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이야기 - 천 가지 역사를 품은 살아 있는 도시
미셸 리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15년 6월
평점 :
품절


비슷비슷한 여행기와 여행 소개서가 지겨워졌다. 각기 다른 출판사와 저자지만 비슷비슷한 장소와 볼거리 그리고 먹거리를 소개해주는 여행 안내서 나 여행에 대한 경험과 감동을 토해낸 여행 에세이가 슬슬 지겨워진 요즘, 여행의 색다른 재미를 안겨 줄 책들이 나오고 있어 반갑다. 얼마 전에 읽은 스위스에 대한 책은 스위스를 거쳐간, 그리고 스위스에서 살고 있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서 스위스 곳곳을 소개한 작품이었다. 그런 작품은 스위스를 단지 관광의 대상이 아닌 관심과 애정의 대상으로 바꿔놓았다.

그리고 지난 일주일을 꼬박 읽은 <런던 이야기>는 런던을 중심으로 살았던 많은 인물들의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고, 혹은 런던을 중심으로 다시 그려낸 영국의 역사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겠다. 전체적인 이야기의 흐름은 영국의 역사를 통한 서술이다. 로마의 식민지로 출발해서 마그나 카르타에 존왕이 사인하기 전까지를 런던의 유년기로 이 장에서는 런던이 로마의 식민지에서 어떻게 점차 발전하게 되었는지, 그 속에서 여러 민족이 함께 섞이게 되는 흥미로운 이야기와 함께 그 역사의 흔적이 남겨진 웨스트민스터, 화이트 타워 등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중세의 런던은 현재 세계의 민주주의를 선도했던 영국의 민주주의의 초석이 되었던 의회의 발생과 백년전쟁, 그리고 흑사병과 낭만적인 이름이 붙었지만, 전혀 낭만적이지 않았던 장미전쟁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렇게 역사를 따라 흐르는 런던의 이야기는 왕과 여왕을 둘러싼 흥미진진한 연애사건들로 덤벅이 된 튜더왕조를 지나, 내전과 대역병과 런던 대화재의 에피소드를 지나 드디어 대영제국으로 성장하는 영국까지 소개된다. 세계대전과 산업혁명기의 영국의 모습을 소개하면서 지금의 영국이 지닌 현재와 미래의 문제까지 짚어본다. 얼마 전 아들이 유럽여행에서 돌아와 기념품처럼 가져온 동전에 쓰인 'F.D'라는 글씨가 헨리8세가 자신의 연애사건으로 종교를 바꾸기 전 카톨릭을 옹호하고 받은 칭호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았다. 문득, 이런 칭호까지 (왕의 그다지 명예롭지 못한 칭호이지 않을까 하는데) 동전에 새겨 넣은 영국인들이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끄러운 과거를 다들 기억하려 하지 않고, 지우기 바쁜데.


 

 

 

 

 

위의 페이지는 엘리자베스 여왕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표현한 부분이다. 왜 엘리자베스는 처녀 여왕으로 남았을까?에 대한 재미있고 위트 넘치는 작가의 생각에 키득거리면서 웃어본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아버지의 결혼에 질린 것일까? 아니면 그녀의 말처럼 영국과 결혼한 특별한 여왕이 되고 싶었던 것일까? <런던이야기>는 이렇게 작가의 솔직한 표현들 때문에 더욱 재미있게 읽히는 책이었다. 아버지를 죽이고 왕이 된 사자심왕 리처드를 두고는 '가까운 곳에서는 친아버지를 죽이고 왕관을 쓰더라도 멀리서 하느님을 위해 싸우며 명성을 떨치면 되는 것인가?'라고 하며 십자군 원정만 다녔던 왕을 비아냥거리기도 하고, 런던에 살며 런던을 사랑하는 작가이기에 리처드가 한 말 '산다는 사람만 있으면 런던을 팔았을 것이다.'에 섭섭하고 재수 없다는 표현도 서슴지 않는다. 다양한 일러스트와 사진으로 풍부한 볼거리까지 들어있어 런던을 여행하기 전 읽어보면, 더욱 풍성한 여행을 할 수 있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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