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미친 사랑 ㅣ 세계문학의 숲 32
다니자키 준이치로 지음, 김석희 옮김 / 시공사 / 2013년 5월
평점 :
작가는 이 책의 마지막에 이렇게 쓰고 있다.
이것으로 우리 부부의 기록을 끝내겠습니다.이것을 읽고 어처구니없다고 생각하는 분은 웃어주십시오.교훈이 된다고 생각하는 분은 본보기로 삼아주시고,나 자신은 나오미에게 홀딱 반해버렸으니까,어떻게 생각하셔도 어쩔 수 없습니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사람들의 반응은 어떨까? 우선 나는 의아함이었다. 독특하게 이쁘다는 것 말고는 다른 매력을 딱히 찾아보기 힘든 아니 오히려 도덕적으로 몰매를 맞아 마땅한 소녀를 사랑해서 15세부터 부인으로 삼아 자신의 이상향으로 키워가고 있는 28세의 찌질한 남자의 성도착적인 사랑이야기였다. 거기에서 나의 궁금증은 커져갔다. 왜 이 책이 그리고 이 작가가 유명한가?
우선 작가인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그의 이력을 살펴보면 무척이나 흥미로운 인물이다. 이 작가의 삶 자체가 그 작가가 쓴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일본의 사소설이 아마도 이런 걸까?) 두번의 부인양도사건,처제와의 사랑 등등 그가 쓴 소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삶을 살다갔으며 살아있는 동안 노벨상 후보에 여러번 올랐지만 노벨상을 타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설국을 번역한 한 번역가는 그가 1968년까지 살아있었다면 노벨상은 그의 것이었을 거라고 장담을 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도 인기를 끌었던 영화 <링>의 원작자이기도 하고 <남아있는 나날>이란 작품으로 유명한 가지오 이시구로가 인정한 유일한 일본작가이기도 하다. 일명 동양의 D.H 로렌스라 불리기도 하는 이 작가는 자연주의가 전성기이던 일본에서 여성을 찬미하고 숭배하는 관능적이고 변태적인 글을 써서 일본탐미주의의 거장이 된 작가이다.
그는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미에 대한 동경을 충족시켜 줄 하등의 대상을 발견할 수 없어서 서양숭배에 빠졌던 일본에서 태어난 것이 슬펐던 사람이다. 그래서 이 <미친 사랑>에 나오는 나오미라는 여성은 보통 일본인과는 다르게 하얀피부를 가지고 있으며 팔 다리가 길쭉하고 특히 다리가 곧게 빠진 서양냄새가 물씬 풍기는 아름다음으로 남자주인공 조지를 바보같은 사랑을 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악마같은 여성으로 등장한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 더우기 아름다움의 대표라고 말할 수 있는 여성의 몸을 사랑하는 것은 도덕과는 거리가 멀다. 미를 극도로 중시하다보니 이 작품에서 도덕을 들이댈만한 여지는 없어보인다. 여성의 아름다움에 빠져 꼼짝도 하지 못하는 남성 조지는 작가 자신의 모습이며 일본의 나오미즘을 일으켰던 주인공 여성 나오미는 처제라고 한다. 이러한 현실에서의 작가의 삶조차도 소설과 마찬가지로 헛웃음이 나오지만 어떤 잣대를 들이대서 평가해야할지 난감하다.
조지의 독백으로 된 이 소설은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상황을 대체로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다. 중간중간에 개입해서 '이런 바보같은'이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이 소설을 읽는 나조차조 꼼짝못하게 묶어놓고 읽어갈 수 밖에 없는 어떤 힘이 있었다.
아름다움에는 도덕과 윤리가 접근하지 못는가? 아마 앞으로 머리속에 남아 떠돌아다닐 화두가 될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