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과 소설가 - 오르한 파묵의 하버드대 강연록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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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가 소설을 좋아하고 소설가를 꿈꾸는 이들에게는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되어있다. 난 오로지 오르한 파묵이라는 작가에 대한 호기심때문에 이 책을 골랐다. 터키의 작가이면서 노벨문학상을 비롯해서 많은 상을 그야말로 휩쓸다시피한 작가, 그리고 나는 아직 그의 작품을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그야말로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를 더 깊이 알고자 덤빈 격이 되었다. 

  그렇지만 이 책을 통해서 파묵의 작품이 더욱 궁금해졌을 뿐 아니라 소설가로서의 고민과 작품세계와의 관계, 소설을 읽어나가는 독자로서의 마음가짐을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었다. 

  

 독자로서 재미있고 게다가 유익한 소설을 만나면 보물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기쁘고 뿌듯하다. 그렇지만 뭐 뻔한 이야기잖아 하는 소설을 만나면 돈도 시간도 아까울 따름이다. 그러면서 "도대체 뭘 믿고 글을 쓴거야?"한다.소설가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파묵은 이렇게 대답한다."소설은 우리가 인생을, 사람을 알기 때문에 쓰는게 아니에요. 다른 소설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고 그와 같은 방식으로 써보고 싶기 때문에 쓰는 것이예요."라고.

 파묵의 고민은 소설이 우리에게 끼치는 영향, 그리고 소설가들이 어떻게 쓰고 소설은 어떻게 쓰이는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그는 이 책에서 그런 문제를 말하고 있다.

 

 "소설가는 단어로 그림을 그린다"

  파묵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묘사에 대한 설명이다. 묘사는 사진이전의 예술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본 사람이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본 것을 말로 설명해야 한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소설이 일상생활의 경험과 감각을 묘사하고 삶의 본질적이 순간을 포착하는 작업을 통해 독자를 일깨울 때 우리는 공감한다. 동시게 소설은 인간적인 감정, 우리 주위의 평범한 일상, 제스처, 말, 태도들에 대한 강력하고 풍부한 기록보관소 역할을 한다. 

소설을 읽으면서 독자인 나는 나의 삶과 다른 사람의 삶을 비교하기도 한다. 공유되는 면이 많기도 하고 또는 이해되지 않는 면에서 벽을 느끼기도 한다. 그렇지만 소설가가 그려내고 있는 상황들에서 주인공이 겪는 일상에서 주인공의 행동과 생각을 이해하고 인정하기도 한다. 파묵은 이러한 '시각적'이고 '단어적'인 기법으로 소설을 써내려 간다고 말한다. 

 

 어떤 소설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의 어려움은 작가의 의도나 독자의 반응을 파악하는데 있지 않다. 텍스트속 지식들에 대한 균형잡힌 시각을 확보하고 텍스트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알아내는 데 있다. 이른바 중심부 찾기. 중심부란 삶에 대한 심오한 관점이며, 일종의 통찰이다. 깊은 곳에 있는 실재이며 상상의 신비로운 어떤 지점이다. 소설을 읽어가면서 중심부는 서서히 드러난다. 중심부의 위치가 너무 명확하고 빛이 강하면 소설의 의미가 곧장 드러나버려 읽기가 지루하다. 

 

 우리는 소설을 읽으면서 삶의 의미를 다시 찾기도 하고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와 사람들을 이해하기도 한다. 우리가 소설을 읽는 이유와 소설가들이 소설을 쓰는 이유가 별반 다르지 않고 그 속에서 소설이 가지는 힘과 존재의 이유를 찾을 수 있겠다. 

 이 책을 덮고 난 지금 파묵이 말했던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푸르스트의 작품을 다시 읽어보고 싶어졌다. 이제는 소설을 좀 제대로 읽을 수 있을 것 같아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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