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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비의 하루 - 권력 아래 가려진 왕비들의 역사 ㅣ 하루 시리즈
이한우 지음 / 김영사 / 2014년 10월
평점 :
'나는 1565년 4월 6일 심열로 창덕궁 소덕당에서 눈을 감았다. 1501년에 태어났으니 그때 나이 65세였다. 당시로서야 장수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사신은 논한다. 윤씨는 천성이 강한(剛悍)하고 문자를 알았다.
'강한'하다고? 이것이 무슨 뜻인가? 한은 사납다, 마음이 비뚤다, 거칠다는 뜻이다. 아주 사납고 크게 마음이 비뚤어졌고 매우 거칠다는 말이다. 이것이 역사를 논한다는 사신의 입장에서 나올 말인가? 내 살아생전에는 한마디도 못하다가 세상을 뜨자마자 붓을 들어 등에 칼을 꽂는 행태를 보이는 것이 성리학으로 무장했다는 사내대장부가 할 짓인가?
위의 이 글은 <왕비의 하루>의 저자인 이한우가 문정왕후 윤씨의 입장이 되어 서술한 내용이다. 여자가 권력을 장악하면 죄가 되는가?라고 물으며 오히려 문정왕후를 제대로 평가하려면 왕권이 약화되고 여성에 대한 제약이 본격화된 시기에 과연 탁월한 능력이 있었기에 그 노회하기 그지없는 남성 관료들을 일거에 제압하고 여왕에 가까운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는지부터 알려고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성리학이라는 틀을 통해 볼 것이 아니라 문정왕후가 했던 일들이 균형 있게 평가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저자는 이렇듯 왕비의 목소리를 통해 호기심을 갖게 한 후 실록의 내용을 들어 왕비의 역할이 어떠했는지, 왕비가 한 일이 무엇이었는지, 흥미롭게 서술해나가고 있다. 제목은 왕비의 하루지만 실은 왕비가 하루 동안에 했던 일들의 나열이 아니라 조선시대라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그리고 성리학이라는 이념적 토대 위에서 조선의 왕비, 특히 대비가 행했던 정치적 행동과 의미를 추적해나갔다. 우리가 흥미롭게 보고 있는 역사드라마처럼 에피소드들이 재미있지는 않지만 정확한 역사적 사실을 들어 설명해 나가고 있기 때문에 왕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여인들의 정치력은 새롭게 다가온다. 특히 악독하게, 혹은 자신의 친정식구들을 위해서만 움직였을 것이라고 알고 있던 왕비들이 사실은 그렇지 않은 부분도 많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한우의 군주 열전을 대부분 읽었기에 중복되는 부분이 많아 아주 새롭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왕비를 중심으로 다시 정리한 부분은 충분히 흥미를 가질 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