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세가 사랑한 순간들 - 헤세가 본 삶, 사람 그리고 그가 스쳐 지나간 곳들
헤르만 헤세 지음, 배수아 엮음.옮김 / 을유문화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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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의 작품을 나는 청소년 시절에 알지 못 했다. 방황의 시절 읽어야 한다는 데미안을 40대의 방황의 시절에 읽었으니 늦어도 한참은 늦게 헤세를 읽은 셈이다. 10대의 시절에 못 읽었다 뿐이지 방황의 시기를 견디고 이해하는데 헤세의 글은 많은 울림을 안겨주었다. 헤세의 글을 읽으며 그의 영혼과 맞닿고 싶은 유혹을 느꼈다. 그래서 그의 소설을 찾아서 읽고 그의 에세이를 읽었다. 가을이 깊어가는 요즘 그렇게 읽게 된 <헤세가 사랑한 순간들>은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또 다른 기회였다. 그의 작품 속 이야기뿐만 아니라 그의 생각과 감성이 담겨있는 문장들을 따라 읽으며 이 가을 헤세의 영혼의 한 조각이라도 만났으면 했다.

그의 사랑과 결혼에 대한 책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여전히 풀지 못한 숙제가 있었다. 왜 헤세는 여러 명의 여인을 사랑한 것 같지만 어떤 여인의 곁에서도 안주하려 하지 않았을까? 왜 헤세는 여인들을 외롭게 만들었을까 하는 것이었다. 책의 중간 부분에 다음과 같은 글이 나온다. 정주하지 못하는 사랑, 정주하는 사랑은 시인인 헤세의 사랑이 아니었던 것이다. 끊임없이 추구하며 떠도는 삶을 살아가는 유목민이었던 헤세를 이해하게 된 시간이었다. ​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대상은 오직 은유일 뿐이다. 우리의 사랑이 정주하게 된다면, 우리의 사랑이 성실과 미덕으로 바뀐다면, 그러면 나는 그 사랑을 의심하리라..... 나는 내가 아닌 것이 되려고 했다. 시인이 되기를 꿈꾸었으면서도 시민의 삶 또한 차지하고 싶어 했다. 예술가이자 환상의 숭배자가 되기를 원했으면서도 덕망의 삶, 안주의 삶을 누리려고 했다. 나는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사람은 두 가지를 모두 가질 수 없음을 깨달았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나는 스스로가 농민이 아닌 유목민인 것을 깨달았다. 보존하는 자가 아니라 추구하는 자임을 깨달았다.

​헤세의 글은 신변잡기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의 글은 인생에 대한 통찰로 나아간다. 마치 소설을 쓰기 위한 준비작업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글들도 보인다. 소설가이자 이 책의 번역자인 배수아의 눈에는 이런 글들이 들어왔을 것이다.

단두대에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 모든 이들이 기뻐 날뛰는 것을 보고 스승은 그가 아마도 이단자일 것이라고 말한다. ​
스승이여 죄수가 아닌 이단자인 것을 어떻게 알았습니까? ​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 살인자나 도둑 등의 다른 범죄자라면, 동정심을 보이는 이가 분명히 있었을 테니까. 눈물 흘리며 우는 자들도 많았을 것이고 그의 무죄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분명 들려왔겠지. 그러나 자기 자신의 생각을 믿는 사람은, 군중으로부터 그 어떤 동정도 얻지 못하지. 군중은 그를 죽여 버리고, 그의 시체를 개들에게 던져 버린다네.

이 책에서 지금 내가 하는 고민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는 문장을 찾았다. 요즘 '과연 옳은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헤세는 그런 질문을 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해답이 없는 질문이며 모든 삶의 방식이 옳기 때문이란다. 다름을 부러워해서도 안되며 경멸해서도 안된다고 말한다.

'내 삶의 방식이나 인생관이 과연 옳은 것일까?'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해답이 없는 질문이니까요. 모든 삶의 방식은 옳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방식은 삶의 한 부분에 해당합니다. 그러므로 질문은 이렇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나는 어쨌든 나 자신이고, 다른 수많은 타인들은 전혀 고민할 필요가 없을 것이 분명한 욕망과 문제들을 내 안에 지고 가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견뎌낼 수 있으려면, 삶이 어느정도 아름다워지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리고 진심으로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인다면, 다음과 같은 대답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너는 어쨌든 너 자신이니, 다른 이들이 너와 다르다고 하여 그들의 다름을 부러워해서는 안 되면 경멸해서도 안 된다. 그리고 너 자신의 "옳음"에 대해서 의문을 가져서도 안 된다. 대신 네 영혼과 그 영혼이 갈망하는 것을, 네 육체와 네 이름, 네 고향을 받아들였듯이 그렇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이 설사 이 세계 전체에 맞서는 일이 된다 할지라도, 이미 주어진 것을 인정하듯이, 피할 수 없는 운명을 받아들이듯이, 그렇게 받아들이고 옹호해야만 한다.'

​가을이 더욱 깊어 간다. 사색도 따라서 깊어간다. 깊어가는 가을 함께 하기에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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