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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 김수영 문학상 수상작 대표 시 선집 ㅣ 민음의 시 201
김행숙 외 엮음 / 민음사 / 2014년 1월
평점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 정도는 읽자
한 편의 시는 또 다른 한 편의 소설이다. 소설로 쓰면 대하소설이 될 만한 이야기를 시는 단 몇 줄로 눌러 담아 놓는다. 그 안에 시대와 인물과 사건과 감성이 녹아있다. 시에 갇혀 버린 이야기들은 읽어주는 사람이 풀어주어야 비로소 본래의 길고 긴 사연을 늘어 놓는다. 한 줄 한 줄 꼭꼭 씹어 읽어야 하는 까닭이다.
그렇지만 어디 요즘 시대가 그렇게 꼭꼭 씹어가며 시를 읽을 수 있는 시간을 내주기나 하나?
트위터에 올릴만한 짧고 쉬운 감각적인 문장만이 읽히는 시대지 않은가? 시를 보여주면 보통의 경우 "이게 뭔 소리야?"하며 한 쪽으로 치워놓기 십상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시를 안 읽는 시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 정도는 읽어줘야 하지 않니?"하며 들이밀고 싶은 시집이 있다.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한 대표 시를 모은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라는 시집이다.
시집은 바람이 살살 부는 가을의 어느 날 낙엽이 툭 떨어지듯 내 마음의 한 자락이 툭 떨어져 한 구석이 텅 비어있는 것 같은 날 벤치의 한 구석에 앉아 읽으면 좋겠다. 아니 요즘처럼 춥고 긴 겨울이 끝자락도 보이지 않게 달아나버리고 땅이 울끈불끈 요동치듯 흔들며 노랗고 하얀 꽃들이 팝콘처럼 벌어지는 날 읽어도 좋다.
내 마음을 흔든 시들
한 권의 시집을 읽으면서 모든 시들이 나의 감성과 딱 맞아떨어져 마음에 드는 일은 없다. 또한 처음에는 잘 모르겠던 시도 어느날 문득 읽으면 너무 좋아 죽겠는 시도 생긴다. 시와 나의 인연은 첫눈에 반한 첫사랑같기도 하고 오래동안 봐왔던 친구같기도 하다.
이 시집에서 내 마음을 흔들었던 여러 편의 시 중에서 몇 편을 골라보았다.
겨울꽃
엉겅퀴여,겨울이 겨울인 동안
네가 벌판에 서 있어야 한다
바람 속에서 바람을 맞아야 한다
머지않아 천지에 봄이 오리니
엉겅퀴여,네가 엉겅퀴로 서 있지 않을 대
이 땅에 내가 무엇으로 서 있겠느냐
엉겅퀴여,나의 목마른 넋이여
겨울이 겨울인 동안
네가 엉겅퀴로 서 있어야 한다
'저문 강에 삽을 씻고'로 유명한 정희성 시인은 이 '겨울꽃'에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 김수영 문학상을 받은 작가의 작품이라 그런지 김수영의 '풀'과 겹쳐져서 읽히는 듯 하다. 풀처럼 벌판에 서서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견디고 서있는 엉겅퀴가 그려진다.
이 시집에 실린 이성복 시인의 두 작품, '세월에 대하여'와 '다시, 정든 유곽에서'는 다소 긴 시지만 시어로 그림을 그려놓은 듯 시어의 배치가 눈에 띄고 시어가 없는 공간에도 뭔가 의미있는 것이 존재한다는 느낌이 든다.
송찬호시인의 '촛불'에서 보면 이 작품집 속 시인들은 시대와 민중의 아픔을 온몸으로 느끼며 고뇌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는 온몸을 불태워서라도 조그마한 빛이 되고 싶어했나 보다.
젊은 날, 그때 내가 제단에 바칠 수 있던 건
오직 그 헐벗음뿐, 어느새 내 팔도 훌륭한 양초로 변해 있었다
나는 무릎을 꿇고 어두운 제단 앞으로 나아갔다
어깨에 뜨겁게 흘러내리는 무거운 촛대를 얹고
-송찬호 시인의 '촛불'중에서
이 시집에서 유난히 내 눈에 띈 시 한 편이 있었다.
그는 다시 걷는 일에 골몰한다
도덕을 지키기 위하여
-서효인의 '아주 도덕적인 자의 5분'중에서
이렇게 시작하는 시인의 시는 유머러스하면서도 읽을수록 다른 의미들을 발견한다. 화자는 극도로 조심하며 행동하고 소심하다. 부딪치지 않아야겠고 냄새가 나지 않을까 걱정을 하는 위축된 자아의 소유자다. 그는 돈은 없는데 절약하는 것은 미덕이 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고, 전단지의 맥주는 화자를 유혹한다. 그런 유혹에 화자는 전단지를 버리려 하지만 전단지를 버리는 것도 도덕이라는 것에 어긋날까 또 눈치를 본다.
그래서 이 시들은
메를로 퐁티의 말에 따르면 이 세계와 우주는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의식에 반영된 현상이라고 한다. 하여 의식은 몸의 작용이고 몸에 우주의 모든 가능성이 담겨있다고 본다. 몸이 하는 일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일, 우리가 담고 있는 세계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는 문학가가 자신의 몸으로, 자신의 언어로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해야하는지 이해할 수 있는 작품집이다. 시인은 그렇게 온몸으로 시대의 아픔과 타인의 감성을 느끼는 사람들인가 보다. 그 아픔이 좌절이 때론 나에게 다가와 몸을 흔들고 가지만 그 감동을 이 시인들처럼 표현하기는 너무도 어려운 일이라는 걸 리뷰를 쓰면서 온몸으로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