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 딕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214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위대한 소설은 시간의 학살에서 살아남아 나이도 먹지 않고 오히려 시간을 초월하여 불멸의 존재가 된다.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남아 고전이 된 모든 것들을 무서워해야 하지만 오히려 무시하고 외면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교육에서 고전은 시험을 잘 보기 위해 필요한 것 이상의 의미를 찾기 힘들었고 나 또한 그것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해 고전을 요약본으로 접하고 다 읽은 것처럼 생각하고 제대로 된 책으로 다시 읽으려는 시도를 하지 않고 살아왔다. 그렇지만 어쩌다 다시 접한 고전은 별생각 없이 가볍게 살고 있는 나를 깨우고 흔들어 놓는다. 이번에 만난 허먼 멜빌의 <모비 딕>은 또 한 번 나를 뒤흔든 책이 되었다.
                              
                         

고전은 대부분의 책이 그렇지만 약간의 지루함을 견디면 너무 멋진 구절들과 내용을 만날 수 있다.<모비 딕>을 제대로 읽기 전에는 단순히 흰 고래 모비 딕에게 다리를 잃은 한 선장이 모비 딕을 잡으러 항해를 하면서 겪는 모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모비 딕>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나는 단지 한 권의 책을 읽은 것이 아니라 분야가 다른 여러 권의 책을 함께 읽은 듯 했다.<모비 딕>의 시작은 지루한 백과사전을 읽는 것 같다. 그렇지만 이 책은 곧 모험 여행을 떠나는 설렘을 느끼게 하는 모험소설로 둔갑을 하고 광활한 바다에서 고래를 잡는 부분에서는 생생한 르포르타주를 읽는 것처럼 현실감이 느껴진다. 그러다가 주인공들의 성격과 생각이 한껏 드러나는 장에서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읽는 것처럼 무대지시문과 주고받는 대사로 멋진 등장인물을 눈으로 보고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모비 딕>이 품고 있는 것들이 너무 많아 책을 읽으면서도 과연 내가 이 소설을 다 이해하고는 있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고 성경과 신화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다시피한 나의 모자람에 안타까움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런 부분에 대한 지식이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더 재미있게 이 소설을 읽을 수 있을까 하는 부러움도 함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여러 명의 캐릭터들은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었고 나는 그 캐릭터와 함께 놀라운 모험 여행을 함께 했다.

우선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에이해브 선장은 카리스마가 있고 놀라운 언변으로 인종도 종교도 서로 다른 선원들을 묶어내는 기이하고 어쩌면 편집광적인 광기에 사로잡힌 인물이다.
                     
"눈에 보이는 건 전부 종이로 만든 가면에 불과해. 하지만 어떤 행동이든, 살아가는 행위라는 의심할 나위 없는 그런 행동일 경우에도, 알 순 없지만 그래도 이성적인 뭔가가 허무맹랑한 가면 뒤에서 이목구비를 내미는 법이거든. 일격을 가하려면 가면을 뚫어야 해! 죄수가 벽을 뚫지 않고 밖으로 나갈 수 있나? 나한테는 이 흰 고래가 나를 바싹 에워싸는 벽이라네. 가끔은 그 너머에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해. 놈은 나를 제 손아귀에 넣고 못살게 굴어. 나는 놈에게서 포악한 힘을, 그 속에 불끈거리는 불가사의한 악의를 느낀다네. 내가 증오하는 건 무엇보다 불가사의한 그것이야. 흰 고래가 앞잡이든 주범이든, 나는 놈을 상대로 내 원한을 풀 거야. 나한테 신성 모독이라는 말은 하지 말게. 날 욕보인다면 난 태양한테라도 덤벼들 수 있어."

이런 에이해브 선장에게 유일하게 대들어 보는 스타벅(스타벅스가 이 인물에서 그 이름이 나왔다고 한다) 그는 이렇게 외치는 선장에게 "그것이 우리의 정당한 용무라면 두렵지 않으나 우리는 고래를 잡으러 왔지 선장님의 복수를 위해서 온 게 아닙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모비 딕과 만나 싸우는 마지막 순간에도 다시 한 번 에이해브에게 왜 그 가증스러운 고래를 뒤쫓아야 하느냐고 이 죽음의 바다를 벗어나 고향으로 처자식에게로 돌아가자고 하지만 그의 영혼은 그가 말하는 것처럼 버거운 상대를 만나 속절없이 당하고 만다.

