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야간비행 - 정혜윤 여행산문집
정혜윤 지음 / 북노마드 / 2015년 7월
평점 :
품절


스페인 야간비행

작가
정혜윤
출판
북노마드
발매
2015.07.31

리뷰보기

 

그 영혼을 닮고 싶은 사람이 있다. 한 작가의 글에 끌리다 보니 저 사람의 영혼으로 살아봤으면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멀리는 헤르만 헤세가 그렇고 요즘 읽고 있는 곰브리치가 그렇다. 그리고 가까이에 있는 또 한 명의 작가는 정혜윤이다. 정혜윤 작가의 글은 '왜 이렇게 아는 책이 많아?'였다. 그녀는 수많은 책을 넘나들며, 작가를 불러내며 끝없이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녀의 책만 읽었을 때 그저 이곳저곳에서 발췌해서 옮겨 적은 줄 알았다. 그러나 그녀의 강연을 들으면서 그녀가 불러낸 책 속의 구절들은 수많은 작자들은 모두 그녀의 가슴속에 영혼 속에 같이 살고 있음을 알았다. 그 순간 '아, 나도 저런 영혼을 닮았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었다. 

이번에 읽은 그녀의 여행 에세이는 그래서 기존의 여행서와는 달랐다. 많은 여행서가 보여주고 냄새 맡게 해주고 궁금하게 해준다. 글을 읽다 보면 그곳으로 뛰쳐가고 싶게 만든다. 그러나 <스페인 야간 비행>은 그녀의 생각처럼 살고 싶게 만든다. '내 눈만으로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있다고 감히 생각할 수 없어' '다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싶었던' 그녀의 말처럼 난 그녀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싶다. 그녀의 감성으로 세상과 만나고 싶었다. 셀카봉을 치켜들고 하는 여행이 아니라, 카메라가 우리를 대신해서 경험하는 여행이 아니라 어느 곳에 있든지 무엇을 만나든지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그런 여행이 어떤 것인지 조금은 느꼈다.

이 책은 '필리핀 보홀에서 쓴 스페인 여행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두 지역을 넘나들며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두 세계에 걸쳐 존재하는 '양서류', 양쪽 다에 복잡하기도 하고 순수하기도 한 애정을 갖고 있는 인간 양서류를 상정하고 그에게 글을 쓰기도 하고, 미스 영장류라는 실제 인물, 그녀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인간이라는데, 그런 영장류에게 말을 걸며 여행을 한다.  끝없이 세상에,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그녀의 글이 특별한 이유는 자신의 경험과 느낌을 잘 전달하는데 있는 것 같다. 그것은 그녀의 말처럼 '보이기'가 아니고 '보기'와 '존재하기'를 추구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진 한 장 없이 오로지 글로써 여행을 펼쳐간다는 것이 오히려 그녀에게는 쉬웠을지도 모르겠다. 사진 한 장으로 담을 수 없는 그 무엇을 설명하기에는 글이 나을 테니까.

 

경험의 가치는 말할 수 없이 하락한 것 같지? 자신이 사는 도시에서는 아무것도 경험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기에 밤마다 '아, 오늘도 피곤한 하루였어'라고 되뇌다가 새로운 경험을 찾아서 여행을 떠나. 그런데 여행지에서는 카메라가 우리를 대신해서 경험을 해. 개인의 유일무이하고 대체 불가능해지는 것은 환경의 차이이기도 하고 경험의 차이이기도 할 텐데 여행자의 경험이란 무엇일까? 아름다운 것에 마음을 빼앗기고 그 세계에 자신을 투영해보고 이전의 나와는 조금 다른 내가 되어가는 것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일까? 여행은 자기 자리가 아닌 다른 자리로 이동해보는 것이고 원래는 자기 것이 아니었던 것을 받아들이고 그렇게 변해가면서 현실과 새로운 관계를 맺는 것 아니었던가? 그래서 모든 탁월한 여행자들은 '보이기'가 아니라 '보는 것'에, '보이기'가 아니라 '존재하기'에 마음을 빼앗기곤 하지 않았던가?

​왜냐하면 어떤 사람들은 잊을 수 없는 방식으로, 그 사람이 아니면 그렇게 볼 수 없었던 방식으로 세상을 보여줘. 누군가 먼저 그렇게 보았기 때문에 우리는 그 뒤를 따라서 비로소 다르게 보기 시작할 수 있어. 거울 속에서 우리는 길게 이어지는 길을 따라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