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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의 사생활 ㅣ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4
최민경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홀가분하다.
아빠가 이렇게 빨리 돌아가시게 될 줄은 몰랐다.
이것이 이 책의 첫 문장이다. 홀가분하다 와 아빠가 이렇게 빨리 돌아가실 줄은 몰랐다는 문장 사이의 간격만큼 이 이야기의 화자인 하나와 췌장암으로 돌아가신 아버지와의 거리는 멀다. 아빠는 노름판을 기웃거리다 가정을 돌보지 않았고 엄마와 이혼을 했다. 그러다 암에 걸렸고, 엄마는 그런 아빠를 집으로 데려왔다. 그렇게 다시 가족이 된 이들은 동네 사진관에서 가족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아빠는 돌아가셨다. 엄마와 화자인 나는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돌아오는 길에 엄마와 어떤 관계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제과점에서 케이크를 사가지고 와서 먹는다.
이런 가정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 잊힌 친구인 마리가 나타난다. 말희라는 이름을 '마리'로 고치고 얼굴도 달라져서. 옛 추억의 편지를 뭉텅이로 들고서. 마리의 등장으로 나는 엄마와의 관계에서 조금은 편한 부분도 그리고 시샘이 나는 부분도 생긴다. 그리고 남자친구인 상준과의 관계도.
이들의 관계는 어떻게 전개될까?
주인공 하나는 아버지를 진실로 이해하고 있었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비록 나를 낳아주신 아버지이건만. 그렇다고 같이 살았던 엄마와의 관계 또한 친밀하게 보이는 것도 아니다. 엄마와 빵집 아저씨와의 그 묘한 관계를 눈치도 채지 못할 뿐 아니라 엄마의 감정을 생각해본 적도 없다. 그렇다면 마리와의 관계는 어떨까? 마리가 엄마와 친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면 불편하고 샘도 나지만 그리고 자신의 생활을 침범해서 불쾌하고 불편하지만 그렇다고 마리가 집에 불러온 활기와 웃음은 부정하지 못한다. 결국 마리가 집을 나가게 되지만 여전히 마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타인을 진실로 이해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부모인 아버지와 엄마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친구인 마리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가장 큰 문제는 "나" 또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나의 상준에 대한 마음, 엄마에 대한 마음, 아빠에 대한 마음 결국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결국 낯선 타인인 마리의 등장으로 인해 마리가 내 삶에 침투하면서 나는 '나'를 인식하게 된다. 타인의 존재로 인해 그 실체가 폭로되는 그것이야말로 인간이라는 존재인 것이다.
이 책은 짧다. 이른바 중편소설이다. 짧은 문장, 빠른 전개, 쉽게 읽히는 장점을 지녔다. 요즘 시대에 어울리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