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죽음을 지켜봤던 적이 몇 번 없었다. 보통의 경우 가까운 가족의 죽음 말고는 죽음을 겪어보는 일이 힘들 것이다. 그냥 영안실에 가는 것 말고는.
초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랑 같이 살고 있었고, 할아버지는 아파서 누워계셨다. 누워계시는 와중에도 내가 학교에 가는지 오는지 항상 챙기셨기에 그날 아침에도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했다. 하지만 엉뚱하게도 내 입에서 나온 말은 '학교 다녀왔습니다.'였다. 할아버지가 편찮으시니 고모들도 와계셔서 나는 너무 부끄러워서 마구 달려서 학교에 갔다. 그날 할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끝내 나는 부끄러움을 안은 채 할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마주 봐야 했다. 난 여전히 할아버지가 내가 한 말을 기억해두고 날 놀리실 것만 같았다. 할아버지와 동갑내기 할머니는 그날부터 '나도 따라가겠다'라는 말씀을 입에 달고 사셨다. 어린 내 생각에 할아버지는 혼자서 멀리 좋은 곳에 가셨고(할머니는 그곳이 고통도 없는 천당이라고 하셨다) 할머니는 나를 두고 얼른 따라가시려나 보다 생각했다. 그리고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도 22년을 더 사시다가 가셨다. 돌아가시기 며칠 전 정신이 오락가락하실 때 할아버지가 인절미를 해가지고 어떤 년이랑 맛있게 먹고 있다고 질투를 하셨다. 그때는 이미 나는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없다'라고 단정을 내린 뒤였고, 할머니의 말씀이 꿈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할머니는 절대로 부정하시지만.
그리고 반년 전 가장 친한 친구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암 투병기간 지켜본 친구를 통해 다시금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죽음에 대한 부정, 분노와 함께 하던 시간도 있었지만 마지막 가기 전에는 삶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보고 싶었던 사람들과 연락을 해서 만났고, 미안하다고 사랑한다고 안아주며 그렇게 하나하나 정리를 하던 친구를 보면서 '가 있어. 곧 만나게 될 거야.'라는 말을 했다. 왠지 잘 모르지만 그렇게 될 것 같았다.
잘 모르겠다. 책을 읽고 나서도 죽음 이후의 삶이 존재할 것인지에 대한 확신은 없다. 죽음 이후에도 우리의 삶은 존재한다는 가능성은 겪어보지 않았기에 있을 수도 있겠지 하는 생각은 해보지만 솔직히 설마 하는 생각이 더 강하다. 하지만 친구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죽음 앞에서 내가 부둥켜 안고 고민하던 것들이 아무것도 아님을 그림자였음을 느꼈다. 허상을 껴안고 살아가는 인생임을 깨닫는 순간, 그저 나에게 주어진 일상을 즐겁게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내 옆에 있는 이들을 맘껏 사랑하고 표현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아야겠다는.
그래서 죽음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삶에서 가장 중요하고 가치 있는 질문이 된다. 이에 대한 답은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 삶의 목적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이 될 것이다. 삶은 죽음을 통해 나온다.
작가가 이 책에서 하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아버지 세대들과 함께 살았던 사람들이라면 많이 들어봤던 것들이다. 우리가 지금 힘든 것은 전생의 카르마때문이다. 이렇게 이생에서 업을 다 닦고나면 내생에는 더 좋은 삶이 펼쳐진다는.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어른들과 함께 자라는 아이들도 없고, 이 생에서 물질만을 추구하며 살아가기에 바쁘기에 어쩌면 잊고 있던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작가는 우리는 할 일이 있어서 이 지상에 왔다고 한다. 그 일을 찾아 다 이루고 가야 이번 생이 완성된다고. 과연 나는 이 지상에서 어떤 할 일을 하고 가야 하는지 오늘은 조용히 되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