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 세계의 역사와 지도를 바꾼 물고기의 일대기
마크 쿨란스키 지음, 박중서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승리한 자들을 위한 역사서가 진실을 말해주고 있을까?

흔히 우리가 읽고 있는 많은 역사서들은 역사를 지배한 자들의 역사, 살아남은 자들의 역사일 것이다. 패배한 자는 말이 없는 것처럼 그들은 기록을 남기지 못하고 역사에서 사라져 버렸고 그들을 이긴 자들은 살아 남아 자신들의 승리의 기록을 남겼다. 그렇게 우리 인류의 역사는 진행해왔다.

그렇지만 말도 못하고 기록도 못하는 것들의 역사는?
이들의 역사를 기록한 한 멋진 작가가 있다.
마크 쿨란스키!
참 독특한 이력의 작가다.
                         
​그의 이력을 읽지 않고 그의 글을 읽다 보면 소설가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역사학자일 것이라는 짐작도 해보지만 그는 연극과를 졸업하고 어부와 항만 노동자, 요리사 등 다양한 직업을 가졌던 사람이다. 그의 희한한 이력 덕분에 우리가 먹는 "대구"는 자신의 역사를(대구는 자신의 역사가 기록되었다는 것을 알까?) 갖게 되었다.

자연을 지배하고 자연에서 먹이사슬의 가장 높은 곳을 차지한 인간의 입장에서 대구는 한갓 먹거리에 불과할 뿐이지만 이 작가에 의해 조사된 대구는 당당히 역사의 중요한 페이지를 차지하고 남을 주역이었다.
어쩌면 이제 우리는 인간의 눈이 아니라 '대구의 눈'으로 역사를 잠깐 들여다보는 게 역사를 이해하는 데 보다 효과적일 것이다.

대구의 눈으로 본 역사

9세기    : 바이킹들이 변변한 식량도 없이 긴 항해가 가능했던 이유는? 말린 대구 덕분이었다.
1000년경 : 바스크인들이 소금에 절인 대구의 판매 시장을 국제적인 규모로 확장하다. 북아메리카 해안에 있는              대구 어장의 위치를 바스크인들만의 비밀로 묻어두다.
1497년   : 뉴펀들랜드를 항해하던 조반니 카보토가 대구 어장을 발견하다. 이때부터 바스크인들의 비밀이 밝혀            지다.
1602년   : 바솔로뮤 고스널드가 팔라비시노에 케이프 코드(대구 곶)라는 이름을 붙이고, 뉴잉글랜드에 대구가             '들끓는다'라고 보고하다.
1607년   : 영국인들이 노스버지니아(미국 메인 주 브런즈윅 인근)에 정착지를 세우려고 시도하다.
1620년   :'나그네들'이 대구를 잡아 부자가 될 것이라는 꿈을 품고서 매사추세츠 주 플리머스에 정착하다.
1645년   : 뉴잉글랜드인들이 삼각 무역으로 들르는 곳마다 돈을 벌어들이다.
1700년대 : 뉴잉글랜드가 국제적인 상업 세력으로 부상하다. 대구 어업으로 가문의 부를 쌓아 올린 '대구 귀             족'들이 등장하다.
1773년   : 1733년부터 영국 정부가 당밀 조례, 설탕 조례, 인지 조례, 타운센드 조례 등을 제정해 뉴잉글랜드의 경            제를 통제하려고 하자 화가 난 미국인들이 보스턴 항구에 차를 내다 버리다.
1775-1781년: 미국 독립전쟁이 일어나다.
1782년    : 영국이 그랜드뱅크스에서의 대구 어업권을 뉴잉글랜드에 넘겨주다.

이렇게 보니 바이킹에 의한 세계사 흐름의 변화는 대구로 인해 가능했고, 북아메리카는 콜럼버스가 처음으로 발견했던 것이 아니라 바스크인에 의해 발견되고 이들은 이곳에서 활동하고 돈을 벌고 있었지만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입을 다물었던 단지 그 이유로 최초의 발견자라는 역사적 명성을 얻지 못하고 떠벌였던(?) 콜럼버스가 차지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미국으로 향했던 많은 이들은 대구를 이용해 돈을 벌려던 사람들이었고 이들은 대구를 잡아 부를 쌓았으며 그것이 어느 정도 미국 독립의 원인이 되었다.



​게다가 200마일 영해선 등 자국의 영해를 확보하려는 움직임 또한 대구와 관련되어 있다.

그렇게 주요한 흐름을 쥐고 있던 대구는 어업기술의 발달과 너무 많은 조업으로 점차 양이 줄고 지금은 조업금지와 엄격한 규제하에 소규모 어업만 허가되고 있다. 그럼에도 대구의 개체 수는 증가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고 한다.

작가는 대구의 이야기를 통해서 인간의 오만과 과도한 욕망을 일깨워주고 있다.
사람들은 자연과 진화를 인간 활동과 완전히 별개인 것으로 간주하고 싶어 한다. 마치 한쪽에는 인간이 있다는 식의 사고방식이다. 하지만 인간 역시 자연의 세계에 속해 있다. 만일 인간이 광포한 포식자라면 그 역시 진화의 일부분이다. 자연에서 가장 성공한 놈들이라고 해서 항상 우리의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자연의 일부일 뿐이라는 사고로 돌아오지 않는다면 대구의 경우와 같이 인간과 함께 했던 것들이 사라질 것이며 또한 인간의 미래 또한 어두울 것이다.

마크 쿨란스키는 마지막 말을 통해서 인간의 미래를 상상해 보도록 한다.

고래를 사냥하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과, 고래를 구경하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에는 커다란 간극이 있다. 자연은 오락과 교육을 위한 귀중한 예시로 축소되는 중이며, 이는 사냥보다 훨씬 덜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는 공원을 제외하고는 자연이 전혀 남지 않은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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