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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 울지 못한 당신을 위하여 - 이별과 상실의 고통에서 벗어나 다시 살아가는 법
안 앙설렝 슈창베르제 & 에블린 비손 죄프루아 지음, 허봉금 옮김 / 민음인 / 2014년 4월
평점 :
절판
년 가을이었다. 그날은 가을빛이 마을 가까이로 들어와 집에서 바라다 보이는 나무의 잎사귀들도 모두 붉은빛을 내던 그런 날이었다. 그리고 내 생일이었다. 아침에 울리는 전화벨의 느낌은 왠지 목덜미가 서늘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날이면 대부분은 생일 축하 전화이기 때문에 빙긋이 웃으면서 받으러 달려갈 텐데 기분이 묘한 게 받고 싶지 않았다. 암으로 투병 중이던 친구가 그날 아침 저세상으로 갔다고 친구의 남편이 전하는 소식을 들어야 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가끔 만나지만 한결같이 '친구'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친구였는데 너무 젊은 나이에 아직 어린아이들과 남편을 남겨두고 어떻게 눈을 감았을까 생각하면 눈물만 흘렀다.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할 수도 없이 그렇게 며칠의 시간을 보냈다. 아침부터 잠들 때까지 문득문득 친구 생각에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나도 친구의 아이들도 그리고 친구의 남편도 우선은 먹고살아야 하는 문제가 당장 앞에 있었다. 엄마를 잃은 아이들과 함게 있어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고, 친구가 떠나버린 후 남은 친구의 남편은 조금은 서먹해져 버렸다.
그렇게 나는 친구를 어딘가에 묻어버렸다. 그렇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는 걸 내 머리가 아니라 몸이 말하고 있었다. 몸살이 나고 감기가 걸리고 그리고 친구가 꿈에 계속 나왔다. 꿈속에서 친구와 같이 누워서 수다도 떨고 위로도 하고 또 눈물도 흘렸다. 지금은 6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가끔 납골당에도 가고 친구의 아들과 카톡도 주고받고 있다. 그리고 <차마 울지 못한 당신을 위하여>를 읽는다.
예전 우리나라는 3년 상을 치렀었다. 가까운 이를 잃은 후 3년 동안 애도의 기간을 갖고서 충분히 슬퍼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얼른 잊고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잘하는 일이라고들 한다.
사회는 우리가 애도 작업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자. 사회는 고통 속에서도 우리가 꿋꿋하게 견뎌 나가기를, 불평을 늘어놓지 않고 빨리 예전처럼 돌아가서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기를 요구한다.
우리 사회는 젊음과 아름다움, 재산과 성공에만 눈을 돌리고 병과 늙음,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금기로 여긴다.
사람들이 언급조차 회피하는 이 분야를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책은 우리가 원하는 그런 균형 잡힌 생활이 세심하게 배려해 주고 자주 돌보아 주어야만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넘어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어날 줄 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다. 애도를 마치고 내적인 평화와 평정을 되찾는 것, 이제는 잊어버린 그것을 다시 찾자는 것이다.
우리는 아마 이번 세월호 사건 또한 빨리 묻어버리고 잊어버리려 할지도 모른다. 세월호 이야기를 하는 것에 피곤함을 느끼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충분히 슬퍼하고 애도하고 그리고 차분히 들여다보고 서로 세심하게 배려해줄 때 우리의 상처는 치유되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