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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네 시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남주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11월
평점 :
품절
'가령,네가 오후 네시에 온다면 난 세시부터 벌써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시간이 갈수록 나는 점점 더 행복해지겠지. 네시가 되면 난 벌써 흥분해서 안절부절못할 거야. 그래서 행복이 얼마나 값진 것인가를 알게 되겠지.' <어린 왕자>의 이 문장을 떠올리게 만드는(제목만 봤을 때는) 아멜리 노통브의 <오후 네시>는 그녀의 다른 작품들처럼 보기 좋게 나에게 크게 한방을 먹였다. 그녀의 작품은 항상 나에게 생각하고 기대했던 것 이상을 던져준다. 그리고 난 그녀의 작품을 껴안고 며칠을 다시 생각하고 고민하게 된다.
우리 남편과 나는 은퇴한 뒤에 시골에서 조용히 책을 읽고 산책을 하고 야생화를 키우면서 보내자는 이야기를 한다. 그럴 때면 현실에서 우리가 만나는 온갖 자질구레하고 짜증 나는 일들이 멀리 달아난 것처럼 기분이 달라지기도 한다. 우리의 미래를 그려낸 것처럼 은퇴 후 아주 조용한 시골에서 생전 처음 '우리 집'이라고 느낀 집으로 이사한 에밀과 쥘리에트 부부는 모든 일에서 자유로워지기를 갈망했던 소망이 이루어진 것을 기뻐한다.
그러나 어린 왕자의 그 아름다운 문장처럼 오후 네 시가 되면 초인종을 울리고 방문하는 이웃이 생겼다. 처음에는 이사 온 이웃에 대한 예의상의 방문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매일 같은 시각, 오후 네시가 되면 초인종이 울리고 거실의 소파를 차지하고 커피를 주문하고 두 시간 동안 조용히 앉아있기만 하는 이는 더 이상 다정한 이웃이 아니라 불청객이 되었다. 어린 왕자의 행복감은 전혀 찾을 수 없고, 매일 오후 네시에서 여섯시까지 두 시간 동안이지만 이제 더 이상 이 부부는 평화롭고 자유로운 생활을 이룰 수 없게 되었고 느닷없이 등장한 타인은 이들의 삶을 지배하게 된다.
사람은 스스로가 어떤 인물인지 알지 못한다. 자기 자신에게 익숙해진다고 믿고 있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이다. 세월이 갈수록 인간이란 자신의 이름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그 인물을 점점 이해할 수 없게 된다. 그렇다고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낯설게 느껴진다고 한들 무슨 불편이 있을 것인가? 그 편이 오히려 나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 알게 되면 혐오감에 사로잡힐 테니까.
작가가 이 소설의 첫 문장에 쓴 것처럼 타인의 등장으로 인해 주인공인 에밀은 '나'를 발견하게 된다. 여섯살 때부터 평생의 동반자로 여겼고, 지금까지 살면서 서로 모르는 게 없다고 믿었던 부부도 낯선 이웃(타인)의 등장에 서로의 생각이 다름을 알아가게 된다. 이웃인 베르나르댕씨 부부의 삶을 이들은 사회적으로 존재론적으로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규정하기에 이른다. 그래서 에밀은 베르나르댕씨의 자살을 방해했던 자신을 반성하며 '그건 사는 게 아니라고요! 당신은 고통과 권태의 덩어리에 불과해요. 더 심각하게 말하자면 당신은 공허 그 자체예요.'라고 베르나르댕 씨에게 말한다. 그는 자신이 느낀 대로 생각한 대로 그의 삶을 구원하기로 한다.(이 장면은 놀랍기만 하다. 타인의 삶을 이렇게 끝나게 해주어야겠다는 판단을 할 수도 있구나~~인간이.)
그리고 그는 자신도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 알지 못하는 상태로 남는다.
지금 나는 눈을 바라본다. 눈 역시 흔적을 남기지 않고 녹으리라. 하지만 이제 나는 눈이 규정할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는다. 나는 내가 어떤 인간인지 더 이상 알지 못한다.
지옥, 그것은 타인이다. 내가 되고자 했던 모습과 내가 실제로 된 모습 사이에 커다란 심연이 놓여있다면 나와 함께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타인들은 모두 내 목에 밧줄을 거는 교수형의 집행자가 된다. 이 타인들의 모든 시선이 나를 먹어치운다. (장 폴 싸르트르, <닫힌 방>)
타인에 의해 발가벗겨진 '나'를 발견하게 되는 일, 그리고 '낯선 나'를 만나는 일,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인간이기에 안게 되는 숙제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