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일기
폴 오스터 지음, 송은주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월
평점 :
품절


<겨울일기>를 읽으면서 자주 나오는 두 개의 단어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몸"과 "당신"

 

작가가 그냥 만만한 작가가 아닌 폴 오스터 정도라면 이 단어를 그냥 썼을 리가 없다는 데서 나의 고민은 시작되었다.

 

속에서 살아가는 당신,

당신의 에서 이야기가 시작되는 지점이고 또한 모든 것이 몸에서 끝날 것이다.

갈림길에 설 때마다 의 어딘가가 고장이 난다. 당신의 은 마음이 알지 못하는 것을 항상 알고 있기 때문이다.

죽음은 에 지배되는 일이다.

안에서 축적된 기억과 당신이 에 계속 지니고 다니는 인식들로부터 끌어내야만 한다.

을 보낼 준비.

글쓰기는 육체에서 시작된다. 그것은 의 음악이다.

 

이렇게 폴 오스터의 <겨울일기>를 읽으면서 "몸의 기억"이란 단어에서 생각이 춤을 추고 있었다. 작가는 이 작품을  감각적 자료들의 카탈로그, 호흡의 현상학이라고 정의했고, 이야기의 전개는 몸이 기억하는 일들을 나열하는 일이었다. 배뇨의 문제, 운전, 싸움, 아픔, 고통, 쾌락, 사랑 등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느꼈던 겪었던 일들을 몸이 기억하는 대로 펼쳐놓고 있는 것이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했지만 폴 오스터의 이 작품에서는 이 명제가 '나는 존재하기에 고로 생각한다"로 바뀌었다.

폴 오스터의 이러한 말들은 니체와 메를로 퐁티의 철학을 상기시킨다.

 

니체에 의하면 '유래는 육체에 부착된다'라고 주장하며 육체를 사건들의 각인된 표현으로 이해한다. 육체는 과거에 체험했던 사건을 기억하며, 욕망과 좌절 그리고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이들 요소들은 육체에서 결합되거나 사라지기도 한다. 니체가 말한 것처럼 몸은 분열된 자아의 저장고이며 끊임없이 풍화되는 한 권의 책이 된 것이다.  

 

우리는 이 기억하는 것 외에 우리는 항상 알 수 없는 것들이 남아있는 것을 발견한다. 폴 오스터의 작품들을 보면 알 수 없는 것들을 덩그러니 남겨놓고 있다. 어쩌면 그것들은 빈틈으로 남아야 마땅한 것들, 핵심적인 부분을 채우는 것들이다. 그 빈틈은 무엇일까? 우리는 언제나 우리 자신이라는 하나의 간격을 통해서만 세계에 연결된다. 우리는 세계를 그리는 데 있어 우리 자신인 그러한 빈틈, 세계가 어떤 사람에 대하여 존재하게 되는 그러한 빈틈을 지울 수 없다. 이 간격의 정체가 바로 우리의 몸이다.

 

그래서 폴 오스터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대개는 보도를 걸을 때를 가장 많이 느끼는 당신의 몸. 걸음을 멈추고 당신이 누구인지를 생각해 보면 바로 그 자체가 자신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걷는 사람, 한평생 도시의 거리들을 걸으며 보내는 사람.

 

항상 길을 잃고 항상 엉뚱한 쪽으로 길을 잘못 들고, 항상 제자리에서 빙빙 돌고, 당신은 평생동안 방향감각이 떨어져서 고생을 했다.

 

폴 오스터는 파이노메논 즉 자신을 그 자체로 내보여준다. 당신이라는 이인칭으로 자신을 지칭하면서. 우리가 

그 대상의 존재방식을 즉, 현상을 제대로 기술한다면 우리는 대상의 참다운 존재양식을 가능케하는 대상의 '본질'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고 메를로 퐁티는 보았다. 그래서 아마 폴 오스터는 '당신'이라는 이인칭의 시점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제대로 솔직하게 표현하고자 했나 보다.

 

폴 세잔은 풍경은 내 속에서 자기를 생각하고 나는 풍경의 의식이 된다고 했다. 풍경은 화가를 통해 자신을 그린다. 우리가 영화를 볼 때 영화는 세상을 본다. 보는 것과 보이는 것의 역할이 뒤바뀌어 버리는 것, 내가 나를 대상화하여 보는 것, 그리고 그 대상이 거꾸로 나를 보는 것. 이것을 통해서 폴 오스터는 자신의 "본질"에 도달하고자 한 듯하다. 평생 방향을 잃은 길 위에 있는 걷고 있는 몸으로 글을 쓰는 자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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