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은수저
나카 칸스케 지음, 양윤옥 옮김 / 작은씨앗 / 2012년 10월
평점 :
품절
나는 어린시절 이미 라파엘로처럼 그릴 수 있었다. 하지만 평생 어린아이처럼 그리기 위해 노력했다'는 피카소의 말이 떠올랐다.
보는 것과 그리는 방식을 새롭게 제시하는것. 사실적으로 그리는게 아니라 사물을 보는 시각을 그리는 것 '나는 사물을 본 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대로 그린다' 던 피카소는 그 새로운 시각을 어린 아이의 눈에서 찾으려 했다. 어린 아이의 눈으로 독창적이면서도 거침없이 자유로운 그림을 그리기 위해 그렇게 평생을 노력했다.
나카 간스케의 은수저를 읽으면서 1912년 27세 나이로 쓴 작품이 어떻게 이렇게 어린아이의 눈으로 씌여질 수 있을까하는 의구감이 들었다. 내 나이 20대 후반에서 지금까지 어떻게 하면 좀 더 어른스럽게 또 아는 척 할 수 있을까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그런데 어린아이의 순진하고 따뜻하고 감성적인 눈으로 그려진 백년전의 일본의 사회와 풍경이 지금도 전혀 어색하지 않게 보인다.
노상 우울하게 가라않은 병든아이가 불성을 가진 이모님의 보살핌으로 어린시절을 보내게 된다. 유일한 친구를 사귀게 되고 친구와 함께 하는 어린날의 놀이들-눈가리고 서로를 잡는 놀이,얼음땡,돌차기,가고메등에 대한 섬세한 묘사는 눈에 보이는 듯 했다. 주인공 간스케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강아지도령과 입술연지소. 이것외에는 필요한 것이 없고 밖에 나가면 친구와 놀고 집에서는 이모님과 놀던 간스케는 학교에 가기 싫었다. 천성적으로 멍한 아이이며 학교생활 자체가 너무 복잡하고 고역이었던 숫기없는 문어도령은 새로 사귀게 된 여자친구 케이로부터 들은 한마디 "너 같은 꼴찌하고는 안놀아"에 열심히 공부를 하게 된다. 지식도 늘고 자신감도 붙고 흥미도 더해져 갑자기 지혜가 트이면서 마치 한꺼풀 벗은 것처럼 세상이 새롭고 환해지는 것과 동시에 몸도 튼튼해진다.
어린아이다운 경탄을 품고 바라보는 주위의 것들. 사람들은 많은 것에 익숙해지면서 그야말로 흔히 보던 것들이라 무심코 지나쳐버리지만 이 어린아이의 눈에는 날마다 새롭다. 파도에 달에 감동해 눈물을 흘리는 이 감수성 많은 아이가 커서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궁금해지는 이유이다. 아마도 작가가 되었겠지 싶다.
그러면서 나의 어린시절을 돌아보게 했다. 그렇지만 딱히 기억에 남아있는 장면이 몇 되지 않으니 나는 그리 감수성이 강한 아이는 아니었나 싶다. 책을 읽는 내내 내 마음이 순수해지는 그리고 조용히 웃음을 흘리는 그런 행복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많은 추천사에도 불구하고 내가 느낀 은수저는 우리나라의 소설 소나기를 보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