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 작가의 옮김 1
에두아르 르베 지음, 정영문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나'는 과연 누구일까? 아침에 일어나 눈을 감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나와서 주방으로 들어가 싱크대에서 쌀을 씻는 나인가? 길에서 느닷없이 자전거의 가격을 물어보고 대답해주지 않는 아이에게 화를 내는 어른을 보며 '저 어르신은 대답을 해주지 않는 아이가 버릇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저 아이는 전혀 모르는 자신에게 갑자기 자전거의 가격을 묻는 저 어른이 황당하게 보일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내가 나인가? 검은 머리에 약간의 어두운 갈색의 눈동자를 지닌 동그란 얼굴이 나인가? 레깅스와 면티를 즐겨 입고, 운동화를 주로 신는 내가 나인가? 아니면 내가 겪은 많은 일들이 나인가?

이 책은 읽는 독자를 당황스럽게 한다. 갑자기 낯선 형식의 문장들 속에서 독자가 길을 잃게 만든다. 게다가 문장은 마냥 건조하기만 하다.
나는 해외에서 3년 3개월을 보냈다.
나는 내 왼쪽을 보는 것을 더 좋아한다.
내게는 나를 배신하고 떠난 친구가 있다.
이런 유의 문장을 맥락 없이 마구 연결해놓았다. 아니 연결하지 않고 늘어놓았다. 이 문장의 진술을 뒷받침해주는 어떤 설명도 없다. 게다가 시간의 흐름이나 사건의 원인과 결말은 이 작품에서 전혀 고려의 대상이 되고 있지 않다. 그저 작가인 에두아르 르베가 한 것, 하지 않은 것, 좋아한 것, 좋아하지 않는 것, 그리고 이도 저도 아닌 것을 말하고 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말하고 있는 것 같지만, 결국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이것은 에두아르 르베의 자화상이다. 하지만 읽는 동안 문득문득 읽는 독자의 자화상이 될 수도 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나와 적어도 한 부분에서는 공통점이 있으니까.
작가가 이 작품 안에서 진술한 것처럼 작가는 설명하지 않는다. 또한 변명하지 않는다. 싫어하는 것들의 목록, 좋아하는 것들의 목록, 나의 가족은 이러저러하다 등으로 분류하지도 않는다​. 그저 진술하고 있을 뿐이다. 작가는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내러티브 영화도 좋아하지 않는다. 시간의 경과에 따라 전개되는 예술은 시간을 정지하는 예술보다 즐거움을 덜 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작가는 사진을 찍는다. 시간을 정지시키는. 이 작품은 작가가 좋아하는 딱 그의 스타일대로 쓰였다. 작가는 자신의 고유한 언어를 만들려는 시인의 시도보다는 우리가 공유하는 언어의 중립성과 익명성이 더 흥미롭고, 사실적인 보고서가 가장 아름답게 비(非)시적인 시로 보인다고 한다. 그는 그래서 백색의 글쓰기(주관적 판단과 평가가 배제된)를 꿈꾸는데 이 작품이 그런 시도로 보인다.
계획을 가지고 설계도를 그려서 형상화한 기념물보다 생활의 흔적인 유적을 더 좋아하는 작가는 독자에게 보다 친절한 자서전과 같은 형식의 글보다는 읽는 독자가 상상하고 찾아내는 유적과 같은 자화상 같은 글쓰기로 독자에게 상상의 즐거움을 선사했다. 한 문장 한 문장이 품고 있는 많은 이야기를 상상해가며 읽는 것도 재미있다. 하지만 일어나는 것보다 잠자리에 드는 것을 더 좋아하지만, 죽는 것보다는 사는 것을 더 좋아하는 작가가 <자살>이라는 작품을 낸 뒤 열흘 만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이야기는 이 작가의 작품에 환상을 더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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