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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정신 - 세상을 바꾼 책에 대한 소문과 진실
강창래 지음 / 알마 / 201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책에 대한 책, 메타북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다른 이들은 어떤 책을 읽고 있으며 어떻게 읽었는지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만 이런 메타북들 중에는 다소 신변잡기적으로 흘러가버리는 책들도 있고 그저 책 속의 좋은 구절들을 뽑아 나열하는 데 그친 책들도 있다. 그중에서 보다 색다른 접근법으로 책을 읽는 독자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책들이 종종 있어 자신의 독서를 반성하고 새로운 방향의 책 읽기를 유도해 준다. 강창래의 <책의 정신>은 내가 지금까지 읽은 메타북 중 단연 최고였다. 그 깊이와 관점에서 나는 이 책과 작가에게 반했다.
이 책의 들어가는 말은 장장 30여 페이지에 걸쳐 있다. 이것을 읽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정신적인 만족감을 얻게 된다. 작가는 이 들어가는 말을 통해 이 책 전반에 걸쳐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고갱이를 다 전해준다. 작가는 한 권의 책을 제대로 다 읽었다고 말할 수 있는 시점은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길 때가 아니라 독후감을 끝낼 때고 내 주변 사람들과 소통이 끝나는 시점이라고 말한다. 서평 쓰기를 게을리했던 나를 반성하게 하는 말이다.
작가는 이 세상 모든 책은 하나하나가 다 하나의 편견이며 인간은 모두가 자기가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듣고 싶은 것을 들을 뿐 아니라 쓰고 싶은 것만 쓴다는 것이다. 사실은 없고 해석만 있을 뿐이며 게다가 그 해석조차 패러다임의 지배를 받는다고 말한다. 그래서 편견은 수많은 편견을 접함으로써 해소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좋은 책이란 무엇일까? 현대의 금서 정책은 아이러니하게도 권장도서 목록을 통해 이뤄진다. 권장도서 목록에 갇혀 재미있어야 할 독서가 그렇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에 대한 답을 '포르노 소설과 프랑스대혁명'에서 말해 주고 있다. 우리가 흔히 프랑스혁명의 사상적 배경을 계몽사상가들의 저서로 꼽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장 자크 루소의 <사회계약론>은 얼마 읽히지도 않았고 <신 엘로이즈>라는 연애소설은 출간 후 40년 동안 115쇄를 찍었다. 이 엄청난 베스트셀러 연애소설이 보편적인 인권을 발명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평가한다. 이런 책들을 통해 전통적인 사회적 경계, 즉 귀족과 평민, 주인과 하인, 남성과 여성, 아마도 성인과 아동 간의 경계마저 넘어 공감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 결과 자신과 비슷한 감성과 이성을 가진 '같은 존재'로 보게 되고 프랑스대혁명은 '평등'이라는 낱말을 낳게 되었다.
고전은 정말 위대한가?
작가는 위대한 고전 <소크라테스의 변명>과 <논어> 그리고 <성경>이 안고 있는 문제를 들춰낸다.이 고전 모두가 편집된 저작물이다. 오래된 고전들은 원래의 것이 아닐 확률이 매우 높다. 어쩌면 그것들은 오랜 세월 동안 시련을 견디고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때마다 주류 이데올로기를 가진 편집자의 의도에 맞게 필요한 만큼 적당히 변형되어 오늘에 이른 것일지 모른다. 그것들을 변형시켜 살려낸 이들은 그 주인공들을 성인의 반열에 올리고, 그 성인의 입을 빌려 민중들에게 자신들의 도덕을 강요했던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했다는 말인 "악법도 법이다" 역시 일제 강점기에 발명되어 2004년까지 죽 이어져왔다는 것이다. <논어>는 벼슬길에 나서고 싶은 엘리트 계급을 위한 자기 계발서의 원조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고전을 읽는 즐거운 방법은 비판적 독서다. 의심하면서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더 멀리 보았다면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 거인들의 어깨는 책의 맨 뒤에 붙은 참고도서 목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거인의 어깨 위에서 담을 넘어 더 멀리 보면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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