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교육
로맹 가리 지음, 한선예 옮김 / 책세상 / 2013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소설책의 제목이 이래도 괜찮은 걸까? 자칫 유럽의 교육제도에 대해서 써놓았을 것 같아 보이는 (사실 너무나도 당연히) 이 책은 로맹가리의 첫소설이다. 사실 이 제목때문이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는 신문사의 오보도 보인다. 박근혜대통령이 도서전시회에서 정가를 주고 사간 책중 한권이라는 이 책을 한 신문사에서는 '박대통령이 유럽교육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입시위주교육에서 탈피해 끼와 소질을 키워주는 방향으로 교육정책을 전환하기로 한 만큼 유럽의 교육시스템을 통해 우리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얻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해놓기도 했다. 아마 이 기사를 읽은 대한민국의 학부모들은 자식을 위해서 얼른 사서 읽어보았을 것이며 깜짝 놀랐을 수도 있겠다.

 

이 책은 독일의 점령하에 놓여있던 폴란드의 빨치산들의 이야기다. 주인공 14살 야네크는 빨치산무리와 합류해서 전쟁을 경험해가면서 1년동안에 '삶의 노인'이 되어버린다.


그는 빨치산 무리속에서 대학생인 도브란스키,타데크 흐무라 그리고 조시아를 만나게 된다. 이 책의 제목인 '유럽의 교육'에 대한 이들의 생각은 각기 다르다.


타데크 흐무라는 도브란스키가 쓰고 있는 책의 제목으로 <유럽의 교육>을 권한다. 그에게 유럽의 교육이란 폭탄, 포로의 총살,짐승처럼 구덩이 속에서 살아야만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자유,ㅡ존엄성,인간으로서의 명예 그 모두가 결국은 사람들로 하여금 목숨을 내놓게 하는 한 편의 동화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이 책에 나오는 빨치산 영웅 나데이다의 신화처럼 헛된 희망을 품고 그 동화같은 희망을 위해 이 숲에서 목숨을 내놓는다고 그는 생각한다.


그러나 도브란스키는 이 시기는 지나갈거고 진실은 역사의 순간속에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순간과 같은 시간속에 있기에 절망하지 말고 믿음을 갖고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의 말은 야네크의 아버지의 말과 비슷하다. 아버지 또한 '사람이 살아가면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어떤한 상황에서도 사라지지 않는다고'고 말했으며 야네크는 사실 도브란스키가 퍼트린 나데이다의 신화와 아버지의 말씀으로 희망을 삼고 이 전쟁터에서 견뎌내고 있었다.


그렇지만 흐무라의 아버지의 말은 또 다른 입장이다.

'희망없는 싸움,그거 아름답지.하지만 한 종족의 운명은 생존하는 데 있는 것이지 아름답게 죽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이들의 투쟁을 '로빈 후드 놀이 하는 거야 쉽지'하고 평가절하시킨다.  그러면서 그저 마을을 지키며 독일군에게 부역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변명하듯 그러나 흘려들어버릴 수 없는 말을 던진다. 

'그 모든 나라에서 나이든 사람들이 자기 종족을 지키고 있다. 그들이 더 현명해. 중요한 건 살과 피, 땀과 어머니의 품이지. 깃발,국경,정부가 아니야. 명심해라. 시체는 폴란드 찬가를 부를 수 없다.'

그는 그러면서 살아남는다는 것이 중요함을 역설한다.그러나 그의 마음속에는  '내가 쉰 살만 젊었더라면 함께 남았을 거라는 거 몰라?'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가 산에서 만난 조시아는 오직 오직 사랑하고 먹고 따뜻하게 지내는 것 뿐다. 그녀는 평화롭게 사랑하는 것, 굶어죽지 않는 것, 얼어죽지 않는 것이 왜 그토록 어려운 것일까?하고 묻는다. 지구는 둥글며 자전한다든가, 맞춤법이 어떻게 된다든가 하는 것 등 제 나이 또래의 여자아이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들을 다 깨우치는 것보다 그 문제에 대한 답을 알아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그녀는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 속에서 야네크의 생각은 어떻게 변해갔을까?  다시 말하면 어떻게 교육되었을까? 

 

야네크에게는 인간 세상이 어떤 거대한 자루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이 먼 채 꿈만 꾸는 감자들이,자루 속에서 무정형의 덩어리를 이루며 발버둥치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인간성이라는 것이었다.

 야네크는 이런 혼란스런 속에서 그들은 우리를 훌륭한 학교에 보냈고,나는 언제나 훌륭한 학생이어어.우리는 유명한 교육을 받은 거야. 그것을 타데크 흐무라는 '유럽의 교육'이라고 불렀어. 그 유럽의 교육이란 바로 그들이 너희 어버지를 쏠 때,또는 너 자신이 뭔가 대단한 명분을 내세워 누군가를 죽일때,또는 네가 죽도록 굶주리고 있을 때, 또는 네가 마을을 파괴하고 있을 때 이루어지는 거야.우리는 훌륭한 학교에 있었더. 우리는 정말 교육되었어.

 

그리고 야네크는 독일군을 죽이러 간다. 어린아이의 천진함을 무기로...

 

추악한 짓을 벌이는 사람은 그들이라는 도브란스키의 말에 야네크는 추악한 짓을 벌이는 사람은 언제나 존재해왔다고 말한다. 타데크 흐무라가 옳았음을. 유럽에는 가장 오래된 성당들, 가장 오래되고 가장 유명한 대학들, 가장 커다란 도서관들이 있어 거기서 가장 훌륭한 교육이 이루어진다. 그래서 공부하기 위해서 세계곳곳에서 사람들이 오지만 그 유명한 유럽의 교육이 가르치는 것은 결국, 자기한테 아무 짓도 하지 않은 사람을 죽이는 데 소용이 될 만한 그럴싸한 이유들과 용기를 찾아내는 법일 뿐이라고 말한다.

 

새로운 세상-음악과 책,모두를 위한 빵,형제애의 온기,전쟁도 증오도 없는 일과 기쁨안에서 하나가 되는 -을 꿈꾸면서 죽는 도브란스키를 바라보며 야네크는 아버지와도 같은 보호본능이 솟는다.

 

이 일년동안의 전쟁속에서 14살 야네크는 대학생보다도 더 어른이 되어버렸다.  잔인하고 불가해한 세상, 우스꽝스러운 잔가지 하나, 지푸라기 하나를 늘 더 멀리 끌고 가는 것밖에는 생각할 줄 모르는 세상을 보았다. 그리고 이마에 땀을 흘리고 피눈물을 쏟으면서도 늘 더 멀리! 숨을 돌리거나 왜냐고 질문하기 위해 한 번도 멈추는 법 없이 그렇게 개미처럼 전진하는 인간을 깨달았다.

 

로맹가리의 소설은 작품마다 너무나도 독특한 향기와 말투로 나에게 말을 건넨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자기 앞의 생> 그리고 <유럽의 교육>, 이렇게 세권의 책을 보았지만 서로 다른 작가의 글인 것처럼 새로왔다.

 

전쟁이라는 극단의 선택을 강요하는 상황속에서 인간이 행하고 생각하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만나며 과연 무엇이 옳은 것인가 생각해보게 된다. 아직 어떤 결론도 내리지는 못하겠지만 살아가면서 차차 질문에 대한 답을 발견해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