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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토끼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7
존 업다이크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8월
평점 :
<달려라, 토끼>는 하루키의 책을 읽으며 알게 되었다. 그의 한 에세이에서는 심지어 '존 업다이크를 읽기에 가장 좋은 장소'라는 제목도 있었다. <노르웨이의 숲>을 읽으면서 존 업다이크가 궁금해졌고 그의 작품을 되도록이면 빨리 만나고 싶었다. 하루키의 무덤덤하고 일상적인 언어 속에 들어있는 존 업다이크는 다소 시크해 보이고 색다른 맛을 전해줄 듯해 보였다.
제목 또한 일상을 살짝 벗어나 발걸음이 달까지 갈 것 같지 않은가? <달려라, 토끼>
그러나 <달려라, 토끼>는 우리의 일상에 딱 붙어있는 이야기였다.
주인공 해리 앵스트롬의 말처럼 '나는 저 안에 풀로 붙어 있는 것 같았어요. 수많은 망가진 장난감이며 빈 잔과 함께 말이에요. 텔레비전은 꺼질 줄 모르고, 빠져나갈 길은 보이지 않고. 그러다 갑자기 빠져나가는 게 사실 얼마나 쉬운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냥 걸어나가면 되니까. 젠장, 과연 쉽더군요.'
이런 주인공 일명 래빗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해리 앵스트롬은 1650년대 미국의 필라델피아 인근의 소도시 브루어에서 세일즈를 하고 있는 한때는 잘 나가던 고등학교 농구선수였던 소시민이다. 그는 그때의 기억에 사로잡혀 있지만 지금의 처지는 이류의 삶을 살고 있다. 더구나 아내 재니스와의 관계는 심각하다. 재니스는 임신을 했음에도 하루 종일 티브이 앞에 붙어앉아 술을 마시면서 움직이지도 않는 알코올중독자다. 그는 일이 끝난 후 집에 돌아와 그 모습을 보고 아내의 담배 심부름을 가다가 그냥 차를 몰고 나가 버린다. 창녀 같은 여자를 만나서 살다가 아내가 둘째를 낳던 날 돌아와 다시 살아간다. 하지만 다시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고 아내는 다시 술을 마시고 실수로 아이를 물에 빠뜨리고 만다. 결국 아이는 죽고 아이의 장례식에 참석했다가 래빗은 다시 도망친다.
선(善)은 안에 있는 것이다.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가 균형을 잡으려던 것들은 무게가 없다. 갑자기 그의 내부가 아주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빽빽한 그물 한가운데 있는 순수하고 텅 빈 공간이다. 모르겠어. 그는 루스에게 계속 그렇게 말했다. 그는 모른다. 뭘 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무슨 일이 벌어질지. 그가 모른다는 생각이 그를 무한히 작게, 잡는 것이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 같다. 그 작음이 광대함처럼 그를 채운다. 상대편이 그가 잘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수비 두 명을 붙이는 바람에 어느 쪽으로 돌든 둘 중 한 명과는 부딪치게 되어 있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패스하는 것밖에 없던 때와 비슷하다. 그래서 그는 패스를 했고 공은 다른 사람들에게 갔고 그의 손은 텅 비었고 그를 막던 사람들은 멍청해 보였다. 결과적으로 거기에는 아무도 없었으니까.
이 소설의 제목처럼 우리도 무조건 달리지만 어떤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는지도 모를 때가 많고 무언가 끓어오르는 욕망은 있지만 꿈은 사라지고 만다. 이 지겨운 일상에서 탈출을 꿈꾸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저 이 소설의 마지막 말처럼 "그는 달린다. 아, 달린다. 달린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관연 래빗은 어떻게 탈출은 했을까 궁금해진다. 이 작가의 '토끼 4부작'의 나머지가 읽고 싶은 이유다. 그렇지만 다 읽고 난 후에도 래빗이 여전히 달리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는 어디서 답을 찾아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