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어웨이 - 도피할 수 밖에 없었던 여자의 가장 황홀했던 그날
앨리스 먼로 지음, 황금진 옮김 / 곰 / 201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가 삶이라고 부르는 것에서 더 나은 살을 살기 위해 혹은 힘들어서 가던 길을 계속 가야 할 이유와 도망가야 할 이유를 우리는 찾고 있다. 그렇지만 살아가는 것도 도망가서 또 만나는 것도 역시 우리가 살아내야 할 우리의 삶이다. 

 

앨리스 먼로는 <런어웨이>라는 여덟 편의 단편들을 모아 놓은 책에서 여성들의 그런 삶을 차분하고 진지한 어조로 말하고 있었다. 이 작품들 속의 주인공들은 자신이 발 딛고 있던 곳에서 도망가기도 하고 혹은 그저 그 삶을 지키고 있기도 하지만 그 경계에 서 보았던 주인공들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이다.

 

첫 번째 단편인 '런어웨이'에서는 칼라와 실비아 두 명의 감정선이 잘 드러나 있다. 남편을 잃고 힘들어하던 실비아에게 칼라는 새로운 느낌의 사랑이었다. 그런 실비아가 보기에 칼라는 남편 클라크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칼라의 삶을 위해서 바람직하다고 보았기에 칼라의 도망을 도와준다. 하지만 칼라는 클라크에게 가기 위해 부모로부터 도망쳤다. '늘 진짜 같은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엄마 아빠는 이해 못 하시겠지만요.'이라는 쪽지를 놓고.

 

클라크로부터 도망가고 있지만 여전히 클라크는 칼라의 인생을 차지하고 있으며 클라크 이외의 어떤 것도 생동감 있는 도전이 될 수 없음을 느끼고 칼라는 집으로 다시 돌아온다.

 

여기에 살고 있으면서 저기를 꿈꾸는 여성들은 그 갈림길에 서 있으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

<런어웨이>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드라마틱한 삶을 살아내지도 않고 뛰어난 성과를 이룬 이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들은 삶이라는 땅에 발을 딛고 서서 푸른 하늘같은 이상을 꿈꾸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그 선택에서 문 하나가 뒤에서 꽝하고 닫힌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세상 경험이 결코 많지 않지만 변화를 꿈꾸고 현실에서 지속적인 희망의 부재를 느끼기도 한다.


때로는 엉성한 약속, 의식과도 같은 키스에 의존해 모든 것이 계획대로 순풍에 돛을 단 배처럼 진행될 것이라는 무모한 믿음에 사로잡혀 있기도 한다. 오히려 그런 상황에서는 한 치만 어긋나도 길을 잃게 되어 있거늘.

 

이 작품을 읽으며 나 자신을 들킨듯한 느낌을 받았다. 내가 느꼈지만 미처 잡아내지 못하고 지나갔던 감정들, 상념들이 작가의 글을 통해 드러나 나의 지난 시절을 돌아보게 한다. 작가의 마지막 단편 '힘'의 마지막 구절은 삶의 고난함에 힘들어하는 우리에게 주는 작가의 메시지로 읽힌다.

 

짐을 버릴 줄만 안다면 길은 평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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