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 애니멀 - 인간은 왜 그토록 이야기에 빠져드는가
조너선 갓셜 지음, 노승영 옮김 / 민음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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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나는 빨강 머리 앤처럼 고아이며 언젠가 친부모를 찾게 될 거라는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진짜처럼 이야기하고 다닌 적이 있었다. 동화책에서 본 것과 만화영화를 통해 알게 된 것, 그리고 나만의 상상이 결합되어 만든 혼란하고 웃긴 나만의 세계 속에서 살았다. 그렇게 이야기를 지어내는 일은 청소년기에도 멈추지 않았다. 같은 학교에 있는 남학생들과 내 친구들과의 은밀한 눈빛 교환만 보고서도 우리는 연애소설 한 권을 쓰고도 남을 만큼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고는 했다. 어른이 된 지금도 따로 떨어진 전혀 상관없는 현상 사이를 연결하는 이야기를 찾아내느라 머리가 아프다.

이런  이야기에 대한 인간의 ​어쩔 수 없는 애정을 파헤친 책이 <스토리텔링 애니멀>이다. 저자인 조너선 갓셜은 호모 픽투스​(homo fictus, 이야기하는 인간), 즉 스토리텔링의 마음을 가진 유인원이 왜 그렇게 스토리텔링에 마음을 빼앗기는지를 생물학과 심리학, 신경과학을 동원해 설명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야기는 딱딱해지지 않고 오히려 롤러코스터처럼 흥겹기만 하다.

왜 스토리텔링에 빠지는가?

뿅 가기 때문이다.

픽션은 코카인과 같은 마약이다. 픽션 습관을 미학적으로나 진화론적으로 고상하게 정당화할 수야 있겠지만, 실상 이야기는 지루하고 가혹한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한 마약에 불과하다. 뿅 가기 위해서 우리는 연극, 영화를 보고 책을 읽는다. 그렇지만 단지 뿅 가는 데에만 스토리텔링이 우리 곁에 있지는 않다.

우리의 삶에 이롭기 때문이다.

​스토리텔링은 비용이 적게 드는 대리 경험이다. 특히 정서적 경험이 픽션의 일차적인 유익함이다. 심리학자이며 소설가인 키스 오틀리는 이야기를 인간 사회생활의 모의 비행 장치라고 부른다. 픽션은 인간의 문제를 시뮬레이션하는 데 특화된 아주 오래된 가상 현실 기술이라는 것이다. 한 실험에 따르면 픽션을 즐겨 읽는 사람이 논픽션을 즐겨 읽는 사람보다 사회성이 뛰어나다는 결과가 나왔다. 인간의 삶은 매우 복잡하고 만약 실패하면 잃을 것도 많기 때문에 픽션을 읽는다는 것은 인류가 성공하는데 중요한 과제들에 반응하도록 뇌를 연습시키는 것이다.

​세상을 바꾸기도 해

해리엇 비처 스토우의 '톰 아저씨의 오두막'은 노예제도의 잔학상을 폭로해 노예제 폐지론에 불을 붙였다. 히틀러가 홀로코스트를 일으킨 데에는 순수 혈통 민족에 대한 그릇된 이상을 그린 바그너의 오페라 '리엔치'가 있었다.

스토리텔링의 힘은 강하다. 한 개인만을 바꾸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신과 영혼과 요정을 불러내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자연현상을 설명하고자 한다. 종교의 이런 스토리텔링의 기능은 사회 결속을 만들어낸다. 신화의 목적은 실제 일어난 일을 객관적으로 서술하는 것이 아니다.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것이 목적이다.

스토리텔링의 미래는?

우리는 예전보다 덜 읽는다. 그래서 소설과 시의 종말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는 우리가 픽션을 버렸기 때문이 아니다. 종이가 스크린으로 바뀌었을 뿐 스토리텔링은 다른 방식으로 살아있다. ​ 시는 노래의 형태로 살아 있고, 각종 비디오게임이나 티브이 프로그램에서 스토리텔링은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스토리텔링은 구술에서 점토판으로 인쇄 서적으로 영화로 티브이, 킨들, 아이폰으로 진화하고 있다.

 

전히 사람들은 꿈을 꾸고 환상을 보며 우리 아이들은 뛰놀고 이야기를 만든다. 그러도록 설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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