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거슬러
토마스 에스페달 지음, 손화수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3월
평점 :
품절


토마스 에스페달의 <자연을 거슬러>는 몇 가지의 사랑 이야기가 겹쳐 흐르고 있다.

책의 시작은 화자인 내가 나의 과거를 회상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의 마지막 사랑, 그것은 48세에 찾아온 16살의 얀네라는 소녀에 대한 사랑이었다. 그는 그 사랑이 범죄일지도 혹은 자연에 대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자연의 무자비함과 폭력, 그리고 자연의 청정함과 결백성. 이렇게 아이러니한 자연의 의미를 전제로 화자인 나의 이야기는 중세 시대의 유명했던 나이 든 교사 아벨라르와 어린 제자 엘로이즈의 사랑을 들려준다.

화자의 사랑은 물론 48세에 만난 얀네가 처음은 아니었다. 그의 회상으로 들려주는 16세 공장에 다닐 때 만난 15세 소녀와의 육체적인 사랑도 있었고, 그녀와 애인관계였음에도 매력을 느꼈던 18세의 앙네테도 있었다. 앙네테는 추악함과 까다로움을 지닌 이상한 아름다움을 지닌 여성이었으며, 그들은 함께 살았지만 사랑 없는 삶을 살았고, 아이도 나았다. 사랑이 식어버렸지만 경제적인 이유에서 결혼을 했고, 어떤 면에서 이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녀와의 사랑은 그녀가 다른 남자를 만나서 살고 그 남자의 아이를 가지면서 끝나고 만다. 이제 자신의 자리로 돌아온 화자는 한 파티에서 만난 16세의 얀네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는 얀네와의 삶에서 무한한 행복을 느낀다.

아, 행복! 나는 정말 행복했다.

이렇게 외칠 수밖에 없었던 벅차오르는 행복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커져갔다.

그러나,

행복해지면 눈이 멀게 되는 것일까. 행복에 취해 있으면 물처럼 투명하고 햇살처럼 얇은 막이 눈앞을 가리기 마련이다. 그것은 매우 유쾌하고 편안하고 기분 좋은 것이다. 내가 그녀의 불행을 볼 수 없었던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어느 날 전시회에서 만난 한 사진작가의 '자네 딸과 인사를 나눌 수 있어서 참 기쁘네'라는 말에 수치를 느끼게 된다. 그들의 행복은 수치였던 것이다. 그들의 행복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었으므로. 그들의 행복은 자연을 거스르는 것이었으므로.

화자는 아벨라르와 엘로이즈의 이야기를 다시 들어 나이 차이는 당사자들에게 불행과 고뇌로 다가오기 마련임을 고백한다. 아벨라르는 세인들 앞에서 떳떳하게 고개를 들 수 없었던 수치심 때문에 종교와 신앙에 귀의했으며 쉬지 않고 글을 쓴 것처럼 ​얀네가 떠난 뒤 그는 그들의 사랑을 시와 같은 글을 쓴다.

나는 얀네만큼 누구를 사랑해 본 적이 없다. 마흔여덟 살에 처음 눈 뜬 사랑. 그것은 인생을 뒤흔들 만큼 치명적이다.

그는 떠난 얀네의 향, 체취와 환상을 안고 살아가며 살수 밖에 없는 자신의 심정을 절절하게 묘사하고 있다.

사랑 없이는 살 수 없소

암컷을 찾아 울부짖는 수컷 부엉이처럼 그는 사랑을 찾아 울부짖는다. ​

우리가 자연스럽다고 말하는 것이 정말 자연스러운 것인가? 그것은 어쩌면 인간의 감성이 아니라 이성과 사회적 약속, 혹은 관습 등이 정해놓은 것일 수도 있지 않는가? 그것을 어찌 자연스럽다고 말할 수 있는가? 작가는 이렇게 묻고 있는 듯하다. 자연을 거슬러 자연스럽게 사랑하는 것, 토마스 에스페달이 꿈꾸는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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