 보니 조금은 분석적으로 천천히 읽어낼 수 있었다. 

포크너는 이 책에서 제목의 '나'인 애디가 죽으면 지금 살고 있는 곳이 아닌 자신이 처녀적 살던 제퍼슨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지키기 위해 온 가족이 (남편인 앤스, 큰아들 캐시, 둘째 아들 달, 셋째 아들 쥬얼, 딸 듀이델, 그리고 막내아들 바더만) 관을 마차에 싣고 갑작스러운 비에 불어난 강물을 헤치고(강을 건너다가 관이 강물 속으로 빠질 위기가 온다) 제퍼슨으로 가는 여정을 그린다. 이 책은 전체 59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목인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와 달리 이 책의 서술자는 모두 열다섯 명이다. 즉 열다섯 명의 서로 다른 목소리로 이야기가 이루어져 있어 한 사건을 두고도 서로의 진술이 엇갈림을 알 수 있다. 더욱이 특이한 것은 제목의 '나' 즉 번드런 부인 애디의 진술은 단 한 번 등장한다. 그녀의 남편이 앤스는 3번의 발언 기회를 갖는다. 가장 많은 말을 하고 있는 인물은 둘째 아들 달이다. 달은 무려 19번의 발언 기회를 갖는다. 그렇다면 달의 진술이 이 소설의 전체를 끌어갈까? 결코 그렇다고 볼 수 없는 것이 달은 이 소설의 끝에 어머니의 관이 있는 헛간을 불태웠고, 정신이 이상하다는 이유로 정신병원으로 끌려간다. 그렇다면 예리한 투시력을 가지고 있고 다른 사람의 심리를 잘 간파하고 있어 보였던 달의 진술은 모두 부정되어야 하는가?

각자의 진술로 얻게 되는 사실은 무엇이 있을까? 애디의 남편 앤스는 결혼하고 22살 이후로 '그의 셔츠에는 땀 자국이 없었다' 즉, 그는 아내와 아이들의 노동에 빌붙어 먹고사는 인물이다. 겉으로는 아내를 멀리 보내는 것이 싫다고 말하지만 실은 그렇게 보이지 않아 보이는 말을 하고 있으며 그가 제퍼슨에 가려는 목적은 사실 틀니에 있다. 심지어 자식들의 돈을 거의 강탈하다시피해서. 게다가 틀니를 새로 해 넣고 새로운 번드런 부인을 애들 앞에 소개한다. 애디의 큰아들 캐시는 애디의 관을 직접 짠다. 애디의 눈앞에서. 그는 엄마의 관을 지키기도 하지만 그가 제퍼슨에 가려는 목적은 축음기에 있다. 애디의 딸인 듀이델은 낙태를 하기 위한 목적이다. 막내아들 바더만도 역시 장난감 기차를 사려는 목적이 있다.

이런 진술을 읽어가다 보면 죽어있는 애디가 벌떡 일어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애디는 벌써 그것을 미리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단 한 번 등장하는 애디의 장에서 '하루하루 저마다의 비밀과 이기적인 생각'때문에 죽음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말과 행위가 맞아떨어지지 않을 때 사람들 사이에는 틈이 생긴다. 늘 그렇듯이 무서운 밤, 거친 어둠으로부터 들리는 거위의 울음소리처럼 언어는 떨어져내린다. 누군가 군중 속의 두 얼굴 가리키며, 너의 엄마다 혹은 아빠다 말할 때, 정신없이 그 얼굴을 찾아 헤매는 고아처럼, 말은 그것이 가리키는 행위를 찾아 헤맨다.

남편은 능력도 없고, 무슨 일이 벌어지면 아이들 탓, 심지어 길 탓을 하고 불륜의 대상이었던 휘트필드 목사는 떠나고 가난하고 미래가 보이지 않는 애디의 삶은 죽음이 오히려 휴식일 수도 있겠다 싶다. 애디의 말에서도 드러나듯이 언어는 결핍을 메우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지만, 없는 것을 있는 척하기 위한 수단도 된다. 그럴 때 진정한 의사소통은 불가능하다. 그 틈, 그 틈 사이에 진실은 존재하는 것일까? 서로 충돌하는 진술 사이에서 우리는 진실을 알 수 있을까? 많은 생각을 낳게 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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