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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발칵 뒤집은 판결 31 - 법정에서 바라 본 세계사의 극적인 순간들과 숨은 이야기
L. 레너드 케스터 외 지음 / 현암사 / 2014년 5월
평점 :
다음 날 8월 15일, 포츠담 선언에 따라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는 천황의 떨리는 목소리가 방송을 타고 흘렀다.
[네이버 지식백과] 항복과 히로히토 천황 - 일본의 패망(1945년) (일본사 다이제스트 100, 2011.12.30, 가람기획)
지금까지 역사 교과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해왔고, 우리는 한치도 의심 없이 이 사실을 받아들였다. 제2차 세계대전 뒤 독일의 나치 전범에 대한 재판 과정을 얼핏 들었지만 일본의 경우와 비교해서 들어본 적도 없었고, 그래서 독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일본도 전범에 대한 처벌과 반성의 과정이 당연히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뒤에 벌어진 일들을 보면 일본의 천황은 여전히 일본을 통치하고 있었으며 일본은 전범들의 위패가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총리가 방문하는 일로 주변국의 항의를 받고 있다. 과연 일본은 왜 독일과 다를까? 여기에 대한 답을 이 책의 380페이지에서 알게 되었다.
<세계를 발칵 뒤집은 판결 31>의 여덟 개의 장 중에서 '세계대전과 냉전을 둘러싼 재판과 판결들'의 두 번째 이야기가 바로 '도쿄 전범 재판'이다. 그 부제가 눈에 띈다. "어영부영 끝나버린 일본 전범들의 단죄(1946~1948)" 당시 일본의 천황 히로히토는 포츠담선언에 따른 '모든 전쟁 범죄자에 대해서 엄중히 재판해야 한다.'에 저항하고 '전범 처벌을 일본 측에서 자주적으로 할 것'을 요구하며 마지막까지 저항하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맞은 뒤 라디오를 통해 [대동아전쟁 종결 조서]를 낭독했다. 그 종결 선언은 '짐이 영국과 미국에 선전포고를 한 것은 제국의 자존과 동아시아의 안정을 보장하려는 신실한 마음에서 우러난 것이지, 타국의 주권을 침해하거나 영토를 침범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였다.
조서는 항복 선언이었지만 '패전'이나 '항복'이라는 말은 없었다. 더군다나 이어 이어진 재판에서 히로히토 천황은 전범 리스트에서 빠져 있었다. 이것은 마치 히틀러가 살아 있었다면 그를 총통관저에 고이 모셔두고 전범 재판을 진행한 것과 마찬가지 꼴이었다. 이것은 패전과 동시에 온갖 생존 방도를 궁리한 천황 자신과 측근들의 활약, 일본 점령과 전후 아시아 경영 전략을 고려한 트루먼 대통령과 미국 정부의 견해, 점령군 사령관으로 전범 재판에까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맥아더의 판단 등이 상호작용한 결과였다. 소련이라는 존재의 위험성 때문에 일본인의 천황에 대한 맹목적 충성을 활용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한 미국은 일본을 미국의 우방으로 개조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던 것이다. 이렇게 많은 의문점을 남기고 황급히 종결된 재판은 아직까지 동북아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를 발칵 뒤집은 판결 31>은 이렇게 역사의 한순간의 판결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졌고, 그 판결의 내용은 어떠했는지를 우리에게 펼쳐 보여주고 있다. 죽은 교황의 시신을 재판정에 앉히고 벌어진 엽기적인 재판과 법정에 선 사람이 아니라 결국은 생각을 심판했던 소크라테스 재판, 토머스 모어 재판, 갈릴레오 갈릴레이 재판, 스코프스 '원숭이'재판 등은 지금도 여전히 살아있는 '생각'에 대한 재판을 떠올리게 한다.
역사가 심판해 줄 것이라는 말이 지금의 비난을 모면하고 벗어나려는 말처럼 들린다. 아마 이 말을 내뱉은 사람들이 파렴치하게 저질러 놓은 일을 변명하려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분명히 역사는 이런저런 방식으로 그 일들을 심판할 것이다. 하지만 역사가 심판할 것이다가 비난을 모면하려는 변명이 아니라 분명한 책임을 지닌 말이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