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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나는 아네
마야 안젤루 지음, 김욱동 옮김 / 문예출판사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대부분의 인간은 잘못된 관습과 방식을 극복하지 못하고 타인이 바라는 삶에 자신을 맞춘다. 사실 그렇게 하는 것이 편한 일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런 관습을 견디지 못하는 이들이 있어 인류는 조금씩이라도 옳은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마야 안젤루. 그녀는 그렇게 인류의 발걸음을 앞으로 진행하게 했던 사람이었다. 1928년 태어나 세 살 때 부모의 이혼으로 흑인에 대한 차별이 여전하던 미국의 남부로 보내져 할머니 손에서 자랐으며, 8살 때 어머니의 남자친구로부터의 강간의 충격으로 몇 년 동안 실어증에 걸려 말을 잃었었다. 그렇지만 인종차별의 벽을 뚫고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처음으로 전차 차장이 된 흑인 여성이 되었다. 하지만 16살의 어린 나이에 미혼모가 되기도 했다. 여기까지의 마야 안젤루의 삶의 이야기를 담은 자서전 같은 소설이 바로 <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나는 아네>다.
마야 안젤루는 부끄러워 감출 수도 있었을 자신의 과거를 문학적 아름다움까지 더해서 드러내고 있었다. 관습의 벽을 깬 용기는 이렇게 그의 글에서도 과감하게 드러났다. 인간은 모두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미국의 독립선언문의 인간에 들지 못한 당시의 흑인들, 그중에서도 여성으로서 마야는 새장에 갇힌 새로 표현된다. 그녀에게 영향을 주는 인물들은 그렇지만 차별을 벗어나려는 행동에까지 이르는 인물들은 아니다. 그녀를 길러주신 할머니는 종교에 의지한다. 당시의 인물들의 반응은 다음과 같은 문장에서 잘 드러난다.
오빠는 미스터리에 갇혀 있었다. 일곱 살 때 시작해 죽을 때까지 남부 사내아이들이 푸는, 풀려고 노력하는 바로 그 수수께끼 속에, 불평등과 증오라는 그 재미없는 수수께끼. 그의 경험은 가치와 중요한 의미, 공격적인 열등감과 공격적인 오만함에 대한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흑인 남자이고 남부 사람이고 더구나 절름발이인 윌리 삼촌이 입 밖에 내어 직접 묻지도 않은 그런 의문에 답하고 싶어 할까? 백인들의 방식과 흑인들의 계략을 모두 알고 있는 마마가, 그 수수께끼를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해야만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손자에게 대답을 하려고 할까? 모르긴 몰라도 그럴 리가 없었다.
두 사람은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반응을 보였다. 윌리 삼촌은 도대체 세상이 어떻게 되어가는지 모르겠다는 말 비슷하게 했다. 마마는 "주여, 불쌍한 사람의 영혼을 편히 쉬게 하시옵소서"하고 기도했다.
하지만 마야는 그들에게서 조금씩 서로 다른 영향을 받은 듯하다. 하지만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인물은 아마 그녀의 어머니가 아니었을까? 그녀의 어머니는 아름다운 그리고 당당한 흑인 여성이었다. 그녀는 마야가 아이를 낳고 자신이 아이를 잘 돌보지 못할 것이라고 했을 때 아이를 데리고 자라고 한다. 그리고 마야가 무의식중에 아이를 깔아뭉개지 않고 보호하려는 동작으로 잠든 모습을 알려주며 '봐라, 옳은 일을 할 때는 생각할 필요가 없는 거야. 네가 하려는 일이 옳은 일이라면 생각하지 않고서도 저절로 하게 된단다.'라고 말한다.

물론 마야 안젤루의 삶도, 그리고 이 책 속에서의 마야의 삶도 전적으로 옳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굳이 변명을 하자면 소외된 흑인 소녀라는 타자로서의 삶과 어렸을 적 성폭력의 경험으로 왜곡되어 버린 마야는 잘못된 행동 혹은 선택을 하기도 한다. 존경받아 마땅한 인물 또한 그렇게 나약한 존재로서의 인간의 모습을 보인다는 데서 오히려 공감을 가져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