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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 도종환 시화선집
도종환 지음, 송필용 그림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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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없는 그림, 말 없는 시
시를 통해 조금 덜 말하고 사물들이 말하게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풍경이 먼저 말하고 나는 그 옆에 가만히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합니다. 시는 말로 만들어진 그림인데 나는 그 그림을 설명하려 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다행히 송필용 화백을 만나 말하지 않고 보여주는 법을 배웁니다. 그리고 송 화백이 보여주는 시를 보며 말하지 않고도 말하는 법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초판 시인의 말 중에서-
말로, 단어로 표현해야 하는 시인이 말하고 싶지 않다고 한다. 설명하려 하지는 않았는지, 사물이 풍경이 하는 말을 가로막는 존재는 아닌지 걱정하는 시인은 길모퉁이 작은 풀꽃도 무심코 지나쳐버릴 바람의 몸짓도 예사롭지 않다. 낮은 곳, 좁은 곳, 그래서 소외된 곳에서 자라나 약하고, 흔하고, 특징 없는 것들이라 관심으로부터 벗어난 것들조차도 그들이 하는 말이 있음을 존재의 가치가 있음을 시인은 알고 있다. 그래서 시인은 넘치고 시끄러운 우리에게 낮고 작은 목소리로 '어느 것이 소중한지'를 묻는다.
모두가 눈 감고 귀 막고 도망 쳐버린 곳에서 그곳을 지키는 존재가 무엇인지, 그 존재의 가치를 아는지 묻고 있다.
사막에서도 저를 버리지 않는 풀들이 있고
모든 것이 불타버린 숲에서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믿는 나무가 있다
화산재에 덮이고 용암에 녹은 산기슭에도
살아서 재를 털며 돌아오는 벌레와 짐승이 있다
내가 나를 버리면 거기 아무도 없지만
내가 나를 먼저 포기하지 않으면
어느 곳에서나 함께 있는 것들이 있다
돌무더기에 덮여 메말라버린 골짜기에
다시 물이 고이고 물줄기를 만들어 흘러간다
내가 나를 먼저 포기하지 않는다면
-"폐허이후"
그 존재는 내가 나임을 포기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된다. 인간이 인간임을 자각하는 순간 우리는 나와 네가 아니라 우리가 되며 서로 어깨 기대고 함께 공존하는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그의 시 "등잔"에서 '심지를 내려야겠다 ...... 넘치면 나를 태우고/소나무 등잔대 쓰러뜨리고/창호지와 문설주 불사르기 때문이다// 욕심부리지 않으면/은은히 밝은 내 마음의 등잔이여/분에 넘치지 않으며 법구경 한 권// 거뜬히 읽을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의 빛이여'라고 노래하며 공존을 방해하는 것이 개인의 욕심임을 꾸짖는다. 길에 흔한 엉겅퀴조차도 '꽃씨 하나로도 더욱 단단하'며 젊은 그들의 자세는 그래서 넉넉한 것이다.
그래서 그의 시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은 독자에게 던지는 그의 메시지가 된다. 아름답고 화려해 눈길을 끄는 황금빛 노을이기 보다 구름 사이에 뜬 별이 되고, 가득 찬 달이기 보다 동짓날 스무날 빈 논길을 쓰다듬는 달빛이 되라고 말한다. 우아하고 화사한 꽃이기 보다 그저 일상의 꽃이길, 어깨를 서로 기댈 수 있는 억새풀이길 부탁하고 있다. 시인은 큰소리로 분명하게 희망을, 사랑을, 행복을 외치지는 않지만 우리는 그의 시에서 따스한 희망과 사랑과 행복을 본다.
그건 나와 네가 아니라 우리이기에 연약한 존재이기에, 그래서 기대어 살 수밖에 없는 이들이기에 같은 주파수로 공명하는 까닭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