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포스 신화 - 부조리에 관한 시론
알베르 카뮈 지음, 오영민 옮김 / 연암서가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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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노 칼비노는 <왜 고전을 읽는가>에서 고전은 '그것을 읽고 좋아하게 된 독자들에게는 소중한 경험을 선사하는 책이며, 그러나 가장 좋은 조건에서 즐겁게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사람들만이 그런 풍부한 경험을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렇지만 고전은 우리에게 읽었다는 착각을 주고 있는 책 들이기도 하다. 고전에 대한 워낙 많은 정보를 우리는 들어왔기에 읽지 않았어도 어느 정도는 아는 척을 할 수 있는 책들이 대부분이다. 그렇지만 제대로 읽는다면 '고전은 독자에게 들려줄 것이 무궁무진한 책'이 될 수 있다.

시시포스의 신화에 대해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카뮈의 <시시포스 신화>라는 책 또한 읽어본 듯한 착각이 들거나 어떤 내용일 거라고 미리 짐작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이 고전의 반열에 오른 <시시포스 신화> 또한 읽었다는 착각을 줄 뿐 제대로 읽은 사람은 주변에 많지 않았다. 그중에 좋아하는 작가로 카뮈를 꼽고 있으며 <이방인>을 지금까지 9번이나 읽었다는 나 또한 이 작품은 이 번이 처음이다.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 바로 자살이다."

알베르 카뮈의 <시시포스 신화>는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부조리의 철학으로 유명한 알베르 카뮈가 28세에 탈고하고 30세에 출간한 <시시포스 신화>는 우선 우화집이 아니다. 이 책은 부조리와 부조리와 부조리의 인간에 대한 철학 에세이다.

카뮈에 따르면 부조리는 욕망하는 정신과 실망을 안겨 주는 세계 사이의 절연, 통일이라는 향수, 도처에 흩어져 버린 저 우주, 그리고 그것을 한데 묶어 놓은 모순이다. 그래서 문제는 이 분열된 파편들과 더불어 살아가고 사유하는 일, 받아들일 것인가 거부할 것인가를 알아내는 데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은폐하거나 삭제하는 일 (종교의 경우, 희망을 주거나 피안의 세계를 상정함으로써)과 인간의 의식을 삭제하는 일(자살)은 문제를 회피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부조리의 인간(카뮈가 말하는 부조리의 인간은 부조리한 인간이 아니라, 부조리를 의식하며 살아가는 인간을 말한다)은 세계의 모순(인간과 인간 자신의 어둠) 과의 끊임없는 대면이라는 반항을 하는 인간인 것이다. 시시포스처럼. 의식과 반항, 이러한 태도들은 포기의 정반대다. 중요한 것은 죽음을 맞더라도 화해하지 않는 데 있지,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시시포스가 특별히 나의 관심을 사로잡은 까닭은 바로 이 되돌아 내려가는 순간, 이 잠깐의 휴지(休止) 때문이다. 돌덩이들에 바짝 붙여진 채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얼굴은 이미 그 자체가 돌이다! 나는 무겁지만 한결같은 걸음으로, 그 끝을 알 수 없는 고통의 근원을 향해 다시 걸어 내려가는 한 인간의 모습을 바라본다. 가쁜 숨을 고르는 이 시간, 그의 불행과 마찬가지로 어김없이 다시 찾아오는 이 시간은 의식의 시간이다. 산꼭대기를 떠나 신들의 소굴을 향해 조금씩 조금씩 더 깊이 접어 들어가는 매 순간, 시시포스는 자신의 운명보다 더 우월하다. 그는 자신의 바위보다 더 강하다.

이 신화가 비극적인 것은 주인공이 의식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리라. 만일 그가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성공하리라는 희망이 그를 떠받치고 있다면, 실상 그에게 고통이랄 것이 어디 있겠는가? 오늘날의 노동자도 하루하루의 삶에서 똑같은 고역을 실천하며 살고 있기에, 이 운명도 부조리하기는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나 운명이란 오직 의식하게 되는 그 흔치 않은 순간들에 있어서만 비극적이다. 신들 중에서도 한낱 프롤레타리아에 불과한, 무력하면서도 반항적인 시시포스는 자신의 비참한 조건의 전모를 알고 있다. 그가 산을 내려오며 생각한 것이 바로 이 조건이다. 그에게 고뇌를 가져다주었을 통찰이, 같은 순간, 그의 승리를 완성하고 있는 것이다. 멸시를 통해 극복되지 않는 운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쉽지 않은 책이었다. 아니 아주 어렵고 지난한 책 읽기였다. 얇고 가벼운 책이지만 시시포스가 굴리는 바위처럼 묵직한 책이었다. 지금의 일독(一讀)은 내가 카뮈를 이해하기 위한 첫걸음임과 동시에 나와 세계를 냉철한 이성으로 들여다보는 첫 번째 시간이었다. 이제 이 책은 때때로 나에게 세상을 보는 창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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