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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 스완네 집 쪽으로 1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희영 옮김 / 민음사 / 2012년 9월
평점 :
T.S 엘리엇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조이스의 『율리시스』와 더불어 20세기 2대 걸작 중 한 편이다. 이들을 읽지 않고 문학을 논할 수 없다고 했다. 앙드레 모루아는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 프루스트를 읽은 사람과 읽지 않은 사람만이 있다고 말했다.시몬느 드 보부아르는 한없이 다시 읽고 또 읽고 싶은 작품이라는 찬사를 남겼다.버지니아 울프는 진정으로 내게 가장 큰 체험은 프루스트다. 이 책이 있는데 과연 무엇을 앞으로 쓸 수 있단 말인가?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녀는 프루스트와 같은 기법으로 소설을 썼다. 이러한 찬사로 둘러쌓여있는 책을 읽어보리라 결심하게 된 것은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러나 의식의 흐름기법! 나에게는 너무 낯선 기법이다. 책을 읽어내기가 버거웠다. 얼마전 버지니아울프의 책 <댈러웨이부인>을 읽다가 덮어버렸다.내용이 그다지 어렵다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또한 의식의 흐름기법!
아~~ 도대체 나더러 어쩌란 말인가?하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한페이지를 제대로 집중할 수 없게 만드는 산만함이 읽다가 덮고 읽다가 덮고 하다가 도서관 대출기한을 넘겨버렸다. 그래서 다시 대출해서 겨우 1권을 읽었다.
내 정신이 책을 읽는 도중에 어디론가 헤매고 다녀서 다시 데려오느라 힘이 더 든다. 이걸 왜 읽자고 덤볐나 싶은 후회가 일다가도 문득 만나는 좋은 구절에 그래 읽기를 잘 했어 하다가 한다.
시간은 온통 뒤죽박죽 섞여있고,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세밀하디 세밀한 그래서 오히려 지루해지는 묘사들. 인간들에 대한 너무 깊은 상념들. 문장은 또 얼마나 긴지. 한페이지를 거의 다 차지하다시피 한 문장을 읽다보면 도대체 무얼 이야기하고 있었던지 잊어버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기를 반복하며 읽느라 피곤했다. 하나의 단어와 거기에서 떠오르는 또 다른 단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난다. 음악과 성당과 나무들과 숲 그리고 건물을 표현하는 묘사들은 그림을 보는 듯 하지만 너무 길어 왜 이렇게 세심하게 설명하고 있는거야? 그냥 쉽게 쓰지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말하는 사람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 시선이 움직이는대로 쫒아가는 방법으로 서술된 책이라서 마음을 편안히 가지고 읽지 않으면 자주 책을 덮게 되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프루스트가 문장 곳곳에 숨겨놓은 보석같은 통찰력들을 보고 싶다면 꼼꼼히 읽어보는 게 필요하다.
‘주변 길은 사라졌고, 또 그 길을 밟은 이들이나, 그 길을 밟은 이들에 대한 추억도 사라졌다. 때로는 한 조각 풍경이 오늘날까지도 다른 모든 것으로부터 홀로 떨어져 나와, 내 상념 속에서 꽃이 만발한 델로스 섬처럼 불확실하게 떠돌아다니지만, 난 그것이 어떤 나라, 어떤 시대에서―어쩌면 단순히 어떤 꿈에서―왔는지 말할 수 없을 때가 있다. 하지만 나는 메제글리즈 쪽과 게르망트 쪽을, 내 정신적인 토양의 깊은 지층으로, 아직도 내가 기대고 있는 견고한 땅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때 나는 사물들을, 존재들을 믿었다. 내가 이 두 길을 돌아다니며 알게 된 사물들이나 존재들만이 아직도 내가 진지하게 생각하고, 아직도 내게 기쁨을 주는 유일한 것이다.’
1권은 작가의 어린시절인 듯한 소년의 눈으로 엄마에 대한 사랑과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할아버지 그리고 스완이라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몸이 약해서 엄마에 의지하고 살아가는 소년의 엄마에 대한 사랑은 지나치게 나약하고 다소 정신병적인 모습도 보인다. 소년은 책과 주변의 인물들에 의해 조금씩 성장해 가면서 한 소녀을 만나게 되고 그 소녀에 대한 집착된 사랑을 보인다. 1권 스완네 집쪽으로는 이 작가의 책을 처음 만나는 생소함과 함께 이런 글쓰기에 대한 낯섬에 다소 당황스럽고 힘들었던 책읽기였다. 이제 다소 익숙해져가기에 조금은 기쁜 마음으로 2권에 도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