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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 - 폐허를 걸으며 위안을 얻다
제프 다이어 지음, 김현우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유적은 폐허가 됨으로써만 진짜 의미를 지닌다. 그 몰락이야말로 도시의 영광인 셈이다. 그것이 폐허가 주는 위안의 일부다."
제프 다이어의 여행산문집이라고 하는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의 부제는 '폐허를 걸으며 위안을 얻다'였다. 40대의 나이에 접어들어 자신이 소멸해가고 있음을 느끼기 시작한 작가가 지구촌 곳곳의 폐허의 풍경을 거닐며, 자신의 내면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가 거닐던 곳들은 로마, 리비아, 뉴올리언스, 태국, 암스테르담, 발리, 캄보디아, 파리, 아르데코, 디트로이트, 블랙록시티 등이지만, 굳이 이 곳의 이름을 이야기 속에 집어넣지 않아도 될 것 같은 글이다. 작가는 이런 물리적인 환경 속에 있지만 그가 그려내고 있는 것은 머릿속의 이야기들이다. 작가는 '구역'이라고 부르는 꿈의 공간으로 다가가고 싶어 한다. 구역은 타르코프스키 감독 영화 '스토커'에 나오는 곳으로 사람들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욕망이 이뤄지는 곳이다. 그곳은 제프 다이어가 여행하는 그곳일 수도 아니면 우리 집 거실의 소파일 수도, 집 앞 카페의 구석 의자일 수도 있다.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많은 여행 에세이와는 제목부터가 다른 이 여행산문집을 나는 소설처럼 읽었다. 40대에 접어든 자유롭고 지적인 한 중년 남성이 세계의 곳곳을 돌아다니며 알게 되는 자신과 자신의 구역의 발견. 그는 굳이 폐허라고 불릴 수 있는 곳을 찾는다. 화려했던 과거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는 먼지 바람만이 자리를 맴돌고 있는 폐허의 유적지, 그는 그 몰락을 직시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도시의 영광을 본다. 그 영광의 끝에 폐허가 되어버린 도시에서 작가는 위안을 얻는다. 왜 그럴까?
대학교 시절 유적 답사를 다닌 적이 있다. 더 이상 사람은 살지 않는, 사람이 살았던 흔적조차 희미해져버린 유적지에서 나는 과거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자 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할 뿐, 더 이상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었다. 그 화려했다던 건물은 희미한 흔적만 남아있고, 그 영광을 누리던 소리치던 인물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 유적지에 서있던 나는 그들과 똑같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 먼지 같은 존재일 뿐이었다. 어쩌면 나는 거기에서 나의 존재가 불쌍하지도 안타깝지도 않은 그런 존재임을 증명 받았던 듯하다.
제프 다이어 또한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는지는 모르겠지만, 작가는 폐허의 도시에서 마약과 파티와 같은 반문화적인 행동을 일삼는 일탈을 한다. 폐허로 변한 도시와 폐허를 재촉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살아있는 모든 것의 종말은 결국 죽음으로 향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 작은 위안을 얻으려는지도 모른다. 삶이라는 여행 속에서 한순간, 한순간 작은 위안을.
현실과 상상을 오가는 작가의 글이 때로 읽는 독자마저도 환상 속으로 데려가 뭐가 뭔지 헷갈리게 하기도 하지만, 유머러스하며 독특한 어조의 글은 알랭 드 보통과 하루키가 왜 그렇게 그를 칭찬하게 했는지 짐작하게 한다.
'일어난 일을 그대로 옮기겠다는 강박관념에 머물러 있으면 그 글은 완전히 지루해질 것이지만, 자기의 자연스러운 목소리에 가까운 어조를 찾는다면 그 글은 진정한 생명력을 갖게 될 것'
자연스러운 작가의 목소리와 이야기에 흘러가듯 독자의 생각도 함께 진행되면서 뜻밖의 여행지에 도착하게 되어있는 여행산문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