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꽃으로 - 유안진 산문집
유안진 지음, 김수강 사진 / 문예중앙 / 2013년 1월
평점 :
품절


중고등학교 시절 좋아하는 친구에게 이런 글 한 번 써보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유안진님의 지란지교를 꿈꾸며를 빌어 친해지자고 말할 수 있었다. 꿈을 꾸며 깔깔거리던 우리들 사이에 수없이 돌고 돌았던 그 시의 주인공인 유안진님의 에세이집을 받아들었다. 그저 나이가 좀 드셨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만 하고 있었다.1941년생이신 시인은 올해 벌써 73세이시다.그렇지만 여전히 나에게는 소녀감성을 불러일으키는 시인으로만 기억하고 있으니 독자에게 시인은 나이를 먹지 않아서 좋다. 


시처럼 유려한 에세이집을 향기로운 커피 한 잔을 옆에 놓고 읽었다. 책을 읽으면서 동네의 한적한 공원의 어느 한곁에 앉아 시인처럼 내손이 아닌 남의 손을 빌어 커피를 받아들고 그 어느것보다 소중한 듯 천천히 우아하게 마시며 읽고 싶어졌다. 


유안진시인은 이 책의 곳곳에서 현재 시인들의 배고픔을 아파하고 있다. 많은 시인들이 나와서 많은 시집을 내고 있지만 팔리지는 않고 있는 현실에 안타까워하면서 또 스스로 부끄러워하고 있다. 처음 시인이 되고자 했던 계기며 시를 읽고서 감동에 떨던 기억이며 시어들의 모태인 조모님과 어머니의 이야기며 황혼의 시인이 들려주는 시를 통한 삶의 이야기는 이 시인의 시집을 사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글로 쓰여진 아름다운 말들을 간직하고 싶어졌다.


잠과 외로움

시인과 내가 비슷한 점이 있었다. 왠지 나도 시인처럼 뭔가 있는 듯 으쓱해지는.쉽게 잠들지 못해 뒤척이는 밤들과 낯선이와의 접촉.그리고 외로움. 나도 밤에 잠을 이루기가 쉽지 않다. 올빼미라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고.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지 못해 벌어진 많은 웃지못할 이야기들도 있다. 시인도 비소리,눈내리는 소리에도 잠들지 못하고 침대며 베게며 잠을 자기 위한 것들에 대해 투덜거리듯이 이야기하고 있다. 많은 베게이야기를 할 때 우리집 내 침대가 생각나 피식 웃고 말았다. 내 침대에 뒹굴어 다니는 베게들이 시인이 말하는 여러가지 용도들로 나의 잠을 유도한다.


일상들

동네 서점이야기,주변 친구들 이야기에서 시인의 조용한 삶과 명상하듯 살아가는 구도자의 모습이 보인다. 나이들어 오히려 큰소리로 말하는 많은 노인들의 모습을 보고 실망할 때가 많은데 조용하고 단아한 이쁜 할머니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어느덧 글을 읽는 나도 이렇게 늙고 싶다라는 생각이 든다.


종교

성당에 다니는 시인은 생활의 많은 부분을 기도와 책읽기 그리고 쓰는 일로 보낸다. 바보처럼 살고 싶다는 너무도 소박한 소원을 말하며 김수환추기경과 차동엽신부의 이야기를 한다. 숙맥으로 살고 싶다고.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분들의 마음은 얼마나 단단하고 깊이가 있을까 그저 고개가 숙여지는 부분이다. 


에세이는 아웅다웅하는 삶에서 조금 떨어져 볼 줄 아는 이들이 써야 제맛이 난다. 벌떡 일어나 삶의 활력을 찾아 열심히 활동하게 하는 그러한 글이 아닌 내 삶을 들여다보게 하는 글은 힘든 세상에 살아갈 용기와 자신을 오히려 갖게 한다. 조금은 편하게 그리고 여유롭게 살아가자고 조용히 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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