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가면 언제 오나 - 전라도 강진 상엿소리꾼 오충웅 옹의 이야기 민중자서전 1
김준수 글.그림 / 알마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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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우리 할머니는 96세에 돌아가셨다. 2000년 겨울이었다. 할머니의 소원대로 시골집에서 장례식을 치뤘다. 어려서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내 나이는 8살이었고 슬프고 무서웠던 기억밖에 없었다. 그러나 할머니의 장례식은 집안어른들이 하신 말씀부터 그 과정을 눈으로 보고 기억할 수 있었다. 상복을 입으신 집안 어른들하고 마당에서 끓여지고 있던 육계장과 만들어져 들어오는 꽃상여. 그리고 장지까지 상여를 메고 가는 어른들과 맨 앞에서 요령을 흔들며 구성지게 불러대는 노래소리, 그 뒤를 받쳐주는 상여꾼들의 소리. 주거니 받거니 그렇게 가다 서다 그리고 절하다 한잔 하다 그렇게 장지까지 갔다. 상여를 보고 뒷걸음으로 가면서 노래하는 그 소리가 나에게는 무척 슬프고 아렸다. 비록 남들은 호상이라고 울지 말라고 하지만 나에게 할머니는 고생하다 외롭게 돌아가신 것만 기억에 나고 좀 더 잘해드리지 못한 후회만이 남을 뿐이었다.

 

 알마에서 민중자서전이라는 기획하에 전라도 강진에 사는 상엿소리꾼 오충웅 옹의 이야기가 이제 가면 언제 오나라는 제목으로 나왔다. 자서전하면 이름께나 날린다는 사람들이나 쓰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우리 할머니 돌아가셨을 때 맨 앞에서 상엿소리를 하던 그런 사람에 대한 자서전이라니 솔깃했다. 우리는 흔히 내가 나 살아 온 이야기를 하자면 소설책이 몇권이여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이분의 이야기도 그러했다. 위인들의 이야기야 몽땅 성공했다는 이야기들 뿐이지만 이런 민중들의 이야기래야 성공보다는 실패와 애환이 그득하다. 

 

오충웅 할아버지가 술한잔하고 털어놓는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의 이야기는 흑백영화 한편처럼 일제시대를 지나 6.25전쟁을 지나 지금까지 이어진다. 흑백이었던 영화가 컬러로 바뀌지 않고 그저 묵묵히 이어지는 것같이 느껴지는 것은 할아버지의 나이탓일까? 살고 계시는 지역탓일까? 아님 책속의 사진 탓일까? 


상엿소리는 장례의식 때 상여를 메고 가는 상여꾼들이 부르는 일종의 노동요이다. 노래의 내용은 고인의 살아 생전 업적과 덕망을 평가하고 이별의 슬픔을 말하기도 하며,내세에서의 평안을 기원하기도 한다. 또 남은 이들에게 삶의 집착과 미련은 덧없다는 인생무상의 교훈을 남기기도 하며, 상여를 메는 상여꾼들의 노고에 대한 고마움도 담겨있다. 지금은 이런 풍경을 보기도 어렵고 이런 일에 종사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어렵지만 1980년도에 자장면곱배기가 오백원일대 대기업 신입사원월급이 이십여만원일때 한달 백이십만원을 벌었다는 할아버지는 오로지 노래가 좋아서 집을 두번이나 나가 떠돌다 나이 사십에 상여소리를 배워 이 일을 하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가수가 되지는 못했지만 노래는 아직도 멈추지 않는다. 한발 한발 일상에 발붙이고 그 발걸음을 이어간 시간들이 할아버지가 온몸으로 살아낸 삶이 너무도 소중해 보였다. 상여소리에 산자와 죽은 자 모두가 위로받듯이 할아버지의 삶이 오늘 나를 위로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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