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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사랑 - 순수함을 열망한 문학적 천재의 이면
베르벨 레츠 지음, 김이섭 옮김 / 자음과모음 / 2014년 8월
평점 :
오스카 와일드는 예술이 생활을 모방하는 게 아니고, 생활이 예술을 모방한다고 말했다. 그것은 예술이 생활보다 나은 점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애인의 키스는 영화의 키스보다 형편없다고 느끼는 것이다.
<헤르만 헤세의 사랑>을 읽으면서 헤세의 사랑이 딱 이렇게 느껴졌다. 헤세가 그리는 사랑, 즉 작품 속에 있는 사랑은 헤세에게는 현실에서 구현하기 힘든 것이었던 것처럼 보인다. 특히 헤세의 연인들은 헤세와의 사랑의 줄다리기에서 얻은 것이 별로 없어 보인다. 사랑의 권력은 헤세에게 있었다. 그는 자신을 사랑하는 여인들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을 수 있는 사람으로 권력을 누렸다.
헤세의 사랑을 얻기 위해 그와 결혼한 세 명의 여인, 마리아 베르누이(9살 연상의 사진작가), 성악가였던 루트 벵거, 미술사학자였던 니논 돌빈은 헤세에 지독히 끌렸으며 결국 헤세를 결혼이라는 올가미를 채우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하지만 헤세는 유목민처럼, 사냥꾼처럼, 그리고 방랑자처럼 떠돌며 이상을 좇는 사람이었고, 결코 가정에 머무를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의 첫번째 부인이었던 마리아는 헤세가 외면한 자질구레하고 귀찮은 일상의 모든 문제를 처리하고 해결하는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헤세가 마리아와 결혼한 것은 무엇일까? 다름에 대한 동경이었을까? 헤세는 이곳에 살면서 끊임없이 항상 저곳을 꿈꾸는 이였다. 그래서 그는 예술가적 숙명과 결혼의 속박 사이에서 갈등한다. 예술가와 사상가는 결혼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그는 마리아와 헤어지고도 두 번의 결혼을 더 하는 자기모순에 빠지고 만다.
그는 불행한 결혼이 잘못된 선택 때문이 아니라 '예술가의 결혼'이라는 본질적 문제에 그 뿌리가 있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만의 고유한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또다시 결혼이라는 굴레를 쓰고 만다.
그렇지만 여자들의 입장에서 헤세는 어떤 인물일까?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까칠한 문학가로 동경과 사랑의 대상이다. 그렇지만 그를 사랑하는 어떤 여인도 헤세를 변화시키거나 소유할 수는 없었다.
마리아가 헤세가 사랑한 또 다른 여인인 힐데가르트에게 '당신이 헤르만을 가질래요?'라고 묻는다. 그녀의 대답은 '누구도 헤세를 가질 수 없잖아요. 그냥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거겠지요.'이었다. 헤세는 엘리자베트 루프의 책에서 '당신은 사랑할 줄 모릅니다. 아니, 사랑할 수 없습니다. 당신은 타오르기만 할 뿐, 나를 따뜻하게 해주지 못하니까요.'라는 말처럼 여자가 포용해야만 하는 인물이었다.
헤세에게는 부인이 아니라 연인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매일 함께 하는 부인이 아니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연인.
그에게 여행과 문학이 위로와 기쁨이며 힘든 현실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다. 현실과 이상, 현실세계와 마법의 정원 사이의 괴리를 경험했기에, 글쓰기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했다. 헤세의 정신적, 육체적 고통이 그의 창작의 원동력이 된 것으로 보인다.
결혼은 여성들에게는 이상이었지만 헤세는 체념의 형식이었다. 우리가 헤세의 위대한 작품을 지금까지 만나고 감동받는 것은 헤세의 이런 고뇌와 아이러니한 생각 덕분일까? 아니면 헤세의 연인들의 희생 덕분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