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군의 맛
명지현 지음 / 현대문학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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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교군의 맛이라는 제목을 보고 진기한 음식의 향연을 기대했다. 교군이라는 처음 들어보는 장소도 끌렸지만 맛이라는 원초적인 끌림도 있었다. 붉은 색의 표지를 열어 읽기 시작한 책의 처음 "토끼사냥 1980년 초여름"이라는  소제목은 현대사와 엃히고 설켜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교군 이덕은 여사 채록본 <이딴 얘기 받아 적어서 뭐하려고>에서 나온 말들이 함축적으로 소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누군가를 위해 장시간 조리하면서 고된 줄 모른다면 미친 야망이나 사랑, 둘 중 하나다. 먹는 입을 사랑하지 않는 요리사는 없다. 궁극의 맛이란, 입이 겪은 황홀경이 만들어낸 감정의 찌꺼기다.'

 교군의 주인마님이자 김이의 외할머니 이덕은 여사는 일제시대,6.25, 4.19,5.16 그리고 1980년 광주를 겪으면서오로지 교군을 지키기 위해 살아간다. 교군을 지키기 위한 사랑과 야망이 중독성이 강한 매운 맛을 만들었고 그 매운 맛을 쫒아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교군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힘 가진 자들을 불러 모아 실컷 먹였고, 취하면 사랑방에 모셔 극진히 대접했다. 교군의 마님이던 상희의 몸종에서 교군의 안주인이 되기까지 이덕은여사가 걸어 온 길은 매운 맛의 길이었다. 이덕은여사에게 교군은 그 무엇보다 귀하고 소중하다. 그리하여 이덕은여사의 맛은 혼의 울림이고 죽음과 같다. 이덕은여사는 입속으로 밀어 넣는 황홀한 죽음을 완성해 가면서 그의 맛인 교군을 놓칠 수가 없었다. 교군이 없다면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기 때문에.

 이덕은 여사를 중심으로 존재하는 여인들, 상희- 이덕은여사의 주인으로 교군의 안주인이었으나 폐결핵으로 몸이 안좋아지자 버림받을 지경에 처해있다가 이덕은여사의 음식으로 편안히 죽음의 길로 갔다. 미란- 상희의 딸로 이덕은여사가 키웠고 가수의 꿈을 안고 집을 나갔지만 결국에는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노리개로 전락, 정계와 재계의 높은 두 인물 김가와 이가 둘 중의 한 사람의 아이인 듯 한 아이를 임신하고 착한 남자와 결혼해 살다가 권력의 음모로 죽음에 이른다. 김이- 엄마없이 친아빠도 아닌 아버지밑에서 자란 아이. 교군으로부터 무서운 서태후이덕은할머니로부터 달아나고자 하지만 결국 교군의 맛에 끌려 다시 돌아와 교군의 역사와 음식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아이. 

  이 여인들이 전하는 현대사는 교군의 맛에 나오는 너무도 매워서 사람을 정신을 잃게 만드는 온갖 고추의 맛으로 표현된다.세상은 독한 것들이 만드는 것이라고 믿는 이덕은 여사는 김이 또한 독한 사람으로 만들려고 한다.

이덕은여사가 전하는 매운 맛은 물리칠 도리가 없어 모두가 평등한 맛이다. 혀에 불이 붙어 펄펄 뛰다가 눈물을 질금질금 흘리다 보면 말끔하고 반들반들한 학식과 지위의 껍질이 깨지고 사람이 튀어나온다고 생각한다. 

 '나는 사람에게만 사람대접한다.사람은 온데간데없고 껍질이 떵떵거리는 세상, 누구나 제 껍질을 근사하게 만들려 아귀다툼을 하는 세상이라 내 음식이 점점 매워진다.'

 책을 읽는 내내 매운 이덕은여사의 말소리가 들렸고, 요즘 유행하는 매운 맛들이 머리 속을 떠돌았다. 지금도 역시 매운 맛을 봐야하는 힘든 세상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힘들었다.

 우리가 만나는 삶과 세상이 맛있는 모양좋은 음식이라면 좋겠지만 우리는 때때로 독한 매운 맛을 봐야하는 세상에 던져져 있다. 개인적으로 이런 세상의 맛이 좀 더 순해졌으면 하는 바램이 있지만 이 매운 세상을 외면하는 것도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삶의 뒷태를 맛으로 표현한 작가의 솜씨가 놀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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