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노예 12년 - 체험판
솔로몬 노섭 지음, 오숙은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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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그리고 여전히 이런 이야기가 우리에게 와 닿는 이유는 2014년 대한민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져서 더욱 그럴 것이다. 인신매매, 노예, 자신의 이익을 위해 같은 인간(그들은 자신이 팔고 사는 이들을 같은 종류의 인간이라고 생각이나 했을까?)을 사고팔고 값을 매기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인간의 잔인한 본성은 어디까지일까? 그리고 그것을 구경하듯 바라보는 사람들은 양은 냄비처럼 부르르 끓어올랐다가 바로 무감각해진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다는 듯이. 그리고 여전히 우리는 법률안에서만 그것들을 해석하고 처벌을 한다.

 

신안군의 한 섬에서 벌어진 사건을 보고 경악했다. 섬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겉으로 보기에 우리와 별반 다를 바 없는 그들이, 그리고 우리의 부모님들과도 같은 그들이), 게다가 경찰 고위 간부까지 모두가 한통속이 되어서 쉬쉬해가며 벌였던 노예 사건은 1840년대 미국에서 벌어진 일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았다.

 

영화로도 만들어져서 우리에게 또 한번 경종을 울렸던 대기업 노동자의 이야기 <또 하나의 약속>, 아프리카예술박물관에서 일하는 이들에 대한 착취, 왜 이런 일들이 모양만 다르게 계속 일어나는 것일까? 

 

 

영화로도 만들어져 개봉을 한 <노예12년>은 솔로몬 노섭이라는 흑인이 자유인이었다가 납치되어 노예로 팔려 12년 동안 겪었던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일기처럼, 그리고 마치 법원에 호소하는 소장처럼 풀어낸 책이다. 그는 납치되어 팔려가기까지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르는 비인간적인 처사를 알지 못했고, 인간은 이득을 위해서라면 끝없이 악해질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도 몰랐다. 돈을 벌기 위해서 흑인들을 불법으로 붙잡아 파는 노예상인들과 노예들을 사고파는 일에 아무런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농장주인들, 그리고 흑인 노예는 짐승과도 같다고 생각해 채찍으로 때리고 심지어 죽이는 것 또한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그들, 도덕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 존경할만하지만 단 한 번도 사람이 다른 사람을 종으로 부리는 일이 도덕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의심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모두 노예제도의 밑바닥에 깔린 태생적인 잘못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솔로몬 노섭이 10년 동안 일했던 엡스의 경우는 아마 그 당시 모든 농장주의 전형일 것이다. 그를 두고 솔로몬 노섭은 '그는 흑인을 하나의 인간, 자기에게 작은 능력을 주신 창조주 앞에 책임이 있는 인간으로 여기는 게 아니라, 값어치만 다를 뿐 자신의 노새나 개보다 나을 게 없는 <동산자>로 여긴다..... 그는 자기가 입을 손해만 생각하면서, 자유인으로 태어난 나를 저주했다'라고 적고 있다.

 

그렇다면 보다 인간적이었던 윌리엄 포드는 다를까? 노섭은 윌리엄 포드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윌리엄 포드만큼 다정하고 고결하며 솔직한 그리스도교인은 없었다고 밝혀두는 것이 공평할 것이다. 그러나 늘 그를 둘러싸고 있던 영향력과 인맥들이 그의 눈을 가리고 있어서, 그는 노예제 밑바닥에 내재되어 있는 해악을 보지 못 했다. 그는 다른 인간을 복종시키고 있는 인간의 도덕적 권리를 결코 의심하지 않았다. 자기 이전의 조상들과 똑같은 매개체를 통해 세상을 보았기 때문에, 그들과 똑같은 빛으로 사물을 보았다.' 

 

심지어 다른 농장주가 노예를 도끼로 위협하는 것을 보고 '오히려 약간의 친절이 그런 무시무시한 무기보다 더 효과적으로 그들을 억제하고 순종하게 만들 거요.'라고 충고한다.

 

솔로몬 노섭은 목숨을 건 편지와 솔로몬을 도와주는 배스 덕분에 자유인이 된다. 그렇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단지 한 인간의 동정으로 자유를 얻은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노예제도가 없어진 배경은 노예제도가 다수의 이익, 특히 북부의 경제발달에 따른 노동자의 수요 문제와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개인은 환경과 관습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어릴 때부터 고착된 인식 또한 쉽게 바꾸기 힘들다. 또 우리는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고 자부하면서 법률이 허용하는 것은 다 옳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법률이 인권을 짓밟는 경우가 있다고 하더라도. 

 

1840년대 미국에서 벌어진 노예 문제가 아직도, 여전히 유효한 주제가 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어떤 인간이 다른 인간보다 위에 있을 수 있을까? 경제적인 이유로 다른 이의 자유와 인신을 구속하는 것이 진정 옳은 일일까? 공공의 질서를 위해서 개인의 자유를 구속하는 것은 진정 옳은 일인가? 

 

끊임없는 질문이 솟아나는 밤이다. 마지막으로 띠지에 있는 글귀가 마음에 파고든다.

 

"잃어버리기는 너무도 쉽고 되찾기는 너무도 어려운 것

그것은 자유, 인간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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