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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인간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3
알베르 카뮈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평점 :
카뮈와의 인연
책을 통해서만 만나는 작가와 독자와의 인연은 독자 혼자만의 느낌이고 생각이겠지만 카뮈와 나와의 만남은 꽤 오래되었다.(ㅎㅎ)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였다. 무덥기만 한 여름방학을 나는 <이방인>을 읽으면서 보냈다. 읽고 또 읽어도 이해할 수 없어서 그래서 자꾸 읽었다. 그렇게 5번을 읽고 나서 모르는 채로 독후감을 방학숙제로 제출했고 상을 받았다. 그 독후감의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가장 강렬하게 머릿속에 남아있는 장면은 '햇빛 때문에 죽였다'였다.
한동안 카뮈와의 관계는 소원해졌다. 카뮈의 글 말고도 나를 유혹하는 많은 책들과 만나느라 어느 추억 저편으로 사라져버린 카뮈를 다시 만난 것은 어느 날 다시 <이방인>을 읽으면서였다. 40이 넘어서 읽는 <이방인>은 그동안의 삶의 축적에도 불구하고 넘기 힘든 책이었다. 다행히 카뮈와의 인연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시지프의 신화>로 <페스트>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제 <최초의 인간>을 읽었다.
카뮈와 친해진 계기
<최초의 인간>이 이렇게 독자들에게 선을 보이게 된 과정도 흥미로웠지만 무엇보다도 카뮈의 자서전 같은 느낌이 들어서 더욱 호기심이 생겼다. 글을 읽지 못하여 노벨상을 받은 아들의 작품을 볼 수 없었던 어머니에게 바치는 글이 있어 더욱 짠한 마음이 일었다.
최초의 인간은 1914년 한 가족이 낯선 곳으로 이사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들은 자크의 부모다. 그 뒤로 40년의 시간이 흘러 자크는 아버지를 찾으러 그곳으로 온다. 아버지는 그가 태어나던 해 전쟁에서 죽었다. 그는 그동안 아버지 없이 가난한 가정에서 자랐다. 그렇지만 한 선생님 덕분에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그는 아버지의 묘지를 찾아가고, 아버지의 생몰연대 <1885~1914>를 읽고서 마흔 살의 자신과 자신보다 젊었던 29살의 아버지에게 연민을 느낀다. 하지만 결국 그는 그의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한다. 이 이야기는 자크의 아버지에 대해서 말하고자 함이 아니었다. 아버지 없이 혼자서 자랐던 자크가 겪은 고통과 경험을 풀어놓는다. 그는 헐벗은 필요만이 이어 주는 가난한 동네에서, 불구인데다가 무식하기만 한 가족들 속에서, 으르렁대는 젊은 피, 삶에 대한 탐욕스러운 갈망과 사납고 굶주린 지성을 가슴에 품고 아버지도 없이 전해 받은 전통도 없이 살았다.
그는 오랜 세월의 어둠을 뚫고 걸어가는 그 망각의 땅에서 최초의 인간이었던 것이다. 카뮈는 아마 이 작품을 쓰던 때 자신의 생애에서 자기의 좌표를 재검토해보고 자신의 중심으로 접근해가며 마침내 그 중심에 다가가려는 노력을 한 듯하다. 이 작품은 불행하게도 쓰다 만 노트에 불과하지만 그래서 더욱 카뮈를 느낄 수 있지 않았을까? 그의 다른 작품에서보다 더욱 인간적인 카뮈가 드러나는 이 작품은 나에게는 카뮈와 친해질 수 있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