"이런 싸움에서 제정신을 가진 자가 무기를 내려놓아야 한다는 건 참기 힘든 상처다. 하지만 상대는 내 마음속 깊은 곳까지 들어와서 내가 가진 이성을 모두 몰아내 버렸다. 그의 불경한 목적이 빤히 보이지만, 그런데도 왠지 도와야만 할 것 같다. 속으로는 반항하면서 겉으로 복종하고, 더 심한 건 일말의 동정심을 품은 채 증오한다는 것!"

그리고 생생한 어조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 작품의 화자인 이스마엘. 종교에 대한 편견을 갖지 않고 사람에 대한 편견도 이겨내고 달라지는 그는 에이해브의 이 웅변에 영혼의 두려움과 정체를 알 수 없는 격렬한 공감을 느끼고 억누를 수 없는 에이해브의 원한을 고스란히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모비 딕과의 싸움에서 오로지 그만이 살아남아 이 이야기를 전한다.

그리고 사람은 아니지만 그 누구보다 매력적인 캐릭터인 모비 딕.
모비 딕은 곳곳에서 마치 사람처럼 영혼과 생각이 있는 것처럼 표현되고 있다. 그는 육중한 만큼 심오하고 마치 플라톤, 제우스, 단테처럼 장중하며 깊은 사색에 잠긴 존재다. 고래의 흰색은 감미롭고 명예롭고 숭고한 색이며 파악하기 어려운 뭔가가 도사려서 두려움을 자아내는 피의 붉은색보다 더 많은 공포를 안겨 준다. 모비 딕은 최고의 신 제우스도 능가하지 못할 정도로 거룩하게 헤엄을 치며 매혹적일 정도로 평온한 신이다. 그는 오만하게 덤비는 에이해브를 파멸시키는 신의 모습으로 그리고 그런 에이해브를 따르던 선원들을 물속에 수장시키는 존재로 등장한다.

<모비 딕>은 형이상학적이고 인식론적인 문제를 다른 철학을 품고 있다. 물론 종교적인 부분이 표면에 드러나 있기도 하지만.
"인간이란 누구나 포경 밧줄에 싸인 채 살아가는 것을. 모든 인간은 목에 올가미를 건 채 태어나는 것을. 그러나 조용하고 교묘하게 상존하는 삶의 위험을 깨닫는 건 느닷없이 갑작스레 죽음으로 방향을 틀었을 때뿐이다. 당시 이 철학자라며 포경 보트에 앉아 있더라도 작살이 아닌 부지깽이를 옆에 놓고 저녁의 난롯가에서 앉아 있을 때보다 조금이라도 더 큰 공포를 느끼는 일은 없을 것이다."
"고래처럼 거구인 생물이 그렇게 작은 눈으로 세상을 보고 토기보다 작은 귀로 천둥소리를 듣는다니 희한하지 않은가? 하지만 눈이 허셜의 망원경 렌즈만큼 크고 귀가 성당 입구처럼 널찍하다면, 고래가 더 멀리 보고 더 예리하게 들을 수 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그러니 뭣 때문에 마음을 <넓히려고>노력하는가.그저 예민하게 만들면 될 것을."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의 흰 고래를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흰 고래는 시기에 따라 상황에 따라 사랑도 되고 신도 되고 돈도 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오로지 이 흰 고래만 쫓고 있는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은 무엇일까? 스타벅의 말처럼 제정신을 차리고 있는 자는 무기를 내려놓아야 할 것인가? 아니면 그것이 무엇인지 형체는 확실하지 않지만 에이해브처럼 열정적으로 죽음을 무릅쓰고서라도 쫓아봐야 할 것인가? 아니면 상황에 따라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며 결국에는 살아남는 이스마엘처럼 살아야 하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