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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의 여행 - 헤세와 함께 하는 스위스.남독일.이탈리아.아시아 여행
헤르만 헤세 지음, 홍성광 옮김 / 연암서가 / 2014년 7월
평점 :
삶은 여행이다. 우리는 어느 한 시점에 지구에 존재하는 떠돌이 나그네다. 그래서 나는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살고자 한다. 그렇지만, 아무리 그렇게 외치고자 해도 실상은 거리가 멀다. 어느 날 아웅다웅 싸우며 살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럴 때 나는 여기서 벗어나 훌쩍 떠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헤세가 느낀 사회적 구속으로부터 초월하려는 강한 욕망은 방랑자 같은 떠돎을 계속하는 여행하는 문학가 헤세를 낳았다.
베를린의 한 출판업자에게 4000마르크의 선수금을 받아 화가인 친구와 함께 떠났던 인도 여행은 특히 그의 방랑에서 빠뜨릴 수 없는 여행이다. 비록 3개월의 여행 동안 인도 본토는 가보지도 못하고 홍해를 거쳐 스리랑카, 싱가포르, 남수마트라만 갔지만.
"나는 유럽에서 도피하였고, 유럽을 거의 증오했다. 그 조야한 무취향성과 소란스러운 시장터 분위기, 조급한 불안과 거칠고 아둔한 향락욕을."
그에게 인도 여행은 내면의 변화를 가져왔다. 동양권의 발견, 아시아인들의 신성을 발견했다. 그것은 그의 작품에서도 빛을 발한다.
헤세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존재일 수도 있고, 혹은 변덕과 화증이 가득한 인물일 수도 있겠지만 그의 여행 에세이를 통해서 본 그는 고민하는, 그리고 끊임없이 진리를 추구하는 지성인이었다. 어쩌면 여행은 헤세가 다음과 같이 말한 것처럼 저 건너편에 보이는 것이 너무 환상적이어서 그런 유혹에 넘어가 떠나는 방랑일지도 모른다.
가까운 고향은 내게 너무 서늘하고, 너무 딱딱하며 분명하게, 안개나 비밀도 없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리고 저 건너편에는 모든 것이 무척 부드러운 색조를 띠고 있었고, 듣기 좋은 음향, 수수께끼, 유혹으로 넘쳐흘렀다. 나는 그 이후로 방랑자가 되었고, 안개에 싸인 온갖 저 머나먼 언덕 위게 서 있었다.
그는 여행에서 인도인의 꿈결 같은 걸음걸이, 얌전한 스리랑카인의 슬프도록 아름다운 노루 같은 부드러운 눈초리, 검은색을 띤 구릿빛의 타밀족 노동자의 새하얀 눈동자, 고상한 중국인의 미소, 낯선 방언으로 중얼거리는 거지의 더듬는 말, 열 개의 상이한 언어를 지닌 민족들의 사람들끼리 말하지 않고도 이해되는 현상, 억압받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 우쭐대는 압제자에 대한 조소를 만난다. 그리고 이들 모두가 같은 인간이자 형제이며 운명을 같이 하는 사람이라는 독특하게 행복한 감정을 느낀다. 그의 이런 통찰은 많은 유럽인이 가졌던 일반적인 관념과는 반대된다. 그도 고백하듯이.
이국적인 민족의 사람과 도시를 얼마나 자주 다만 신기한 대상으로서만 바라보았으며, 무척 재미있지만 기본적으로 우리와 아무 관계없는 동물 곡예단을 바라보듯 들여다보았던가! 내가 이런 입장을 버리고 말레이인, 인도인, 중국인, 일본인을 인간이자 가까운 친척으로 본 시점부터 비로소 그 여행에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는 체험이 시작되었다.
헤세는 아시아에 대한 동경에서 출발했지만 결국에는 다시 유럽으로 돌아와 지금까지와는 다른 유럽을 느낀다. 우리의 여행이 그러하듯이.
나는 아시아에서처럼 유럽에도 기관차의 발명으로도, 비스마르크에 의해서도 파괴되지 않았던 비밀스러운 영원한 가치 세계와 정신세계가 존재하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이 같은 시간을 초월한 세계 속에 정신적인 세계의 이 같은 평화 속에 살아가는 것이 좋고 올바르다는 것을 알았다. 유럽과 아시아, 베다와 성서, 부처와 괴테가 똑같은 몫을 갖는 세계에서 말이다.
<헤세의 여행>은 우리가 흔히 접하는 여행서는 아니다. 오히려 헤세의 정신세계를 여행하고 온 느낌이 강하게 드는 관념적인 여행 에세이다. 그래서 조금은 재미가 떨어지고 읽기에 지루하기도 하지만 인생이라는 여행을 하고 있는 지구별 여행자인 우리들에게는 한 번쯤 읽어보면 도움이 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