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 천하최강 - 제6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49
정지원 지음 / 창비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을 두고서도 나는 종종 성장소설을 읽는다. 아들과 함께 읽으려고 하며 웃으면서 책을 고르지만 책을 고르는 마음의 70~80 퍼센트는 나를 위한 것이다. 속으로는 아직 내가 덜 자랐나봐 하기도 하고 마흔은 제2의 사춘기래잖아하기도 하며 나름 위안을 삼기도 하지만 성장소설을 읽는 이유는 나의 묻어두었던 과거를 떠오르게 하는 소재들과 아련히 떠오르는 추억이 생활에 부대끼며 살아가는 현재의 나를 위로해 주기 때문이다.  

 <비바,천하최강>이라는 다소 남성적인 제목의 이 책이 가져다주는 재미는 다른 어떤 성장소설보다도 컸다.

 

성장기의 우정

네명의 조금은 다른 친구들, 한 선생님이 그들의 성을 따서 천하최강이라 이름하였다. 이 남학생들의 성장에는 이소룡과 성룡,포르노(뽀뽀뽀라고 한단다.)와 영화배우들, 싸움이 함께 한다.이 서로 다른 네명의 친구들의 학창시절은 심각하기도 하고 마냥 즐겁기도 하다. 친구가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여자친구와의 데이트를 취소하고 지하철을 타고 병문안을 가는 화자인 승언이는 이소룡과 성룡을 둘러싼 내기에서 불거진 친구들과의 지하철용쟁호투에 대한 추억을 떠올린다. 이렇게 아픈 친구를 만나러 가는 지하철에서 과거의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편린들을 만나고 낚시줄에 걸린 물고기들처럼 펄떡거리는 추억들이 줄줄이 떠오른다.남학생들만의 추억들이 여자인 나도 어색하거나 낯설지 않은 것은 어른이 되어서 만나는 많은 남자들이 모두 이런 추억들을 꺼내놓으면서 술자리에서 즐거워하는 모습을 봐서 일 것이다.

 

선생님들

지금의 교사들은 조금은 다르겠지만 우리가 학교다닐 때는 구타와 인격적인 모독이 많았던 때라 지금이라면 내 아이를 맡기고 싶지 않은 교사들이 많았다.이 소설에 등장하는 월급쟁이,탤런트,영화감독,노다지 등은 모두 그러한 교사들이다.그러나 귀관은 조금은 다르다.귀관(선생님)이 교단을 떠나며 하는 말은 교사들이 들어도 그리고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새겨들어도 좋을 말이다.

'전쟁을 치르는 사람처럼 살아왔습니다.학생들에게 모든 순간 충실해야만 한다는 생각때문이었지만,어쩌면 나는 씨를 뿌리고 농작물을 기르는 농부처럼 참을성있게 살아야 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사랑

 화자인 승언이는 불완전한 모습의 청춘이지만 사랑을 한다. 그녀는 귀가 잘 안들리는 장애를 가지고 있다. 그들의 사랑은 일반적이지 않다. 필답장을 사용하는 대화. 그들의 대화는 조금 더 신중하고 아름답다.그녀는 승언이로 하여금 침묵을 사랑하게 만들었고 그들의 대화는 좋아하는 곡만 들어있는 플레이 리스트가 되었다. 식물성 연애!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피어있는 꽃들이 서로를 발견하고 같은 바람에 흔들리며 향기를 주고받지만 잎과 줄기로 끈끈하게 엉켜드는 것은 겁내는 그런 연애.그렇지만 지상의 시선들에는 들키지 않을 깊은 뿌리로 오래전부터 이어져 있을 그런 사랑이다.

 

감각적인 문장들

이 소설은 첫페이지부터 독자의 마음을 끈다.

'괜찮아요'라는 글자 너머 킬로바이트로는 다 담아낼 수 없을 특유의 표정이 떠올랐고,문자를 쓸 때 나는 잘 사용하지 않는 띄어쓰기가 그날따라 나와 그녀 사이에 유난히 깊은 거리감을 밀어넣고 있었다.p.1

'미안'이라는 말의 연쇄가 두려웠기 때문이다.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미안하고,기념일을 챙기지 못해서 미안하고,아직 취직을 못해 미안하고,돈이 없어서 미안하고,~~~ p.2

요란스레 제 뼈를 긁어대야만

이어폰도 어쩐지 산소호흡기처럼

낮 시간의 전철은 안전선없는 세상을 헤매다 온 내 위장처럼 비어 있었다.p.3

말로 표현하기는 어려운,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결정적으로 아름다운 어떤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도 했다.p.8

컵라면을 먹을 때처럼 '덮어놓고' 기다리기 시작했다.p.33

따뜻한 방바닥에 달라붙어 거의 누룽지가 되어 가고 있었다.p.103

이런 감각적인 표현들이 자주 등장해 주어 연필로 밑줄을 그어야만 했다.

 

그리고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우리시대

88만원세대라고 불리는 지금의 청년들,이 청년들을 시대는 끊임없이 스펙을 요구하고 왜 진작 이러저러한 것을 준비하지 않았던가하고 뉘우치게 한다.

뭔가를 버리면 그 눈부신 전장에 계속 살아남아 있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소중한 것들을 하나 둘 잘라내지만,결국 그곳에 남는 것은 상처의 흔적과 비린 핏물뿐이다.그날 내가 산산조각 낸 것이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의 유년이었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았다.p.171

나는 해가 진 뒤에야 햇볕이 따스했음을 알았고,서른이 넘은 다음에야 예전 그 시절이 싱그러웠음을 기억했고,땅 속으로 사라진 뒤에야 성운이가 너무나 소중한 녀석이었음을 깨달았다. 매번 밀려 쓴 답안지같은 삶을 살았다.앞으로도 그렇게 살아야 할지 모른다. 없이 해 나가야 하는 일들이 늘었다.나는 마음껏 비참해졌다.p.203

죽어가는 친구앞에서 깨닫는 가치들.뒤늦게 알아버린 가치,그리고 여자친구의 어깨에서 얻은 작은 위로.

 

책을 읽으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아졌다. 그리고 또 침묵해야할 이유들도 많아졌다. 그리고 힘내서 살아야 할 이유들도 생겼다. 열심히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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