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한 헤세, 헤세가 사랑한 책들
헤르만 헤세 지음, 안인희 엮음.옮김 / 김영사 / 2015년 1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연거푸 두 번 읽고 정혜윤 PD는 이 책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한다. 나도 무릎을 쳤다. 어쩜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헤세가 쓴 서평 하나하나 (물론 그가 쓴 서평 모두에게 관심이 가지는 않았다. 그가 언급한 책들 중에는 내가 전혀 모르는 그리고 알기 힘든 책들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서평조차도 책과는 별개로 삶에 대해, 혹은 사회에 대해 쓴 어떤 에세이처럼 잘 읽혔다.) 가 너무나 주옥같았기 때문이다. 한 편의 서평을 읽고 나서 다음 서평으로 건너뛸 생각을 못하고 그 서평을 또 읽게 되는 것은 그의 문장이 자꾸 나를 잡아두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나는 그의 서평 한 편을 그대로 블로그에 옮겨 적고 말았다.


카프카의 <소송>에 대한 헤세의 서평을 다 옮겨 적고 싶지만 몇 문장만 적어본다.


얼마나 이상하고 마음을 흥분시키는, 경이로운, 그야말로 기쁨을 주는 작품인가!  이 작가의 모든 작품이 그렇듯이 이것은 가장 섬세한 꿈의 실들로 직조한 것으로, 매우 순수한 기법을 동원하여 강력한 환상의 힘으로 만든 꿈 세계의 구조물이다. 덕분에 섬뜩한 오목거울 방식의 가짜 현실이 생겨나는데, 처음에는 악몽처럼 마음을 짓누르는 두려운 모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이 문학작품의 비밀스러운 의미가 독자에게 드러난다. 그러면 카프카의 독특하고 환상적인 작품에서 구원의 빛이 나온다.


그야말로 얼마나 아름답고 멋진 문장인가! 헤세는 카프카의 작품이 마음을 흥분시키는 경이로운, 기쁨을 주는 작품이라고 극찬을 하고 있지만, 나는 이 말을 그대로 헤세의 이 서평에 되돌려 주고 싶어진다. 이런 서평을 읽고서 카프카의 <소송>이 궁금하지 않은 독자가 있을까? 당장 카프카의 <소송>부터 주문하고 말았다.


⁠2 주 전부터 토마스 만의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을 읽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헤세가 들려주는 토마스 만의 작품에 대한 서평은 얼마나 달콤하던지.

여섯 편의 작품들은 대부분 벌레스트와의 경계선에 닿아 있으며, 이따금은 어딘지 낡은, 저 정신 나간 '우스꽝스런 노래들'을 연상시키기까지 한다. 하지만 조금만 더 자세히 살펴보면 여기서 터무니없는 것은 터무니없는 것이 아니요, 역겨운 얼굴은 역겨운 얼굴이 아니다. 그것은 언뜻 보기에만 우연일 뿐, 실은 고도로 계산되고 상세히 연구된 조명이다. 램프의 각도를 조금만 바꾸면 그 유령 같은 모습에서 우리는 친구들, 형제들, 사촌들, 이웃들을 알아볼 수 있으며, 이따금 가장 잘 알고 있는 자신의 모습도 알아보게 된다. 이 사실을 발견하면 절반 경악과 절반 안도하는, 절반 만족과 절반 실망하는 느낌을 얻는다.


토마스 만의 단편집 <트리스탄>에 대한 헤세의 서평이다. 헤세는 이 책이 그 해 나온 가장 섬세한 진미로 꼽을 만하다고 평한다.


헤세의 서평집을 보는 재미는 헤세가 읽은 책과 그 책에 대한 헤세의 생각을 들여다보며 그의 유려한 문장에 취하는 데 있기도 하지만, 헤세의 작품에 얽힌 에피소드를 읽는 데도 있다. 헤세의 <데미안>은 '에밀 싱클레어'라는 이름으로 발표되고 상을 받기도 한 것으로 유명한데, 나중에 이 작품이 헤세의 작품이라서 더욱 유명해졌다. 여기에 대한 헤세의 이야기가 재미있다. 사람들이 익명을 선택한 이유를 설명해달라는 요구를 하도 하다 보니 헤세도 뭔가 할 말이 있었나 보다. 그는 '평론가는 멋대로 작가를 분석할 권리를 지니며, 또한 작가에게 중요하고 거룩한 것을 멍청한 짓이라고 선언하거나 공개토론의 장으로 끌어낼 권리도 있다. 하지만 평론가의 권리는 여기까지다. 평론이 꺼내지 못하는 비밀들에 대해서는, 예나 지금이나 작가에게도 혼자서만 아는 작고 소중한 비밀을 지킬 권리가 있다.'라고 말한다. 그 비밀이 무엇인지는 헤세만이 알겠지만 평론가에게 당당하게 말하는 헤세의 강단 있는 모습이 멋지다.


헤세의 서평집 뒤에 있는 동양 서적에 대한 서평들은 서양인이 동양인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엿볼 수 있는 한편, 그가 동양의 서적이 서양에 알려지기를 얼마나 소망했는지, 또 동양 서적을 얼마나 소중히 생각했는지 알 수 있다.

2015년의 시작 즈음에 너무 좋은 책을 만났다. 올해 이 책과 더불어 책 여행을 하게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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